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추정의 원칙 지켜야"… 성창호, 양승태, 이명박, 이재명 재판서 잇달아 지적
  • ▲ 공소장 일본주의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법조계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정상윤 기자
    ▲ 공소장 일본주의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법조계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정상윤 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 이재명 경기도지사, 양승태 전 대법원장, 성창호 부장판사…

    이들의 공통점은 법정에서 '공소장 일본주의(一本主義)'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사실이다. 공소장 일본주의는 검사가 공소를 제기할 때 공소장 하나만 법원에 제출하고, 기타 서류·증거물은 첨부하거나 제출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형사소송법 제254조, 형사소송규칙 제118조 2항이 근거 조항이다. 형사소송법상 무죄추정의 원칙, 재판 과정상 판사가 피고인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마련됐다.

    공소장 일본주의가 법적 쟁점이 된 계기는 사법농단 의혹 당사자인 법관들조차 문제를 제기하면서다.

    양승태(71·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은 지난 3월 2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자신의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 소지를 지적했다.

    이후 신광렬(54·연수원 19기)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조의연(53연수원 24기) 서울북부지법 수석부장판사, 성창호(47·연수원 25기)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 이태종(59·연수원 15기) 전 서울서부지법원장 등 사법농단 연루 의혹을 받는 이들도 법정에서 검찰이 공소장 일본주의를 위반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등 혐의에 대해 지난 16일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이재명(54) 경기도지사도 공소장 일본주의를 재판부에 지적했다. 이 지사는 검찰이 관련 없는 내용 등을 공소장에 과도하게 넣었다는 주장을 폈다.

    사법부, 공소장 일본주의 엄격 적용→ 판단은?

    앞서 이명박(77) 전 대통령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정계선 부장판사)는 “검찰의 공소사실이 유죄를 의심케 한다”고 했다. 공소 사실만 적시하도록 한 공소장 일본주의를 지적한 주장을 인정한 셈이다. 1심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의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를 공소 기각했다.

    공소장 일본주의에 대한 최근 사법부의 판단은 2009년 대법원 판결(2009도7436)이다. 당시 대법원은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에서 공소장 일본주의에 대해 검찰 편에 섰다. 당시 대법원은 “범행 동기 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검사가 구체적인 사정을 적시할 수 있다”는 다수 의견을 냈다.

    그보다 앞선 1994년에는 대법원의 정반대 의견이 나왔다. 대법원은 “법령이 요구하는 사항 외에 법원에 예단이 생기게 할 수 있는 사유를 나열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며 공소장 일본주의를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그동안 사법부 내 공소장 일본주의 원칙이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다.

    건국대 교수를 역임한 박인환 변호사는 “(우리나라와 같은 법체계인) 일본은 엄격하게 공소장 일본주의를 적용한다”면서 “그동안 우리나라는 관례적으로 (공소장 일본주의를) 엄격하게 적용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 이유로 “사실관계만 적으면 재판에서 시간이 걸릴 수 있는데, 피고인의 배경과 성질 등도 함께 적으면 한번에 다 (공소장에) 나와 있으니 편하기 때문”이라고 박 변호사는 설명한다.

    “공소장 일본주의 엄격 적용해야”

    공소장 일본주의가 공론화된 만큼, 이제라도 공소장 일본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법조계 목소리가 나온다.

    박인환 변호사는 “이는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와 맞물리는데, 모든 것을 판사 앞에서 밝혀내 재판 과정에서 증거로 인정하자고 하면 검사가 끼어들 여지가 없지 않나”며 “세계적 추세인 공판중심주의를 충실히 이행하고 재판 시작 전 판사가 피고인에 대한 선입견을 배제하기 위해서라도 공소장 일본주의를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양윤숙 변호사 역시 이같은 의견에 힘을 보탰다. 양 변호사는 “판사가 공소장 일본주의 원칙을 철저하게 적용하지 않으면 (사안, 죄질에 대해) 예단할 수 있게 된다”며 “형사소송법상 무죄추정의 원칙, 피고인 인권을 위해서 공소장 일본주의가 엄격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이 원칙이 피고인의 신분·지위를 막론하고 적용돼야 한다는 의견도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