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기자가 바라본 北 일상 사진들... 임종진 작가 '사는 거이 다 똑같디요'전(展)
  • ▲ 임종진 작가의 북한 사진전 '사는 거이 다 똑같디요' 중에서ⓒ 뉴데일리DB
    ▲ 임종진 작가의 북한 사진전 '사는 거이 다 똑같디요' 중에서ⓒ 뉴데일리DB

    7월의 마지막 날, 서울 도심에서 북한 일상을 담은 사진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 종로구 청운동의 사진전문 갤러리 '류가헌'을 찾았다. 임종진 작가의 '사는 거이 다 똑같디요'전(展). 임 작가는 지난 1998~2003년 6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해, 그 곳의 사람과 풍경을 담아 왔다. 

    전시 첫날이어서인지 10여평 규모의 2층과 지하 1층 전시관 내부는 조용했다. 방문객 여러 명이 차분히 그림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들은 전시된 사진을 보면서 북한사회를 어떻게 느낄까. 소리 없이 그들 곁을 따르며 사진들을 감상했다.

    기자는 탈북민이다. 

    지난 2008년말, 중국과 러시아를 거쳐 한국에 들어와 10년 째 생활하고 있다. 외부인의 눈에 비친 북한은, 내가 20여 년 경험한 북한과 과연 같은 모습일까. 살벌한 북한사회를 경험한 탈북민 입장에서 임 작가의 사진들이 북한의 일상을 제대로 담았을지 미심쩍은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극도로 폐쇄적인 북한정권이, 체제선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자신들의 가난한 일상을 남한의 사진작가에게 솔직하게 노출했을까. 그게 궁금했다.

  • ▲ 임종진 작가의 북한 사진전 '사는거이 다 똑같디요' 중에서ⓒ 뉴데일리DB
    ▲ 임종진 작가의 북한 사진전 '사는거이 다 똑같디요' 중에서ⓒ 뉴데일리DB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미소, 감춰진 어둠

    어린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웃는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사진 속 아이들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해맑게 웃고 있다. 남한 땅에서 보여지는 북한 사진들에 흔한 '연출'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천진한 미소 뒤에 비친 어둠의 그림자를 나는 보았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을, 풍경의 이면일지 모른다. 

    평양 1998, 양강도 1999, 황해도 2000.... 작품마다 표기된 촬영 시점은 내 마음속에서 지난 날들의 고통을 끄집어 내기기에 충분했다. 혹독한 굶주림으로 인해 이웃과 친구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가던 '야만의 시대'였다. 나는 그 암울한 시절을, 죽을 힘을 다해 관통했다.  

    강요된 전체주의에 익숙해진 아이들의 삶, 그 아이들의 해맑은 표정 저편에 웅크린 깊은 슬픔이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남북의 상반되는 두 체제를 모두 경험한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 '자유'라는 희귀한 가치를 전혀 맛보지 못한 어린 것들은 그 살벌한 전체주의 구덩이 속에서도 그렇게 순수하게 웃고 있었다. 

  • ▲ 임종진 작가의 북한 사진전 '사는 거이 다 똑같디요' 중에서ⓒ 뉴데일리DB
    ▲ 임종진 작가의 북한 사진전 '사는 거이 다 똑같디요' 중에서ⓒ 뉴데일리DB

    평범해서 더욱 아픈 북한의 일상

    "림 선생, 찍고 싶은대로 다 하시라요. 우리가 한번 믿어보갔습네다." 

    그 해, 전혀 '북한스럽지 않은' 북측 안내요원의 '통 큰 결단'이 있었다. 1998년 가을, 방북의 첫날, 당시엔 사진기자였던 임 작가는 북한의 어떤 모습을 찍게 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고 한다.

    막막함을 뒤로 하고 조심스레 렌즈에 담은 북한의 모습은 꾸밈없다. 북한 당국이 임 작가를 신뢰하지 않았더라면 담을 수 없었던 소박한 일상들, 마음 아픈 사진들. 

    그렇게 절절한 마음으로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는 기자에게 임 작가가 다가왔다. 탈북민임을 밝혔다. 20년 전엔 사진 속 바로 그곳에 나도 살고 있었노라고 그에게 말했다. 반가워했다. 

    나는 반갑지만은 않았다. 작가가 사진을 통해 펼쳐 준 북녘 거리와 사람들은, 이제 갈 수 없고, 만날 수 없다. 만질 수 없는 고향을 추억하는 일은 서글프고 울적하다. 

  • ▲ 임종진 작가의 북한 사진전 '사는 거이 다 똑같디요' 중에서ⓒ 뉴데일리DB
    ▲ 임종진 작가의 북한 사진전 '사는 거이 다 똑같디요' 중에서ⓒ 뉴데일리DB

    "이 사진들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 있습니다. 탈북자의 눈에는 남한 사람들보다 특별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요. 이번 전시회를 열면서 북을 떠나온 분들이 많이 오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임 작가는 "남북이 갈라져 살아온 지 오래 되면서 서로 다르다고 여겨왔는데 이제는 우리가 얼마나 같은지 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사진전의 취지를 설명했다.

  • ▲ 임종진 작가의 북한 사진전 '사는 거이 다 똑같디요' 중에서ⓒ 뉴데일리DB

    "북한의 '보통 사람들'을 찍고 싶었다"

    북한 당국은 내부 상황을 허가 없이 촬영하는 것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통제하고 처벌도 한다. 국가 이미지가 실추되리란 우려 때문이다. 외신기자들도 안내요원이 허가하지 않은 곳을 촬영하면 촬영장비나 테이프를 압수당한다. 강제 출국되기도 한다. 북한 내부의 일상을 몰래 찍어 해외에 전달하는 행위는 처벌의 대상이다. 

    임 작가는 “몰래 찍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찍으면 누구인들 좋아하겠느냐”고 했다. 방북 당시 작가는 안내 요원에게 속내부터 털어 놓았다고 한다. 남한 언론들이 북한을 부정적으로만 묘사하는데, 자신은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찍고 싶다고 말했고, 북측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남쪽에는 '꽃제비('거지'라는 뜻의 북한말)' 사진들이나 체제비판적인 사진들이 많이 돌아다녀서 북쪽 사람들을 이해하는데 모자람이 있습니다. 당신들이 살아가는 보통의 모습들을 내 느낌대로 찍으려 하니 통제하지 말아주세요. 나를 믿으셔도 됩니다." 

  • ▲ 임종진 작가의 북한 사진전 '사는 거이 다 똑같디요' 중에서ⓒ 뉴데일리DB
    ▲ 임종진 작가의 북한 사진전 '사는 거이 다 똑같디요' 중에서ⓒ 뉴데일리DB

    임 작가가 담아 온 북한의 일상은 그의 말대로, 보는 이들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다. 탈북민인 기자에게 그의 작품들은 아련한 추억이면서 절절한 아픔이었다. 26일까지. (02)720-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