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고속철 개통열차 탑승기: 홍콩 MTR 예상과 달리 일일 탑승객 갈수록 줄어
  • 지난 23일 홍콩고속철이 오랜 논란 끝에 개통됐다. 논란의 핵심은 홍콩 고속철 역사 내에 홍콩 및 중국 출입국 심사대를 설치하여 중국 치외법권 지대를 두는 일지양검(一地兩檢)에 있었다. 홍콩 범민주파의 입법회 일지양검 조례 통과 저지 시도, 잦은 부실공사로 인한 3년의 공사 지연, 홍콩고속철 운영사 MTR조차 투자비 회수 불가를 인정한 천문학적 공사비(864억 홍콩달러, 한화 약 12조 3,600억 원)가 들어 세계에서 제일 비싼 고속철이라는 비난, 소요시간과 관련한 효율성에 관한 의문 등 2009년 착공 후 개통까지의 과정은 세계 고속철 건설사상 가장 소란스러웠다.

    홍콩과 중국 광저우를 잇는 철도는 1911년 영국에 의해 처음 건설 개통됐으며, 1949년 중국 공산화 이후 중단됐으나 등소평 집권 후 개혁개방 정책에 따라 1979년 운행을 재개했다. 홍콩 고속철과 일지양검은 사실상 중국정부의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 추진 의지의 결과물이다. 작년 7월 일지양검 실시안을 홍콩정부를 통해 기습적으로 발표한 이래 범민주파에 의한 조례통과 지연이 있었지만, 홍콩고속철은 일대일로의 일환으로 세계의 금융 중심지 홍콩과 중국 각지와의 왕래를 원활히 하려는 의도가 있다.

    필자는 9월 23일 개통일 중국 심천의 선전베이(深圳北)역 발 오전 6시 44분 중국측 개통열차(G5711호)에 탑승했다. 새벽 4시 45분 홍콩을 출발, 버스(홍콩)와 택시(심천)를 이용하여 한 시간 반 만인 6시 15분에 선전베이 역에 도착했다.

    선전베이 역에서는 고향으로 중추절 귀성객들만 붐볐을 뿐 중국사상 첫 국제열차를 축하하는 행사 분위기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중국발 제1호 열차 좌석표가 아직 남아있다는 정보를 사전에 입수, 출발 30분 전 역에 도착해 여유 있게 표를 구입했다. 반면 홍콩에서의 고속철 출발점인 웨스트 카우룬(西九龍)역에서 오전 7시 출발하는 홍콩발 1호 열차표 (G5736호)는 일찌감치 매진됐다. 첫 출발의 감격을 누리기 위한 홍콩 철도 팬들이 자정부터 웨스트 카우룬 역에서 기다렸다.

    예고된 대로 선전베이 역에서 홍콩행 국제고속철을 타기 위한 출국심사는 없었고, 본인 확인을 위한 여권 검사는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탑승 절차는 중국고속철 탑승 때와 동일했다. 전용 개찰구 앞에서는 여러 명의 중국기자와 외신기자들이 현장을 취재하고 있었고, 중국 철로국 직원들이 개통열차 탑승 기념 플래카드를 들고 탑승객들의 기념사진 촬영을 도와주고 있어 그나마 개통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개통열차 차량은 최고속도 시속 300kn로 달리는, 중국 고속철 가운데 두 번째로 빠른 허셰(和諧)호였다(제일 빠른 중국고속철은 푸싱, 復興으로 최고속도 시속 350km). 열차가 서 있는 플랫폼에서도 승객들이 개통 열차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고속철 운행 시간은 불과 19분

  • 열차내부는 국제열차임을 의식한 듯 일반적인 중국 고속철보다는 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열차표가 매진이 되지 않은 관계로 빈 좌석이 드문드문 보였으며, 운행 시간이 19분에 불과해 열차 내 식음료 판매는 없었다. 열차는 예정대로 오전 6시 44분에 출발하였으며, 선전베이에서 웨스트 카우룬까지 계속 지하구간을 달리는 관계로 바깥풍경은 보이지 않았다. 중국 구간은 최고 시속 300km, 홍콩 구간은 시속 200km로 운행한다는 사전 안내가 있었는데, 실제로 탑승열차는 최고 시속 193km를 기록했다. 승객들은 차량 안에서도 플래카드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는 데 여념이 없었다. 열차에 탑승한 승무원은 필자에게 “이 열차에서 탑승 근무하기 위해 그간 광동어와 영어를 공부했다”고 밝혔다.

    열차는 오전 7시 3분 웨스트 카우룬 역에 도착했다. 법적으로 아직 중국 내에 있었지만 시설들은 홍콩식이었으며, 표지판도 홍콩에서 쓰는 정체(正體)한자로 표기되어 있었다. 플랫폼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한동안 논란이 됐던 중국 입국심사대가 보였다. 새로 지은 시설인 것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본 중국 출입국 시설 중 가장 세련됐다. 승객들은 대부분 자동 출입국 심사대를 통해 빠져나갔고, 일부는 플랫폼에서 여전히 사진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필자는 수동 입국심사대를 통과했는데, 심사원은 필자에게 ‘中國邊檢, 西九龍’(중국 출입국 관리 사무소, 웨스트 카우룬) 입국 도장을 찍어주며 “본 심사대를 통과하는 최초의 외국인이자 한국인”이라며 악수를 청했다.

    이 중국 출입국 심사구역은 중국법이 적용되며, 구역 내 범법자는 중국 법에 의해 처벌을 받는다. 반면 심사 구역 직원들은 웨스트 카우룬 구역 내에서 숙박이 불가능하며, 퇴근하면 중국 심천으로 돌아가야 한다. 중국 측은 심사 구역의 상징적 임대료로 홍콩 정부에 매년 1,000 홍콩달러(약 14만 3,000원)만 지불한다. 이는 홍콩정부가 심천 서남부 매립지를 임대해 홍콩 출입국 시설을 설치한 선전베이 체크포인트(深圳灣口岸) 임대료로 매년 중국에 지불하는 810만 홍콩달러(약 11억 6,000만 원)와 대비됐다.

    이처럼 영토 바깥에 자국 출입국 사무소를 두고 치외법권 지대를 설정한 사례는 선전베이 체크포인트에 이어 전 세계적으로 두 번째다. 모두 중국-홍콩 경계선에 있다. 유사 사례로써 미국이 캐나다, 카리브해 연안국, 아일랜드, UAE의 공항에 설치한 사전심사대(Pre-clearance), 영국과 유럽대륙을 잇는 고속철 유로스타의 시종착역인 런던, 파리, 브뤼셀에 설치된 사전심사대, 그리고 싱가포르와 말레이지아 조호르바루를 잇는 철도의 싱가포르측 우드랜드 체크포인트에 설치된 말레이지아 사전심사대가 있다. 미국의 사전심사대는 한때 인천공항 설치가 논의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들 사전심사대는 문제가 있는 승객들의 탑승을 거부할 권한만 갖고 있을 뿐 홍콩의 일지양검과 같은 치외법권 지대가 아니다.

    심사대를 지나니 중국과 홍콩의 경계선이 나왔다. 일부 승객들은 이 경계선에 두 다리를 걸쳐놓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후 홍콩측 면세점을 지나 홍콩 입국심사를 거치는데 걸린 시간은 단 몇 분에 불과했다. 긴 인파에 대비한 듯 중국과 홍콩 양쪽에 수십 개의 심사대를 설치해 놓아 양쪽 심사대를 통과하는데 5분 남짓 소요됐을 뿐이다.

  • 기존 지하철 소요시간보다 절반 단축

    개찰구로 나오니 수많은 홍콩 기자들이 승객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홍콩 MTR 직원들은 승객들에게 기념품과 탑승기념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 배포했다. 출발구역으로 가보니 많은 사람들이 고속철을 타거나 현장을 보기 위해 몰려와 있었고, 그간 범민주파의 비난의 타겟이 된 홍콩 운수주택국 국장(장관)과 홍콩 MTR총재가 승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개통 전날까지 역사 앞에서 범민주파에 의한 항의 집회가 열렸고, 개통식에 사전 초대받은 범민주파 의원들은 모두 불참했지만, 개통 당일에는 항의인파를 볼 수 없었다.

    필자가 선전베이 역에 도착해서 웨스트 카우룬 역 개찰구로 나오기까지 소요된 시간은 55분. 같은 구간을 기존의 방법(지하철)로 갈 경우 1시간 40분이 소요되며, 정확히 55분이 단축됐다. 그러나 목적지가 역이 아닐 경우 고속철을 이용하면 출입국 심사대의 혼잡상황을 감안해 평균 20~30분의 단축효과가 예상된다. 홍콩 MTR은 웨스트 카우룬 역에서 고속철을 탑승할 경우 출발 45분 전에 역사에 도착하도록 안내하고 있어, 홍콩에서 심천으로 갈 경우 시간단축 효과는 10~20분에 불과하게 된다.     

    홍콩 출발 심천, 광저우행 고속철은 Vibrant Express(動感號)로 불리는 홍콩 MTR 전용차량을 이용하여 하루 114편이 왕복하며, 차량 내 와이파이 인터넷은 중국구간을 달릴 때도 중국에서 차단되는 페이스북, 유튜브 등을 열람할 수 있다. 중국 고속철 차량을 이용한 장거리 고속철은 베이징, 상하이를 포함해 13개 노선 44개 도시를 홍콩과 연결한다.

    그러나 고속철과 관련한 논란은 개통 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홍콩 사과일보(Apple Daily)는 개통 당일 고속철과 기존 교통수단 탑승기를 통해 광저우까지 소요시간 단축효과가 불과 15분에 불과하다며, 일부 열차에서 일어난 정전, 개통당일 웨스트 카우룬 역사에서 발생한 누수, 중국 철로국 인터넷에서 예매한 열차표가 웨스트 카우룬 역에서 발권이 되지 않아 일어난 혼란으로 큰 혼잡을 빚었다고 보도했다. 또한 웨스트 카우룬 역에서 수화물 크기 제한에 걸려 홍콩MTR이 제공한 비닐 백에 짐 일부를 옮겨 실은 승객들이 있었는데, 중국에서 온 일부 중국 승객들이 규정을 벗어난 크기의 수화물을 들고 유유히 입국하자 이에 항의하는 소동이 있었다.

    홍콩 동방일보 보도에 의하면, 실제 단축시간과 관련한 논란 때문인지 하루 평균 탑승객은 홍콩 MTR이 예상한 8만 명과 달리, 개통 첫날 탑승객은 7만 5,000여 명에서 둘째 날 4만 6,000여 명, 셋째 날이 3만 7,000여 명으로 계속 줄어들고 있다. 중국 출입국 시설과는 관련해서는 아직 관련 소송이 홍콩 최고법원에서 진행 중에 있어 그 결과가 홍콩 고속철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