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으로 사옥 이전한 우란문화재단 첫 기획작, 10월 24일 개막
  • 한 스페인 가족의 침잠했던 욕망이 집착과 질투, 피로 얼룩진다.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가 10월 24일부터 11월 12일까지 성수동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에서 국내 초연된다.

    '베르나르다 알바'는 우란문화재단의 성수동 사옥 이전을 기념한 기획프로그램인 '우란시선'의 첫 번째 작품으로, 20세기 스페인을 대표하는 극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희곡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이 원작이다.

    '씨 왓 아이 워너 씨'로 잘 알려져 있는 마이클 존 라키우사에 의해 넘버 20곡의 뮤지컬로 재탄생됐다. 작품은 1930년대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농가를 배경으로 권위적인 여성 가장 베르나르다 알바가 이끄는 집안의 이야기를 그린다.

    "난 이 평화와 고요를 즐길 거야. 오늘도 무사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내 보호 안에서는 모두가 편안하게 숨 쉴 수 있지."(베르나르다) / "싫어, 싫어! 난 익숙해지지 않을 거야. 난 갇혀 지내고 싶지 않아. 난 이 방구석에서 나의 아름다움을 잃고 싶지 않아."(막내딸 아델라)

    남편이 죽은 뒤 베르나르다를 비롯한 집안의 여자들은 8년간 상복을 입고 외부와 단절한 채 지낸다. 베르나르다는 정신병을 가진 노모와 다섯 딸을 강압적으로 통솔하지만 가족들은 억눌러왔던 욕망에 의해 시기하고 대립하며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다.
  • 공연은 단조롭고 숨 막히는 공간에서 스페인 남부의 전통무용인 플라멩코의 정열적인 몸짓과 격정적인 음악으로 100분 동안 펼쳐낸다. 연출과 안무는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 '시라노' 등의 구스타보 자작이 맡았다. 23(aka 김성수)가 음악감독을, 플라멩코 안무가이자 댄서인 이혜정이 협력 안무가로 참여했다.

    스페인권인 아르헨티나 출신의 구스타보 자작 연출은 "리딩작업을 때 원작을 같이 읽으며 한국사회와 맞는 감성을 찾으려고 했다"며 "정영주 배우가 한(恨)의 정서에 대해 알려줬는데 이 작품과 잘 맞는 거 같다"고 밝혔다.

    우란2경은 블랙박스 형태의 공연장으로, 이번 무대는 삼면에 객석을 두는 형태로 배치했다. 무대 위 거대한 문과 사다리꼴의 프레임, 그 안에 놓여있는 열개의 의자는 여성들이 억압적인 구조에 갇혀서 감정을 억누르고 사는 것을 암시한다.

    특히, '베르나르다 알바'는 10명이 여자 배우만 출연하는 좀처럼 보기 힘든 뮤지컬이다. 타이틀 롤의 정영주를 비롯해 황석정, 정인지, 백은혜, 김환희, 전성민, 오소연, 이영미, 김히어라, 김국희 등 10명의 여성 배우가 원캐스트로 나선다. 
  • 정영주는 "여배우만 나오는 공연은 처음이다. 내용이 무엇인든 사명감 하나로 뭉쳤다"면서 "일부러 들춰내서 보고 싶지 않은, 깊이 숨길수록 누군가에게 지적받지 않고 흠이 되지 않는 본능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본을 읽고 우리가 당연히 해야할 이야기였다. 사람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괜찮은 여배우 10명이 모여 스태프들과 치열하게 만들었다. 성별만 생각하기보다 사람의 이야기로 확장시켜 보면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는 유모 폰치아(이영미)가 부르는 프롤로그로 시작된다. 폰치아는 베르나르다 집안의 사연을 스페인 민요풍의 구슬픈 노래로 들려주고, 10명의 배우는 간결하면서 각자의 개성을 살린 안무와 함께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베르나르다의 기도', '널 위한 노래', '바다로 갈거야', '막달레나', '앙구스티아스', '아멜리아', '마르티리오', '아델라', '꿈에서 다시 만나', '종마', '문을 열어' 등의 뮤지컬 넘버는 전체 서사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제 몫을 충실히 소화내는 배우들의 열연도 묵직하다.

    제작사인 우란문화재단은 "하나의 문학이 음악이 되고 또 몸짓이 돼 새로운 스타일의 감각적인 콘텐츠로 관객에게 선보이고자 한다. 앞으로도 장르와 소재, 표현 방식에 제약을 두지 않고 문화예술계가 필요로 하는 역량 있는 작품들을 소개할 것"이라고 전했다.

    [사진=우란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