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박상학 대표“김연철, 통일장관 내정 뒤 '왜 지원해야 하나' 문제 삼았다"
  • ▲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현재 탈북인권단체 총연합회 상임대표도 맡고 있다. ⓒ뉴데일리 DB.
    ▲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현재 탈북인권단체 총연합회 상임대표도 맡고 있다. ⓒ뉴데일리 DB.
    다음달 말 미국에서 열리는 북한인권행사에 참가하려는 탈북자단체들에 통일부의 비용 지원을 막은 배후에 청와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연철 통일부장관 후보자가 내정된 뒤 통일부가 갑자기 “대북전단 살포 중단뿐만 아니라 ‘판문점선언’에 대한 비난을 하지 않아야 비용을 지원해줄 것”이라고 강요했다는 것이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27일 본지와 통화에서 “통일부가 ‘자유북한주간’ 참가비용 지원을 대가로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대북전단 보내기로 유명한 박 대표는 30여 북한인권단체 연대인 ‘탈북인권단체총연합회’ 상임대표 자격으로, 미국에서 열리는 ‘자유북한주간’ 참가비용 지원문제로 통일부와 계속 접촉했다고 한다.

    ‘자유북한주간’은 한국과 미국의 북한인권단체들이 격년으로 돌아가며 주최하는 행사다. 매년 4월 일주일 동안 치러지는 이 행사는 김정은 정권에 의한 북한주민 인권유린 피해사례를 알리고, 대응방안을 논의하며, 북한인권문제를 미국정부와 의회, 싱크탱크에 널리 알리는 것이 목적이다.

    우리 정부는 2015년과 2017년 국내 북한인권단체 관계자들이 미국에서 열리는 ‘자유북한주간’에 참가할 때 비용을 지원했다. 그런데 올해는 정부가 지원 여부를 놓고 시간을 끌다 행사를 몇 주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지원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는 것이 박 대표의 말이다.

    통일부, 자금지원 요청받은 뒤 두 달 동안 묵묵부답

    박 대표에 따르면, ‘탈북인권단체총연합회’ 측은 지난 1월 통일부에 “올해 자유북한주간에 참가하려 하니 비용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금액은 2700만원 안팎이었다. 통일부는 검토하겠다고 해놓고 한 달이 지나도록 답이 없었다. 이에 박 대표는 지난 3월 초순, 탈북자 단체들을 대표해 통일부를 찾아 인도협력국 관계자와 만났다.

    인도협력국은 ‘대북지원’문제 때문에 2009년 5월 해체됐다 2017년 5월 부활한 부서다. 이 부서 관계자는 박 대표를 만나 “대북전단 살포를 중단한다면 비용 지원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제안했다. 박 대표는 자유북한운동연합 활동을 잠정중단하는 대신 다른 탈북자단체와 북한인권단체들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그러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통일부에서는 연락이 없었다.
  • ▲ 지난 26일 열린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 인사청문회. 정치권에서는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아도 청와대가 임명을 강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뉴데일리 DB.
    ▲ 지난 26일 열린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 인사청문회. 정치권에서는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아도 청와대가 임명을 강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뉴데일리 DB.
    박 대표는 지난 3월11일 통일부 관계자에게 연락해 “어찌 돼가고 있느냐”고 물었다. 이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열띤 토론을 벌였는데 지원이 어려울 것 같다”고 답했다. 박 대표는 지난 3월14일 다시 통일부를 찾았으나, 국장급 인사가 “올해에는 비용 지원이 어려울 것 같다”며 양해를 구했다. 구체적인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박 대표는 “북한인권활동을 지원하는 한 의원을 통해 지원 거절 이유를 알게 됐다”고 밝혔다. 김연철 통일부장관 내정자와 서호 청와대 국가안보실 통일정책비서관이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면서 통일부 각 부서로부터 업무 관련 자료를 보고받았는데, 여기에 ‘탈북자단체 및 북한인권단체 지원계획’이 포함돼 있었고, 이를 본 김 내정자가 “왜 이런 일에 자금을 지원해야 하느냐”고 지적한 것이 자금지원을 끊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게 이 의원의 전언이었다.

    “김연철 내정자와 서호 비서관이 자료 보고 받아”

    박 대표가 통일부를 찾았던 날은 청와대가 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을 통일부장관 후보로 내정한 지 엿새가 지났을 때였다. 당시 통일부 관계자들은 장관 후보 인사청문회 때문에 다들 바빠 보였다는 것이 박 대표의 말이다.

    결국 이날 “통일부가 대북전단 살포 중단을 요구하며 북한인권단체에 대한 자금지원을 중단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튿날 야당은 여당과 정부를 비판했다. 특히 박 대표를 돕던 의원이 통일부의 ‘조건부 자금지원’을 강력히 비판했다. 

    국회의원들이 나서면서 통일부의 태도가 바뀌었다. 실제로 지난 2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한 조명균 통일부장관은 “탈북자단체들의 ‘자유북한주간’ 참가비용 지원을 중단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면서 “현재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국회에서 일이 터지자 지난 22일 통일부의 국장급 관계자가 연락해 왔다. 이 국장급 관계자는 "'대북전단 살포 중단’ 말고도 조건이 하나 더 붙었다”면서 “지난해 4월27일 남북 정상이 내놓은 ‘판문점선언’과 이후 시행된 정부정책에 대한 비난을 멈추면 안 되겠느냐? 그러면 지원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박 대표는 “판문점선언에 어떤 내용이 있느냐.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완화한다’며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한 2조1항을 비롯해 북한인권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적대행위’로 간주하지 않았느냐”며 “개인적으로는 이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일단 연대 단체에 의견을 묻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34개 탈북자단체와 북한인권단체 대표들을 불러 ‘통일부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가’를 놓고 표결했다. 압도적 차이로 부결됐다.
  • ▲ 지난해 5월 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북한자유주간' 행사 가운데 하나. 북한 정권이 세계에서 가장 싫어하는 행사가 북한자유주간이다. ⓒ뉴데일리 DB.
    ▲ 지난해 5월 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북한자유주간' 행사 가운데 하나. 북한 정권이 세계에서 가장 싫어하는 행사가 북한자유주간이다. ⓒ뉴데일리 DB.
    당시 탈북자단체와 북한인권단체 대표들은 “우리가 단체를 만들고 싸워온 이유가 무엇이냐? 김씨 일가의 세습독재와 그 아래에서 신음하는 북한주민을 해방시키는 게 목표 아니냐”며 “그런 김씨 일가의 인권탄압에 침묵할 수는 없다”고 분노했다는 것이 박 대표의 말이다.

    “보도, 사실과 다르다”던 통일부, “뭐가 다르냐” 질문에는 침묵

    한편 통일부는 “북한인권단체 지원에 조건을 걸었다”는 언론보도와 관련해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27일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북한자유주간 관련 일부 보도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뭐가 다른지 설명해 달라”는 질문에는 “구체적인 내용은 사업 성격상 확인해 드릴 수 없음을 양해 바란다”면서 “더 이상 말씀드릴 내용이 없다”고 답변을 피했다.

    박 대표에 따르면, ‘자유북한주간’에 참가하려는 탈북자단체와 북한인권단체 관계자 17명은 현재 유튜브 등을 통해 모금을 벌이고 있다. 현재까지 모금된 금액은 2000만원 안팎.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십시일반으로 도움을 줬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의 비행기 요금 외에 체류비용 등은 여전히 모자란 상태다.

    오는 4월28일 미국에서 열리는 ‘자유북한주간’이 한국정부의 ‘정치적 논리’ 때문에 열리지 못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문재인 정부에 불만인 트럼프 정부 관계자들이 이를 지적하며 북한 비핵화는 물론 한일 간 갈등에서도 한국 측에 냉정한 자세를 보일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