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정은 패러디' A씨 "경찰, 갑자기 들이닥쳐 '옥외광고물 불법 부착은…'"
  • ▲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인근에서 열린 '문재인 퇴진 촛불문화제, 이건 나라냐' 2번째 집회 전경.ⓒ정상윤 기자
    ▲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인근에서 열린 '문재인 퇴진 촛불문화제, 이건 나라냐' 2번째 집회 전경.ⓒ정상윤 기자
    지난 5일 오후 1시쯤 서울 동작구 자택에서 쉬고 있던 A씨는 느닷없이 문을 열고 들어온 2명의 남성과 속옷차림으로 맞닥뜨려야 했다. 2명의 건장한 남성은 자신들이 경찰이라고 신분을 밝혔다. "왜 오셨느냐"고 묻자 이들은 "수사를 한다"고 답했다. 다시 "무슨 수사냐"고 A씨가 묻자 이들이 내놓은 대답은 "옥외광고물 불법부착 수사"였다.

    최근 논란이 된 우파 대학생모임 '전대협' 학생의 가택 무단진입 수사 당시 상황이다. 북한 김정은의 말투를 패러디한 편지 형식의 '대자보'가 발단이었다. 경찰은 지난 1일 이들이 문재인 정부를 신랄하게 풍자한 대자보를 전국 각지에 붙인 것이 '가택 무단진입 조사'의 이유라고 주장했다. 

    A씨에 따르면, 경찰이 자택에 머문 시간은 10여 분 남짓이다. 그러나 A씨는 "옥외광고물 불법부착은 구청 소관 아닌가. 경찰이 신고받아 조사하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자. 그런데 팬티바람으로 쉬고 있는 집에 허락도 안 받고 갑자기 들이닥쳐 그렇게 급하게 수사해야 할 일인지는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전국 각 대학과 국회, 공공기관 등에 문재인 정부 비판 대자보를 운반한 '전대협지지연대' 소속 A씨는 16일 본지와 전화 인터뷰에서 "현재 저를 포함해 경기·경북·충북지역 등의 회원 5명 정도가 경찰 조사 대상에 올랐다"고 전했다.


  • ▲ 페이스북 '전대협' 페이지. 현재는 '규정 위반'이라는 이유로 차단돼 접속할 수 없다.ⓒ페이스북 '전대협' 페이지 캡처 화면
    ▲ 페이스북 '전대협' 페이지. 현재는 '규정 위반'이라는 이유로 차단돼 접속할 수 없다.ⓒ페이스북 '전대협' 페이지 캡처 화면
    북한 욕했는데 국가보안법 위반?

    지난해 설립된 '전대협'은 1980년대 운동권단체인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의 약칭을 본떠 이름을 지었다. 이름부터 '패러디'로 무장한 단체인 것이다. 이들은 북한의 선전용어를 활용해, 문 대통령을 '남조선 인민의 태양'이라고 풍자한다. 

    만우절이던 지난 1일 전국 500여 곳에는 '남조선 학생들에게 보내는 서신'이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일시에 붙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급격한 경제 침체, 친북·반미 외교노선으로 삐걱이는 안보상황을 꼬집은 내용이 주를 이뤘다. 

    A씨는 "전대협 소속 다른  학생은 경찰로부터 '국가보안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하더라"며 "그런데 우리의 주적인 김정은을 비판하는 것인데, 이게 왜 국보법 위반이 되는 건지..."라며 의아해했다.

    A씨의 자택에 무단진입한 2명의 경찰은 처음에는 혐의 내용조차 말해주지 않았고 한다. A씨는 "처음엔 죄목이 뭔지 말도 안해 주더라. 내가 뭣 때문에 왔느냐고 추궁하자 그제야 옥외광고물 불법부착이 혐의라고 했다"고 전했다.

    친북(親北)에는 관용, 반북(反北)에는 과잉수사 논란

    A씨는 "형평성에 안 맞다. 훨씬 심한 폭력적인 일을 하는 자들은 좌파라는 이유로 풀려났다. 친정부 활동가들한테는 무한관용을 베풀지 않나. 정치성향이 다르다고, 이념이 다르다고 이런 식으로 하나.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도 없던 일"이라며 분개했다.

    그러면서 A씨는 지난 12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사무실을 불법점거해 현행범으로 연행됐다 풀려난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이하 대진연)의 경우를 언급했다. 다소 친북성향을 띠는 단체인 대진연에는 관대한 공권력이 유독 전대협에만 날을 바짝 세웠다는 뉘앙스다.

    A씨는 "정부 지시에 의한 것인지, 경찰조직 스스로가 잘 보이기 위해 오버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번 사안이 전국 수사로 확대될 만한 일인가. 우리가 매국이라도 한 것이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경찰이 '대통령 모욕죄'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모욕당했다고 느꼈을 순 있지만, 역대 대통령과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전 대통령에게는 천 배 만 배 더 심한 모욕도 가하지 않았나. 양심이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대협 활동, 전혀 위축되지 않을 것"

    A씨에 따르면, 현재 전대협 소속 회원 일부는 경찰의 출두 요구를 받은 상태다. 경찰은 ‘대통령 모욕죄’ 등의 적용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황하는 기색이 있을 법한데, A씨의 반응은 의외로 덤덤했다. "우린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생각보다 전혀 동요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정부를 비판한 대자보를 붙였다고 형사처벌한다면 그건 정말 공산주의라고 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청년들 입장에서 판단하기에 문재인 정부는 경제·외교·교육·도덕·인사·갑질·특혜 등 여러 흠결이 있다. 이해가 안 가서 '문재인 정부 비판 대자보'를 쓰고, 붙였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헌법이 허용하는 표현의 자유다."

    현재 페이스북 페이지 '전대협'은 '규정 위반'으로 차단당한 상태다. 차단 이유와 관련해 A씨는 "들어가 보니 접속이 안 되더라. 규정 위반이라는데 어떤 규정을 위반했는지 자세한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A씨는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많다. 더 ‘가열찬’ 활동을 하라는 메시지로 들린다. 앞으로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뒤흔드는 정부의 '반정부적 행태'에 대해 신랄한 풍자를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