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조작 논란' 전자투개표기와 '선관위 장악' 의혹③… 대통령이 상임위원 지명, 관행이 문제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전경/ 선관위 홈페이지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전경/ 선관위 홈페이지
    지난 11월 10일과 19일 뉴데일리는 <추적- ‘조작 논란’ 전자투개표기와 ‘선관위 장악’ 의혹>이라는 기사를 2회에 걸쳐 보도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기한 ‘세계선거기관협의회(A-WEB)의 특정 전자투개표기업체 밀어주기 의혹’, 이른바 ‘A-WEB’ 사태의 내용과 A-WEB 사태 관련 검찰 수사 중인 김용희 A-WEB 사무총장(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의 중앙선관위 상임위원 추진설을 다룬 기사였다.

    해당 보도가 나간 후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11월 13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청와대가 사실상 선관위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려는 목적으로 김용희 전 사무총장을 선관위 상임위원으로 임명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고, 이 과정에 청와대 모 실세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의혹에 대해 청와대가 스스로 입장을 밝히고 해명해 줄 것을 공개적으로 요청한다”고 밝혔다.

    이후 뉴데일리는 후속 취재 과정에서 “청와대가 김용희 사무총장 카드 대신 두 명의 인사를 차기 중앙선관위 상임위원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정보를 복수의 취재 경로를 통해 입수했다. 거론된 인물 중 한 명은 선관위를 퇴직한 후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 활동한 인물이었고, 또 한 명은 현직 시도선관위 상임위원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결국 청와대가 선관위 전·현직 인사들을 차기 상임위원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의미다.

    후임 상임위원 두고 뒤숭숭한 선관위

    중앙선관위 전 사무총장 출신인 김용희 A-WEB 사무총장의 선관위 상임위원 추진설을 두고, 야당은 ‘청와대가 선관위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라며 강력하게 비판했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인물이 상임위원이 되면 ‘선관위 장악’ 논란이 재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 선관위 내부에는 “누구는 청와대의 모 실세가 밀고 있다” “누구는 모 전임 사무총장이 뒤에서 밀고 있다” “누가 오면 누구 라인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는 등의 소문이 돌고 있어 분위기가 뒤숭숭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직 선관위 고위 관계자 A 씨는 “선관위는 선거를 관리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선관위가 만에 하나라도 정치적 입김에 휘둘리기 시작하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기댈 곳이 없어진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그렇다면 ‘공정’의 대명사로 알려진 선관위라는 조직이 정말로 상임위원 한 사람에 의해 휘둘릴 수도 있는 것일까?

    1963년 1월 창설된 선거관리위원회는 국회·정부·법원·헌법재판소와 같은 지위를 갖는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위원회와 사무처로 구성되어 있다.

    사무처는 장관급인 사무총장이 맡고 있으며, 위원회는 대통령 임명 3명, 국회 선출 3명, 대법원장 지명 3명을 포함하여 모두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중립성을 위해 선관위 위원들은 특정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활동 또는 정치 관여를 금지하고 있다.

  • '관례상' 대통령이 임명하는 상임위원

    위원회는 위원장과 상임위원, 위원으로 이루어진다. 위원장은 상근을 하지 않고 장관급인 상임위원이 상근을 하며 위원장을 보좌하고, 위원장의 명을 받아 사무처를 감독한다. 선관위 위원의 임기가 6년인데 반해 상임위원의 경우 3년이다.

    선관위법에서는 위원장과 상임위원은 위원 중에서 호선(互選 : 어떤 조직의 구성원들이 서로 투표하여 그 조직 구성원 가운데에서 어떠한 사람을 뽑는 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호선 절차는 사문화 된 지 오래다. 선관위 위원장은 현직 대법관이, 상임위원은 대통령이 지명하는 위원이 맡는 것이 오랜 관례처럼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선관위 현직 고위인사 B 씨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상임위원에 대해 위원회에서 호선 절차를 거치기는 하지만,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상임위원을 직접 임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3년 임기를 마친 상임위원 후임으로 결국 대통령이 임명하는 위원이 형식적 호선 절차를 거쳐 상임위원에 선출되는 것이다. 

    B 씨는 “선관위가 독립된 헌법기관이지만, 위원장을 대법관이 겸임을 하고, 상임위원을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부분에서 외부의 입김이 작용할 여지가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선관위 중립성 훼손에 대한 우려

    현재 선관위 상임위원인 문상부 위원의 임기가 12월 10일 자로 끝나기 때문에 청와대는 조만간 후임 상임위원을 결정해야 할 입장이다.

    B 씨는 “선관이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으면서, 동시에 정치적 배경이 있는 사람이 선관위 상임위원으로 오면 그동안 애써 쌓아온 선관위 조직의 정치적 중립성이 흔들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의 말이다.

    “현재 선관위는 위원장, 상임위원, 사무총장 중에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권한이 집중되지 않도록 균형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놓았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상임위원이 결재라인에 있지는 않다. 하지만 어느 조직이든 결국 사람이 문제 아니겠느냐. 내부 사정을 잘 알면서 동시에 강력한 정치적 입김을 동원할 수 있는 이가 자기 욕심을 부려서 월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또 다른 전직 선관위 고위 관계자 C 씨는 상임위원 한자리 때문에 선관위의 중립성이 훼손될 수도 있느냐는 질문에 “개연성은 있다”고 말했다.

    “선관위 출신 상임위원이 올 경우 자기를 반대했던 직원들을 감정적으로 대하면 조직이 흔들릴 수가 있다. 최근 문제가 된 A-WEB 사태와 후임 상임위원 자리에 누가 오느냐를 두고, 현재 선관위 직원들 간에도 마음의 벽이 생겼다. 선관위가 이런 문제로 국민들에게 걱정을 끼쳐드리고 있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 국민에게 가장 신뢰받던 기관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를 생각하면 안타깝다.”

    그는 “위원들은 정당 추천을 받아오든, 대통령의 지명으로 오든 헌법적 책무를 다한다는 생각으로 일을 해야 한다”며 “자신이 추천한 사람이나 정당 쪽으로 조금이라도 치우친 생각을 가진다면 헌법기관 구성원으로 이미 자격을 상실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 "제도적인 개선점 고민할 때"

    그렇다면 외부의 정치적 입김을 차단하고 헌법이 보장하는 선관위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완벽하게 보장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전직 선관위 고위 관계자 C 씨는 “일단 선관위에 몸담았으면 퇴임 후 절대로 정치를 할 생각을 하면 안 된다”고 충고했다.

    “선관위 고위직으로 퇴임했으면 정말 국가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정치권에 발을 들이면 안된다. 선관위 직책을 발판으로 정치적인 목적을 이루려고 하다 보면 결국 무리수가 생기게 되고, 본인이 공직에 있으면서 수십 년 간 쌓아온 명예를 한순간에 훼손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선관위는 선거관리 측면에서 세계적인 수준이다. 직원들의 자부심도 무척 크다. 누가 새로운 상임위원으로 오든지 최근 불미스러운 사태로 직원들 간에 생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직원들이 서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C 씨는 “선관위가 외부의 입김으로부터 완벽히 차단되고, 독립적인 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대법관이 선관위 위원장을 겸직하는 것과 대통령이 임명하는 상근 상임위원 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선관위는 위원장이 상근직이 아니라, 위원 중에 한 명이 상근하면서 위원회라는 의사결정 기관과 사무처라는 집행기관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하지만, 현재 선관위 업무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헌법기관으로서 위상도 분명히 세워야 한다. 이제는 상임위원을 따로 두는 것보다 위원장이 상근을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대법관이 위원장을 겸직하는 관례부터 바꿔야 한다.”

    취재에 응한 다수의 전·현직 선관위 고위직 관계자들은 “지금 당장은 법과 제도, 관례를 바꾸기 어렵다면 정치적 중립성을 가진 외부 인사가 상임위원을 맡는 것이 현실적인 방편”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지난 30년 동안 한국의 민주화 과정이라는 게 곧 '공정한 선거를 하자'는 것이었다"며 "이 과정에서 공정선거를 관리하는 선관위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존재로 받아들여졌다"고 말했다. 

    "요즘 선거법이 너무 복잡하고 애매해서 선거에 출마한 사람들이 세부 사항을 일일히 알기가 어렵다. 선거에 나선 후보들은 어떤 행위가 적법한지 아닌지 선관위에 의뢰하는 경우가 많은데, 선관위가 민감한 문제를 놓고 정치적인 바람을 타면 편향된 해석이 나올 수가 있다. 국민들이 선관위의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사회적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따라서 인사 문제에 선관위의 중립성을 훼손할 수 있는 그 어떤 정치적 요인도, 판단도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기회에 선관위 위원회 구성에 대한 제도적인 개선점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