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제주 관함식 참가 해군에 자국 국기·태극기 게양 요청…日해자대 불참 가능성 제기
  • ▲ 日해상자위대 함정 선미에 게양된 욱일기. 일본과 영국 함정들은 선수에 국기를, 선미에 부대기를 게양한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日해상자위대 함정 선미에 게양된 욱일기. 일본과 영국 함정들은 선수에 국기를, 선미에 부대기를 게양한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주에서 열릴 해군 관함식을 앞두고 한국과 일본 사이에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다. ‘욱일기(旭日旗)’ 때문이다. 한국 해군은 지난 9월부터 일본 해상자위대에 “욱일기를 달고 한국에 오는 것을 자제해 달라”고 거듭 요청하고 있고, 일본 측은 “그럴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고 한다.

    해군은 지난 9월 26일에는 관함식에 참석하는 15개국 해군에게 “제주 국제관함식 해상사열 때 자국 국기와 태극기를 게양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고 밝혔다. 해군은 관함식 참석 함정들에 자국 국기와 태극기를 게양해 달라는 것이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제시됐으므로 일본 또한 따르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그러나 9월 28일 오노데라 이쓰노리 日방위상은 “자위대 함대기 게양은 의무화 돼 있고, 유엔 해양법으로도 이는 군함의 선적을 외부에 나타내는 표기에 해당되는 것”이라며 욱일기 게양을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한국 정부가 다시 외교부를 통해 관함식에 참석할 日해상자위대 함정에 ‘욱일기’를 달지 말아달라는 ‘해군의 입장’을 재전달했다는 소식이 9월 30일 나왔다. 그러자 일본에서는 좌익 성향으로 알려진 ‘아사히 신문’이 같은 날 “한국 해군이 국민정서를 앞세워 욱일기를 게양하지 말라고 요청했고, 이에 일본 정부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는 보도를 내놨다.

    日아사히 신문은 “비상식적인 요구로, 욱일기를 내리는 것이 조건이라면 관함식 불참까지 검토할 것”이라는 방위성 관계자의 주장을 소개하면서 “일본 자위대 함정 깃발은 민간 선박과 구별을 위한 국제법상의 규정 때문으로 욱일기 게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에서 ‘전범 상징’이라는 욱일기, 일본에서는?

    일부 언론은 “제주 관함식에 참석하는 日해상자위대 함정에 욱일기를 게양하지 않게 해달라는 청와대 청원까지 떴다”면서 ‘욱일기’를 앞세운 ‘반일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본제국주의 시대의 상징이자 전쟁범죄 상징이 ‘욱일기’라는 설명도 붙는다. 그런데 이 ‘욱일기’가 실은 ‘전범기’가 아니라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 ▲ 日아사히(朝日) 신문의 회사 깃발. ⓒ위키피디아 공개사진.
    ▲ 日아사히(朝日) 신문의 회사 깃발. ⓒ위키피디아 공개사진.

    일본 사회에서는 ‘욱일기’가 일본제국주의 상징이 아니라는 주장이 ‘보편적 상식’이라고 한다. 국내외 자료와 일본 역사 전문가들에 따르면, ‘욱일기’는 1870년부터 군대가 사용했다고 한다. 첫 사용은 일본 제국 육군기였다. 당시 붉은 원을 둘러싼 붉은 선은 16줄이었다. 일본 제국 해군은 ‘욱일기’를 1889년부터 해군 군함기로 사용했다. 얼마 뒤부터는 일본 제국 해군 제독을 상징하는 깃발에 8개의 붉은 줄이 있는 ‘욱일기’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 제국이 ‘욱일기’를 만든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일본에서 오래 전부터 널리 쓰던, 아침 해가 떠오르는 모양을 표시한 무늬 ‘욱광(旭光)’을 일본제국군대의 상징으로 차용한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일본에서는 16세기 기타규슈 지역의 다이묘인 ‘류조지 다카노부’의 집안 문장(紋章)에 ‘욱광’이 사용됐다는 주장도 한다. 그런데 1870년 이후 이를 사용한 일제 군대가 한반도와 만주, 중국 본토, 인도차이나 반도를 침략할 때 부대기로 사용하면서 침략을 당한 나라들에서는 ‘욱일기’가 일제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라고 한다. 때문에 일제의 침략을 당한 나라들은 ‘욱일기’에 대한 반감이 강하다.

    하지만 일본 사회에서는 2차 세계대전 종전 때부터 1952년 4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 때까지 일본을 점령했던 연합군 최고사령부(SCAP, 일본에서는 GHC 또는 GHC 막부)가 일제 시대의 상징을 모두 제거해버렸다고 생각하기에 이때 금지되지 않은 ‘욱일기’는 일제 침략의 상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좌익 성향으로 분류되는 '아사히(朝日) 신문' 또한 회사 깃발 상징으로 '욱광'을 사용했다.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일본 점령 때 일본 제국군과 경찰, 극우단체를 모두 무장해제 시켰고, 일제 대본영에 협력했던 공무원들을 모두 쫓아냈으며, 지역 호족제 폐지, 재벌 해체, 치안유지법 폐지, 특별고등경찰 폐지 등을 통해 일본을 과거와 단절시키려 했다. 이 과정에서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유럽에서와 같이 일제의 상징을 지정해 쓸 수 없게 금지시켰는데 그것이 일본 전쟁범죄의 상징 깃발인 ‘대정찬익기’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도조 히데키 총리가 속해 있던 극우단체 ‘대정찬익회’의 깃발이었다.

    일본 사회에서는 이런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조치로 일제 시대를 청산했다고 생각하지만 침략을 당한 나라들은 아니었다. 침략을 당했던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의 눈에는 ‘욱일기’야말로 일제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일본 사회에서는 이런 외국의 반발과 비난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나치의 경우 나치당의 상징인 ‘스와스티카’는 전범 상징으로 지정돼 사용이 금지됐지만, 프로이센 시대 전부터 사용했던 철십자는 지금도 독일군에서 사용하는 것을 지적하며 “왜 독일은 돼는데 일본은 안 되느냐”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본 사회 일각에서는 “그렇다면 욱일기가 아니라 일장기(히노마루)야말로 진정 일제 때 만든 것이니 금지하자”고 강변하기도 한다.

    한일 간 감정 대립으로 삐걱거리는 해군 관함식

  • ▲ 2016년 10월 육상자위대를 사열하는 아베 신조 日총리 뒤로 욱일기가 보인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6년 10월 육상자위대를 사열하는 아베 신조 日총리 뒤로 욱일기가 보인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해군에 따르면, 10월 10일부터 열리는 국제관함식에는 14개국 해군 함정 21척, 장병 1만여 명, 한국 해군 함정까지 포함하면 50여 척의 군함이 참가할 예정이다. 1998년 시작한 관함식 가운데 사상 최대 규모라고 한다. 각국에서 보낼 군함은 대부분 정해졌지만 4척을 보내기로 한 美해군은 2척, 1척을 보내겠다는 日해상자위대는 관함식에 어느 함정이 참석하는지 아직 확정해주지 않았다.

    한국 해군은 당초 “욱일기는 일본 해상자위대의 부대기이므로 국제관례에 따라 강제로 게양을 금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다 지난 몇 달 사이에 입장을 바꿔 “욱일기를 달고 오지 말라”고 요구한 것이다. 한국 해군이 거절에도 불구하고 거듭 ‘욱일기’ 대신 자국 국기를 달라고 요구하자 일본 정부 또한 감정이 상한 듯 한 반응을 보였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한국과 미국, 일본이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한국과 일본, 그것도 민간 분야가 아닌 군에서 감정적으로 대립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것이 한미일 삼국 연대에 균열을 일으킬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한일 양국에서 조금씩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