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 지상파, 양승동·최승호 부임 이후 '적자' 행진… 대대적 구조조정 불가피
  • 해마다 적자폭이 눈덩이처럼 불고 있는 KBS와 MBC가 결국 극약처방을 꺼내 들었다. KBS가 지난달 24일 사보를 통해 연간 600억원의 비용을 절감하는 '비상경영'에 들어간다고 밝힌 데 이어 MBC도 같은 달 31일 ▲프로그램 제작 및 조직 축소 ▲인건비 감축 등을 골자로 한 '적자 개선책'을 내놓으면서 양대 지상파 방송사가 동시에 허리띠를 졸라매는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게 됐다.

    그러나 각사 노조는 사측이 근시안적인 '몸집 줄이기'에 치중할 경우 내부 갈등만 커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성장을 위한 비전이나 전략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한 경영진이 솔선수범하는 모습도 없이 고락을 함께 해 온 직원들을 배려하지 않는 구조조정을 강행한다면, 결국 경쟁사만 이득을 보는 '제 살 깎아먹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소리도 나오고 있다.

    MBC, 간부 사원이 전체 직원 중 절반 넘어


    MBC의 하루 광고매출액(1억4000만원)이 여섯 살 난 이보람 양의 유튜브 방송과 엇비슷해진 수준까지 추락하면서 '경영 위기'가 아니라 '생존 위기'가 닥쳤다는 내부 비판까지 듣게 된 MBC는 갈수록 깊어지는 '적자 수렁'에서 탈출하기 위해 올해는 140억원, 내년엔 최소 455억원의 비용을 줄이는 예산 절감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달 3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연 MBC는 "2017년과 2018년에 이어 올 상반기에도 적자(445억원)가 발생했다"며 "지난해 상반기(536억원)보다는 적자폭이 감소했으나, 당초 목표치인 395억 적자보다는 50억원이 초과됐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해 1237억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당기순손실은 전년대비 806억원 증가한 1094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힌 MBC는 "상반기 광고 매출(1100억원대)이 연초 목표의 40%에도 못미쳐 올해에도 900억원 수준의 대규모 적자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MBC는 "적자폭을 줄이기 위해 ▲프로그램을 통·폐합하고 ▲프로그램 제작비 효율성을 높이는 한편 ▲인건비를 줄이고 ▲제반 경비를 긴축해 지출 규모를 최대한 줄여나겠다"고 밝혔다. MBC는 당장 월화드라마 제작을 중단하면 올해 112억원이 절감되고, 프로그램 제작비 효율성만 높여도 300억원 이상 비용이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MBC는 지난 5월부터 경력직 사원들의 연봉제를 폐지하고 회사 임금체계를 호봉제로 일원화하면서 15억원 수준의 추가 인건비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총 232명의 업무직과 무기계약직 직원들의 임금을 정규직의 68% 수준까지 끌어올리기로 노조와 합의하면서 2020년까지 25억 정도의 추가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됐다.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1600여명에 달하는 MBC 정규직 직원의 평균 임금은 1억원을 상회하는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본급은 타사보다 적은 대신, 상여금라든지 문화 복지기금, 기타 수당이 많아 이를 다 받을 경우 웬만한 대기업 사원보다도 임금 수준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게다가 간부 사원이 전체 직원 중 절반이 넘어 전형적인 '고비용 고령화 조직'이 바로 MBC라는 게 이 소식통의 전언이다.

    이에 따라 MBC는 최승호 사장 부임 이후 두 차례 명예퇴직 신청을 받았으나 실제로 퇴직한 직원은 60여명에 그친 것으로 전해졌다. 지상파 광고 시장의 붕괴로 영업손실이 전년대비 119% 증가하는 등 경영 상태가 갈수록 나빠지고 있어 우선적으로 고정비용지출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30%)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줄이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임원 임금의 10%를 삭감하고 업무추진비를 30% 반납하는 비상경영에 돌입한 MBC는 내달부터 ▲보직자 감축 및 조직 축소 ▲신입사원 채용 최소화 ▲해외 지사 축소 ▲파견직 규모 및 업무 축소 ▲업무추진비 축소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시행할 예정이다.

    "MBC경영진, 임원들 '특활비'는 왜 침묵하나?"

    이처럼 MBC가 내놓은 자구책에 대해 MBC노동조합(위원장 허무호·이하 MBC노조)은 1일 배포한 성명을 통해 "절감하겠다는 액수가 적자 예상액에 턱없이 못 미치는데다, 그 내용도 경영진에 기대했던 결의나 희생정신은 고사하고, 절박한 회사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MBC노조는 "사측은 ▲지난 상반기동안 MBC의 신뢰도와 영향력 상승세가 뚜렷했고 ▲탐사보도 프로그램들의 영향력은 확대됐고 ▲예능은 선두를 지키고 ▲드라마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는데, 그렇게 MBC가 잘 하고 있다면 왜 시청률은 바닥을 기고, 천문학적 적자가 나는 것이냐"며 "MBC 프로그램들이 편파보도와 정치선동 방송으로 시청자의 외면을 받는 현실이 아직도 경영진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측은 비상경영 조치로 조직 축소와 직원 보수 삭감, 제작비 효율화 등을 내세웠지만 끝내 임원들의 특활비와 경쟁력 없는 외부인사 출연료에 대해서는 모르는 척 외면했다"며 "임원들이 이미 임금 10%를 깎고 법인카드로 쓰는 업무추진비 30%를 반납했다고 강조했으나, 매월 수백만원씩 현금으로 가져가는 특활비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시청률과 광고 판매율이 바닥을 기는 프로그램들에 외부 인사들이 나와 거액의 출연료를 받아가는 문제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MBC노조는 "경영진이 자신들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 채 직원들에게 상여금 깎고 임금피크제를 확대하겠다고 동의를 요구하면 수긍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지적했다.

    MBC노조 관계자는 "최승호 사장은 부국장 자리를 폐지하고 파견직 직원들을 줄이겠다면서도, 임원들이 받는 혜택에 대해서는 언급도 하지 않았다"며 "매월 거액의 업무추진비 외에 추가로 받아가는 수백만원씩의 현금은 현재 경영 상태에 대한 책임감을 조금이라도 느낀다면 임원들이 스스로 반납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임원들이 월급 외에 용처 불명의 특활비를 파견직 직원의 인건비만큼 받아 챙기면서 '경영을 개선하겠다'며 파견직 일자리를 줄인다면 누가 이를 수긍하겠느냐"며 "위기 상황의 경영진이라면 업무능력과 함께 자기 이익을 희생하는 리더십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이하 MBC본부·본부장 오동운)도 사측의 대책에 비판의 소리를 냈다. MBC본부는 지난 주말 배포한 노보에서 "경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단지 인력과 예산의 숫자로만 표시되는 단기 처방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며 "당장의 영업이익과 실적개선을 위한 일시적인 몸집 줄이기를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MBC본부는 "2049세대를 타깃으로 프로그램 제작을 독려하고, 성과보상을 내세우는 정도로 MBC는 거대 유료채널을 다시 추월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사측은 구성원들의 노력과 희생만 요구하지 말고 생존과 성장을 위한 확실한 비전과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 비상TF "KBS, 향후 5년간 매년 1천억대 손실"

    MBC에 앞서 '비상경영계획 2019'를 발표한 KBS는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양새다. KBS에 따르면 올해 KBS가 예상하는 광고 수입은 약 2631억원으로, 양승동 사장 취임 이전(2017년 3666억원)보다 1000억원 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해 4월 양 사장 취임 후 적자로 돌아서 321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낸 KBS는 올 연말 1000억원대의 사업손실을 기록할 전망이다. 올 상반기 당기순손실이 396억원에 달하는 데다가 콘텐츠 판매와 광고 수입이 지난해보다 저조한 실적을 보이면서 적자폭이 더 커질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지난 6월 정필모 부사장을 중심으로 꾸려진 '토털 리뷰 비상TF'팀은 최근 작성한 'KBS 비상경영계획 2019'에서 "KBS가 향후 5년간 매년 1000억원대의 손실을 내 2023년에는 누적 사업손실이 6569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에 따라 당장 내년 후반부터는 은행 차입금 의존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게 '비상TF'가 내린 결론이다.

    구조적인 재정 위기에 봉착한 KBS는 MBC와 마찬가지로 고정 지출의 43%에 달하는 인건비를 우선적으로 줄일 계획이다. KBS의 정규 인력은 4500여명에 달하는 데 이들이 가져가는 임금만 매년 5000억원이 넘는다.

    감사원 보고에 따르면 KBS는 경영이 악화되는 상황에도 상위직급 비율을 57.6%(2013년)에서 60.1%(2017년)로 늘리고 매년 임금을 0.7%씩 올리는 등 방만하게 조직을 운용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 상위직급의 상당수가 1억원 이상의 고액연봉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KBS는 "직원의 평균 임금 수준은 국내 다른 방송사의 88% 정도에 불과하다"며 "사장과 임원은 MBC의 83%와 SBS의 55% 밖에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해왔으나, '비상TF'는 "조직 전반에 걸쳐 규모를 줄이지 않으면 머지않아 심각한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비상TF'는 "▲한시 계약직 703명을 2021년까지 20% 감축하고 ▲신입사원 선발을 중단하는 한편 ▲경력·특별채용을 늘리고 ▲정규직과 제작 규모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조직을 슬림화해 연간 600억원 이상 비용 절감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KBS, 인건비로만 매년 5천억 이상 빠져 나가"

    아직 확정된 계획은 아니나, 최근 양승동 사장이 조회사를 통해 "KBS가 당면한 구조적인 재정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반드시 실행해야만 하는 최소한의 혁신안"이라고 'KBS 비상경영계획 2019'를 추어 올린 걸 감안하면, 이변이 없는 한 이 문건에 담긴 계획들이 그대로 실행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 문건에 따르면 KBS는 그동안 관행적으로 해왔던 법인카드 종이 전표를 폐지하고, 향후 스마트폰을 활용한 영수증 처리 시스템을 구축해 대체할 계획이다. 또한 종이 사보와 연감 제작도 중단하고, 각 부서마다 구독해 온 신문과 잡지도 중단할 예정이다.

    여론 대응 차원에서 설치한 뒤 기형적으로 운영해 온 경인취재센터도 2020년 말 사업 재허가 시점에 맞춰 폐지나 대폭 변경을 검토하기로 했다. 또 전국 287곳에 세워진 간이보조국(TVR) 관리 업무를 자회사로 이관해 효율을 높일 방침이다.

    특파원 제도, 중계차 등 대형 장비, DMB 사업 등 각 본부나 직종별로 민감할 수 있는 현안도 예외 없이 개선해 다른 고려 없이 재정위기 타개와 미래 경쟁력에 도움이 되는지만 따져 존속·추진할 예정이다.

    프로그램 편성 및 제작 부문도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나선다. 앞으로 제작하는 콘텐츠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대원칙 하에 TV 프로그램을 현재의 90% 수준으로 줄이고 재방송을 늘인다. 경쟁력이 떨어지고 유사한 성격의 프로그램은 과감히 통합하고, 장르별로 KBS를 대표하는 'One Brand'를 양성해 나갈 방침이다.

    뉴스, 다큐, 드라마, 예능 등 프로그램 부문별로 당연시된 제작 및 편성 관행도 시청자의 관점에서 재정립하고, 디지털미디어 분야는 제작 시스템을 더 유연하게 바꿔 나갈 예정이다.

    또한 채용규모를 적정화해 중장기적인 인력수급계획을 확고히 할 예정이다. 검증된 우수 인력을 경력직으로 채용해 인재 유입의 효용을 극대화 하고, 휴식권을 보장하기 위해 연차휴가 사용촉진제도도 확대한다. 연차수당은 후불제로 바꿔 박탈감을 줄여나갈 예정이다. 체육대회, 포상 상금 등도 개선하기로 했다.

    KBS노조 "양승동 사장의 무능경영이 제일 문제"

    이 같은 KBS의 자구책에 대해 기술직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KBS노동조합(이하 KBS노조·위원장 정상문)은 "지역방송국을 말살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며 지난달 17일부터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했다. 같은 달 25일엔 지역 지부장 등 5명이 "양승동 사장의 무능경영을 심판해야 한다"며 삭발식을 하기도 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이하 KBS본부·본부장 이경호)는 'KBS 비상경영계획 2019' 내용이 공개된 직후 배포한 성명에서 "만약 KBS가 사기업이라면 2023년에는 대규모 구조조정이나 청산을 논한다고 해도 무리가 아닌 상황"이라며 "모두가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가장 큰 책임은 경영진의 능력부족"이라고 지적했다.

    KBS본부는 "생존의 걸림돌이 진부한 프로그램이라면 프로그램을 혁파해야하고, 생존의 걸림돌이 사내에 만연한 보신주의라면 뿌리째 뽑아내야 하겠지만,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은 돌파해 나가겠다는 경영진의 과감한 비전 제시고 이를 실행에 옮길 추진력과 솔선수범"이라며 "'위기를 돌파할 의지도 능력도 없지 않느냐'는 비판이 커지는데도 불구하고 현재 경영진이 임기를 채우려면 앞으로도 몇 년은 더 있어야 한다는 점이 진정한 KBS의 위기라는 점을 인정하라"고 비판했다.

    공영노조 "양승동 체제가 물러가야 KBS가 산다"

    KBS공영노동조합(이하 공영노조·위원장 성창경)은 KBS 사측이 마련한 비용절감 대책은 근본적 해법이 아니라며 "KBS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선 양승동 체제가 물러가는 것 뿐"이라고 좀 더 강경한 목소리를 냈다.

    공영노조는 지난달 26일 낸 성명에서 "지금의 위기를 가져온 핵심은 민주노총 노조를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노영경영'이고, 그로 인한 '편파, 왜곡, 조작 방송'이라는 진단이 정확할 것"이라며 "특정 노조 출신들이 KBS경영을 주도하고 있고, 그 세력들이 문재인 정권에 유리한 보도만을 하고 있다면, 어느 국민이 그 방송사를 신뢰하고 또 볼 것인가"라고 개탄했다.

    이어 "실제로 'KBS뉴스9'의 시청률은 양승동 사장 체제가 들어서기 전에 비해 거의 절반 수준으로 폭락했는데, 심지어 KBS 직원들도 KBS를 보지 않는다고 하니 그 실태를 짐작할 수 있다"며 "광고가 급감하면서 경영위기가 찾아온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이고, 무엇보다 KBS를 보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 것이 위기의 핵심"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런 근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KBS사측은 마른 수건을 또 짜듯이 경비를 줄인다고 한다"며 "이는 애매한 직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꼴이고, 진단과 처방이 아주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영노조는 "심지어 지방분권화와 지역문화 창달의 핵심 역할을 해야 할 지역방송국을 통폐합한다는 명목으로 없앤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라며 "KBS를 정상화 시키는 길은, 특정 노동조합이 경영에서 손을 떼고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를 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양승동 체제가 물러가는 길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