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의혹 제기한 시인·언론사에 손해배상 청구최영미 "싸움이 시작됐으니, 밥부터 먹어야겠다"
  • "오늘 법원으로부터 손해배상 청구 소장을 받았습니다. 원고는 고은 시인이고, 피고는 동아일보사와 기자, 그리고 최영미, 박진성 시인입니다. 누군가로부터 소송 당하는 건 처음입니다. 원고 고은태의 소송대리인으로 꽤 유명한 법무법인 이름이 적혀있네요. 싸움이 시작되었으니, 밥부터 먹어야겠네요."

    지난해 계간 문예지 '황해문화'에 '괴물'이란 시를 게재하며 국내 '문단 권력' 최정점에 서 있는 시인 고은(85·사진)의 성추문을 폭로했던 시인 최영미(57)가 거액(10억7천만원)의 손해배상소송을 당했다.

    최영미는 지난 25일 페이스북에 "오늘 법원으로부터 손해배상 청구 소장을 받았다"며 "원고는 고은 시인이고, 피고는 (자신을 포함해) 동아일보사와 기자, 그리고 박진성 시인"이라고 밝혔다.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 Me too /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괴물'이란 시는 문단 초년생 시절 한 시인이 자신에게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충고를 했으나 이를 깜빡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봉변을 당했다는 최영미의 경험담으로 시작한다.

    이 시에서 최영미는 'En선생'의 실명을 거론하진 않았으나, 그가 100권의 시집을 펴냈고 노벨상 후보로 곧잘 오르내린다는 점을 밝혀, 원로 시인 고은이 문제의 'En선생'이라는 사실을 암시했다.

    이후 서지현 검사의 미투 고백으로 국내에도 '미투(#Me too) 운동'이 불붙기 시작하자, 최영미는 'JTBC 인터뷰'와 동아일보에 기고한 '육필 원고' 등을 통해 고은의 이름을 밝히고,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비화들을 풀어내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내 입이 더러워질까봐 내가 목격한 괴물선생의 최악의 추태는 널리 공개하지 않으려 했는데, 반성은커녕 여전히 괴물을 비호하는 문학인들을 보고 이 글을 쓴다.

    내가 앞으로 서술할 사건이 일어난 때는 내가 등단한 뒤, 1992년 겨울에서 1994년 봄 사이의 어느날 저녁이었다. 장소는 당시 문인들이 자주 드나들던 종로 탑골공원 근처의 술집이었다. 홀의 테이블에 선후배 문인들과 어울려 앉아 술과 안주를 먹고 있는데 원로시인 En이 술집에 들어왔다.

    주위를 휙 둘러보더니 그는 의자들이 서너개 이어진 위에 등을 대고 누웠다. 천정을 보고 누운 그는 바지의 지퍼를 열고… (중략) …시작했다. 난생 처음 보는 놀라운 광경에 충격을 받은 나는 시선을 돌려 그의 얼굴을 보았다. 황홀에 찬 그의 주름진 얼굴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니들’ 중에는 나와 또 다른 젊은 여성시인 한명도 있었다. 주위의 문인 중 아무도 괴물 선생의 일탈행동을 제어하지 않았다. 남자들은 재미난 광경을 보듯 히죽 웃고….술꾼들이 몰려드는 깊은 밤이 아니었기에 빈자리가 보였으나, 그래도 우리 일행 외에 예닐곱 명은 더 있었다. 누워서 황홀경에 빠진 괴물을 위에서 내려다보더니 술집여자가 묘한 웃음을 지으며 한마디 했다.

    “아유 선생님두-”

    이십 년도 더 된 옛날 일이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처치하기 곤란한 민망함이 가슴에 차오른다. 나도 한때 꿈 많은 문학소녀였는데, 내게 문단과 문학인에 대한 불신과 배반감을 심어준 원로시인은 그 뒤 승승장구 온갖 권력과 명예를 누리고 있다.

    박진성 "고은, 바지 지퍼 열고 3분간 성희롱‥."

    여류 시인인 최영미가 칼을 뽑자 이번엔 중견 시인 박진성(40)이 고은의 성폭력 전력을 폭로하며 최영미를 거들었다.

    박진성은 지난 3월 5일 "오래 전 고은의 '범죄 현장'을 목도하고도 이를 고백하지 못한 점에 대해 반성한다"며 2008년 4월경 C대학교 주최 고은 시인 초청 강연회 직후 뒤풀이 자리에서 벌어졌던 충격적인 사건을 블로그에 올렸다.

    "당시 저는 H 대학의 문예창작과 교수 K로부터 이 자리에 참석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고En이 오는데 자리를 좀 빛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뒤풀이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고En 시인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방이 따로 있는 그런 음식점이 아니었습니다. 고기와 맥주 그리고 소주. 그리고 술을 마시지 못하는 여성을 위한 음료수. 명백하게 '오픈'된 공간이었습니다. 오후 5시 경이었습니다. 술 기운에 취해서였는지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지 고En 시인이 당시 참석자 중 옆자리에 앉은 한 여성에게 '손을 좀 보자'고 했습니다."

    박진성은 "뒤풀이 자리에서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술을 마시던 고은이 '오픈된 공간에서' 옆자리에 앉은 한 여성의 손을 만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팔과 허벅지까지 만졌다"면서 "당시 20대였던 그 여성은, 단지 고은 옆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 박진성은 자신을 초청한 K교수에게 "도대체 안말리고 뭐하는 거냐"고 항의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K교수는 박진성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충고를 건넸고, 그 말을 들은 박진성은 "K교수와 문단의 대선배 고은 시인에게 밉보일까 두려워, 고은의 성추행 사실에 대해 아무런 항의도 하지 못했었다"고 고백했다.

    박진성은 "이때 여성이 저항을 하는 모습을 보이자 고은이 무안했던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는데, 그 순간 고은이 지퍼를 열고 자신의 신체 부위를 꺼냈다"는 충격적인 주장을 이어갔다.

    "고En 시인의 추행은 이후에도 계속됐습니다. 그 여성이 저항을 하자 무안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거였습니다. 그러더니 지퍼를 열고… (중략) …흔들었습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습니다. 이제는 알겠습니다. 그건 그냥 당시 동석자였던 여성 3명에 대한 '희롱'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엄청난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고En 시인은 자리에 다시 앉더니 '너희들 이런 용기 있어?' 그렇게 말했습니다."

    '공개된 자리에서'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무려 3분간이나 자신의 신체 부위를 잡고 흔들던 고은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너희들 이런 용기 있어?"라고 도리어 큰소리를 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박진성은 "'이건 정말 아니다, 저 여성들은 뭐냐, 자리에서 나가겠다'고 K교수에게 항의했지만 K교수는 자신의 항의를 묵살했고, 결국 고은 시인에게 추행을 당하던 여성이 못참겠던지 밖으로 나가버렸다"고 말했다.

    "울고 있었습니다.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다 울때까지 기다렸다가 먼저 그 여성을 택시를 태워 보냈습니다. 그 여성이 귀가했다는 사실을 K교수와 고En 시인에게 알리자 술자리가 급격한 속도로 가라앉았습니다. 그 여성은 고En 시인의 말을 빌리면 '참석자 중 가장 젋고 예쁜 여성'이었습니다."

    성추문 전력이 공개된 뒤 고은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서울시는 고은의 전시 공간인 서울도서관 '만인의 방'을 철거했다. 교육부는 지난 3월 검인정교과서협회에 공문을 보내 최근 '사회적 논란'이 된 인물의 교과서 속 작품을 수정할 계획이 있는지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사실상 고은이 지은 시의 삭제 여부를 검토해달라는 주문을 한 것.

    코너에 몰린 고은은 그동안 자신의 작품을 번역, 해외 문단에 소개해온 영국 출판사 '블러드액스(Bloodaxe Books)' 편집자에게 '해명글'을 보내 외신을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고은은 지난 3월 블러드액스에 전달한 서신에서 "지금껏 자기 자신에게는 물론 아내에게 부끄러울 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며 "최근 여러 의혹들에 자신의 이름이 거론된 것은 유감스럽게 생각하지만, 특정인이 제기한 상습적인 성추행 의혹에 대해선 단호히 부인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However, to my foreign friends, to whom facts and contexts are not readily available, I must affirm that I have done nothing which might bring shame on my wife or myself. All I can say at the moment is that I believe that my writing will continue, with my honour as a person and a poet maintained."

    또한 고은은 "한국에서는 진실이 밝혀지고 모든 논란이 해소되기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지만, 이번 논란에 대해 제대로 된 사실을 접하기 힘든 나의 외국 친구들에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부끄러울 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고 내가 한 사람으로서, 또한 시인으로서 명예를 지키며 글을 계속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블러드액스의 편집자 닐 애스틀리(Neil Astley)는 "지난달 종양 치료를 위해 입원한 고은은 현재 회복 단계에 있으나, 수술 뿐 아니라 최근 제기된 각종 성추문 의혹으로 심신이 많이 쇠약해진 상태"라고 전했다.

    그는 "지금까지 한국 언론에 소개된 고은에 대한 추문들은 여전히 한 사람의 주장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입증되지 않은 다른 논평(발언)들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조심스런 견해를 드러냈다.

    그는 "성스캔들 이후 고은의 시는 한국 교과서에서 사라졌고, 한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작가 중 한 명으로서 그가 누려왔던 다양한 특권을 포기하라는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면서 "그가 이렇게 추락하게 된 것은 서구의 작가들이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높았던 고은의 사회적 지위와 명성에 대한 반발 차원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다만 "한국에서 사라지고 있는 고은의 문학 작품이 우리와 함께 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의 개인적 위법 행위를 용인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