광복절 ‘노 재팬’ 깃발 1100개 계획… "지자체가 반일 조장" 비판에 5시간 뒤 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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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중구가 6일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서 한국을 배제한 일본의 조치에 항의하는 뜻으로 도심 곳곳에 '노 재팬(No Japan)' 깃발을 설치했다 지방자치단체가 반일감정을 조장한다는 비판여론이 확산하자 5시간여 만에 자진철거했다.

    서울 중구는 이날 “광복절 74주년을 맞아 ‘노 재팬’ 배너기 1100개를 서울 을지로·태평로·청계천로·세종대로 등 지역 내 주요 가로변에 설치한다”고 발표했다.

    ‘노 재팬’ 깃발은 가로 70㎝, 세로 200㎝ 크기에 일본제품 불매와 일본여행 거부를 의미하는 ‘노(보이콧) 재팬-No(Boycott) Japan: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혔다. 

    광복절 앞두고 ‘노 재팬’ 깃발, 1100기 설치 계획

    서울 중구는 이날 오전 10시쯤부터 서울 대한문 앞 도로 등에 이 깃발 50개를 태극기와 함께 내걸었다. 오는 15일까지 을지로·태평로 등 지역 내 22곳의 가로변에 1100개의 ‘노 재팬’ 깃발을 게양한다는 계획이었다.

    서양호(51) 서울 중구청장은 5일 중구청 홈페이지를 통해 “중구는 서울의 중심이자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오가는 지역”이라며 “전 세계에 일본의 부당함과 함께 이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우리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데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사업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날 오전 ‘노 재팬’ 깃발이 내걸리자 중구청의 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확산했다.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일본 불매운동을 주도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대부분이었다.

    중구청 홈페이지에는 이날 "공산주의인가요? no japan 내려주세요" "불매가 애들 장난입니까" 등 깃발 철거를 요구하는 수십 개의 항의글이 올라왔다.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노 재팬' 깃발 설치를 중단해 달라는 시민들의 청원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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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노 재팬' 깃발 설치 현장에서 만난 외국인 관광객과 시민들의 반응도 ‘비판’ 일색이었다.

    이날 오전 11시쯤 찾은 광화문역~덕수궁까지의 가로변에는 ‘노 재팬’ 깃발 10여 개가 줄지어 내걸려 있었다. 이곳에는 서울시티투어 버스 정류장과 대형 관광정보센터가 있어 외국인 관광객이 붐비는 장소다.

    이곳에서 만난 멕시코 국적의 관광객 아벨(30)과 제니퍼(29)는 “깃발이 내걸리게 된 전후 사정에 대해선 정확히 잘 모르지만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중대한 문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 한국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 가질 것”

    이들은 고국인 멕시코 사례를 들며 “멕시코 정부도 미국 정부의 방침을 수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있긴 하지만 저런 방식으로 표출한 적은 전혀 없다”며 “멕시코 정부는 (미국 정부와) 이견이 있더라도 국가 사이의 관계가 원만해지도록 외교적 합의를 찾으려 한다”고 말했다.

    벨기에 국적의 대학생 베노아(21)도 부정적 견해를 말했다. 그는 “특히 (한국과 일본 사이의) 상황을 잘 모르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한국에 대해 안 좋은 이미지를 줄 수 있다”며 “나로서는 (이런 정책을) 지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러시아 출신의 나디야(40) 역시 “(이런 깃발들이) 반민족적 선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며 “한국이 (일본에 대해) 적대감이나 공격성을 보이지 않는, 더욱 분별 있는(discreet) 방식으로 문제 해결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들 뿐만 아니라 같은 장소에서 만난 일반 시민들 중에서도 부정적 의견이 나왔다. 경기도 성남에 거주한다는 A(61)씨는 “(행정기관이 나서서) No재팬 깃발을 내거는 것은 반대한다”며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경기도 일산에 거주하는 B씨(54)는 “정치인들이 선동해서 국민감정을 부추기는 것으로 보이며, 나라 상황도 어려운데 국익차원에서 결코 이득이 안 되는 행태”라고 주장했다.

    국민들도 ‘몰지각 행태’ 비판… 중구청장 “우려 수용, 철거”

    비판이 거세지자 서 서울 중구청장은 일본 불매운동 깃발 설치 5시간 만에 자진철거했다.

    서 구청장은 이날 오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중구청의 NO재팬 배너기 게첩이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을 동일시해 일본 국민들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와, 불매운동을 국민의 자발적 영역으로 남겨둬야 한다는 비판에 대해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일본 정부의 부당한 조치를 향한 우리 국민들의 목소리가 다시 하나로 모여지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이유불문하고 설치된 배너기는 즉시 내리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