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은 美北 대립과 군사충돌… '제2 애치슨 선언’으로 전략이익선 후퇴시킬 수도
  • ▲ 15일 평양에서 외교관과 외신기자들을 불러놓고 기자회견을 하는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과 외교관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15일 평양에서 외교관과 외신기자들을 불러놓고 기자회견을 하는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과 외교관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15일 오전 평양에서 외신기자들과 외교관들을 불러놓고 기자회견을 가졌다. 최선희 부상은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중단을 고려하고 있다”며 “김정은이 빠른 시일 내에 결단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은의 공식 성명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세계는 트럼프와 김정은이라는 두 불확실한 요소(Factor)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다.

    최악의 상황 1) 2017년 11월 이전 '핵전쟁 위협'할 때로 회귀


    최선희 부상이 미국 측을 떠보기 위해 위협하는 것이라면, 미국과 북한 간의 대화 분위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필두로 미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대화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밝힌 상태다. 그러나 김정은이 공식 성명을 통해 “대화는 끝났다”고 하는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

    미북 사이 화해 분위기가 끝나면, 미국은 대북제재를 더욱 강화할 것이고, 북한은 이에 맞선다며 도발을 자행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도발은 핵실험보다는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또는 인공위성 발사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갖고 있는 탄도미사일 가운데 ‘화성-12형’과 ‘화성-14형’은 중장거리 사정권을 갖고 있다. 여기에 더미 탄두를 넣고 한국과 일본, 미국의 영해를 교묘히 피해서 발사할 경우에는 미국이 당장 공격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북한이 양강도나 자강도에 새로 건설한 비밀 미사일 기지에서 ‘화성-14형’을 정남향으로 발사하면, 오키나와 인근 수백 킬로미터 또는 오키나와와 괌 사이에 떨어뜨릴 수 있다. 이때 발사 각도를 고각이 아니라 일반적인 장사정 각도에 맞출 경우 대기권 바깥을 지나가기 때문에 미국과 일본이 ‘영공침범’이라고 비난하기는 쉽지 않다.

    아니면 서해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에서 ‘은하’ 시리즈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로켓을 쏠 수도 있다. 여기에 중국에서 조립한 통신위성 등을 탑재해 지구궤도에 쏘아 올린 뒤 “조선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인공위성이 지금 지구궤도를 돌고 있다”고 선전할 수도 있다. ‘평화적 우주개발’이라고 주장하면서 실은 군사용 위성을 올릴 수도 있다.

    북한이 강력히 반발하면, 미국은 연합군 병력을 더 부름과 동시에 주일미군 기지에 전시물자들을 배치하기 시작할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미국과 북한 사이에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흐르게 된다.

    최악의 상황 2) ‘제2의 애치슨 선언’... 아-태 전략이익선 동쪽 후퇴


    한국 언론을 통해서는 많이 전해지지 않았지만 미국 내 안보전문가들의 여론이 근거다. 바로 미국이 6.25전쟁 전처럼 ‘아시아 태평양 전략이익선’을 동쪽으로 후퇴시킨다는 주장이다. 즉 ‘제2의 애치슨 라인’을 선언할 수도 있다.

    여기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일본과 괌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미 주일미군 기지에 파견돼 있는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프랑스 병력과 함께 동해상을 넘어 남해와 서해상에서도 북한의 불법환적을 단속할 것이다. 단속 강도 또한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부시 정부 시절의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구상(PSI)’ 때처럼 불법환적이 아니라고 해도 북한 선박 또는 북한을 들렀다 나오는 선박은 무조건 강제 검문검색을 할 수도 있다. 북한은 당연히 반발하며 군사적 충돌까지 시도할 것이다.
  • ▲ 2017년 8월 15일 벌어졌던 주한 미대사관 포위시위 당시 모습.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7년 8월 15일 벌어졌던 주한 미대사관 포위시위 당시 모습.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럼프 대통령은 ‘위대한 미국 재건’을 기치로 걸고 당선됐다. 그의 주장 가운데 특히 인기를 끄는 대목은 강력한 군사력 재건이다. 하지만 현재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나 연방예산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이 말하는 군사력 재건이 불가능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동맹국을 향해 “안보 무임승차하지 말고 돈 좀 내라”고 압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안 듣는 듯 했지만 지난해 GDP의 1.2%였던 국방예산을 올해부터 1.5% 이상으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전년 대비 평균 20% 이상 인상이다. 폴란드는 아예 “우리가 매년 20억 달러(한화 2조2700억 원)을 낼 테니 미군이 주둔해 달라”고 제안한 상태다. 일본 또한 주일미군 주둔 부담금 증액에 원칙적으로 동의한 상태다. 하지만 거액의 증액에는 난감해 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미군 병력이 주둔하고 있고, 가장 위험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부담금 증액에 매우 소극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더욱 자극하는 것은 한국 언론들의 보도와 정치전문가들의 주장이다. “한국이 세계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미국보고 나가라고 해도 나가지 못할 것”이라거나 “우리가 말만 하면 미국이 전술핵무기를 한국에 재배치할 것”이라는 주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자존심을 긁는 이야기다.

    게다가 한국 정부는 북한 핵문제의 피해자이자 당사자면서 ‘중재자’를 자처하고, ‘인도적 지원’이라며 대북경제협력을 추진하는 점도 미국 정부 관계자들을 화나게 만드는 대목이다. 이런 모습이 수 년 동안 계속되다 보니, 미국 내에서는 “한국에게 미국은 필요없는 듯하니 일단 철수했다가 나중에 피눈물 흘리면서 도와달라고 하면, 그때 훨씬 유리한 지위와 대우를 받으며 들어가자”는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최근 일부 해외 안보전문가에 따르면, 미국 정부 관계자들도 ‘한반도에서의 일시적 철수론’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미연합훈련 종결과 주한미군 내 전투병력 감축, 주일미군 강화, 주일미군 기지 내 연합군 병력 주둔 등이 이런 철수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풀이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와중에 미국이 밝힌 한미연합훈련 종결 결정은 일본에도 큰 영향을 줬다. 만일 미국이 한국과 자연스레 거리를 벌리면서 미군을 철수시키게 되면, 그 다음 차례는 일본이라는 생각에서다. 일본은 ‘맥아더 헌법’이라는 ‘평화헌법’ 체제가 된 이후 군사력 증강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아베 정부를 비롯해 우익 진영에서는 ‘보통국가론’을 내세우며 군사력 증강을 부르짖지만 일본 국민들의 절대다수는 이들을 따르지 않는다.

    주한미군 철수 후 일본, 미군에 돈 바치며 “살려 달라” 할 것


    “아베 정권이 강제징집하면 되지 않느냐”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금의 일본 사회는 ‘쇼와 시대(1926년부터 1988년까지 히로히토 일왕이 재위에 있던 시기)’가 아니다. 일본 사회는 한국보다 더욱 개인적 성향이 강해졌고, 안보는 ‘신기한 이야기’ 또는 ‘전문분야’가 돼 버렸다. 이런 일본에서 젊은이들을 강제로 입대시킨다면 폭동이 일수도 있다.

    그런데 지난 70년 동안 일본의 ‘안보방패’ 역할을 맡았던 한국이 쏙 빠지고, 일본이 아시아 안보의 최전선에 서게 되면 사회 전체적인 부담이 매우 커진다. 기업들은 노동력 부족, 정부는 군사장비 도입과 병력 유지에 막대한 예산을 들이부어야 한다. 한국 전문가들이 상상하는 수준이 아니다. 20만 엔(한화 약 203만 원)을 주고 숙식을 제공해도 자위대에 입대하지 않는 일본 청년들이 정부의 명령을 들을지도 고민해야 한다.
  • ▲ 온라인 게임 '홈프론트'의 시작 화면. 통일 한국의 지도다. ⓒ'홈프론트' 트레일러 화면캡쳐.
    ▲ 온라인 게임 '홈프론트'의 시작 화면. 통일 한국의 지도다. ⓒ'홈프론트' 트레일러 화면캡쳐.
    이렇게 되면 일본 사회 내부에서는 불안감이 고조되고, 결국 미국에 더욱 기댈 수밖에 없게 된다. 물론 미국이 달라는 대로 돈을 주면서 말이다. 이후 일본 사회는 ‘중국-북한에 맞서는 최전선’이라는 이유 때문에 급속도로 우경화·강성화 될 것이다. 그리고 ‘반중’과 ‘반미’ 성향이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강해질 수도 있다.

    오히려 ‘차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상황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통 크게 양보하는 것이다. 1994년 ‘제네바 합의’나 2003년 6자 회담 체제 결성과 같이 ‘대화’로 모두 해결하자는 태도를 보이면서, 북한이 요구하는 ‘점진적 비핵화와 단계적 상응조치’를 받아들일 경우 ‘전쟁’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례로 봤을 때 이 선택은 가시적인 성과를 얻기 어려우며, 시간을 끌수록 남북한은 미국에 실망감을 안겨줄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가 '점진적 비핵화' 수용해도 한국에 좋을 것 없어


    그 실망감은 자연스럽고 평화로운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해체를 가져올 수 있다. 지금 한국과 미국, 중국, 북한 지도자가 누구인지 떠올려 보면, 미국 입장에서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계속 유지한다고 해서 이익을 볼 부분은 없다.

    현재 한미상호방위조약 제6조는 “이 조약은 무기한으로 유효하다. 어느 당사국이든지 상대방에 통고한 후 1년 뒤에 본 조약을 종결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추가 양해사항에는 “조약 당사국은 상대방이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을 받을 때를 제외하고는 그를 원조할 의무를 지는 것이 아니다. 또 이 조약의 어떤 경우도 대한민국의 행정적 관리 하에 합법적으로 존치되기로 된 것과 미합중국에 의해 결정된 영역에 대한 무력 공격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미합중국이 대한민국에 대해 원조를 제공할 의무를 지우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무력충돌이 없고 주한미군을 건들지 않는 한반도 통일이나 친중 세력의 득세로 한반도 전체가 중국 영향권에 평화롭게 복속되는 것을 미국이 막아줄 의무는 없다는 뜻이다. 지금도 국내 각계각층에는 친중 세력들이 득세하고 있다. 북한과의 무조건적 통일을 지상가치로 여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통일 또는 한국의 중국 종속화가 당장 막대한 인명피해를 가져올 가능성도 낮다. 그러나 이 상황이 되면, 수많은 한국인들이 고국을 등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해외로 떠난 한국인들은 더 이상 본국의 도움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온 가족이 학살당할 가능성이 적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의 소멸 수순은 ‘차악’이라 부를 만하다.

    물론 대단히 가능성이 적지만 ‘꿈’ 같은 미래를 기대해 볼 수도 있다. 한국 정부가 적극 나서서 김정은을 비핵화 대화 테이블로 데리고 나오고,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면서, 미국을 설득하고, 일본도 비핵화를 돕도록 만드는 길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정부가 먼저 주변국의 입장에서 각국마다 무엇이 이익이 되고 손해가 되는지, 어떤 점이 공통된 이익인지 파악해 동시다발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설득 대상도 주변국 정부와 국가지도자뿐만 아니라 해당국 국민들까지 포함된다.

    한국 정부가 2020년 이전에 이런 일을 외교적으로 해낼 수 있다면, 한국은 세계적인 골칫거리인 북한 핵·탄도미사일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한반도 평화통일을 이뤄낼 수 있고, 덤으로 미국과 중국, 일본 사이의 갈등까지 풀어낼 여지를 가질 수 있다. 즉 세계적 지도국가로 발돋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우리는 거울과 TV를 보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