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오른팔’ 김원봉 일대기 극화... 공영노조 “한국전쟁 개입하고 남파 간첩 교육한 인물"
  • ▲ 약산 김원봉.ⓒ네이버 인물정보 캡처
    ▲ 약산 김원봉.ⓒ네이버 인물정보 캡처

    KBS 드라마국이 최근 "내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약산 김원봉을 주인공으로 한 역사드라마를 기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약산(若山) 김원봉-.

    김원봉은 스크린을 통해 선 굵은 '항일 독립운동가'로 강한 인상을 남긴 인물이다. 영화 '암살(2015)'과 '밀정(2016)'에서 비중있게 소개됐다. 항일 독립운동을 배경 삼은 영화들에서 그는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등장했다. 

    그러나 KBS가 김원봉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의 일대기를 대하 드라마 형식으로, 본격 극화할 것이란 사실이 알려지자 큰 논란이 일고 있다. '흥행'을 최고 가치로 생각하는 영화와 달리, '공영'의 기치를 내세우고 있는 KBS의 정체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영화 속에서 반쪽만 취한 김원봉의 나머지 삶이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과는 양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독립운동 이후 김원봉은 북한 정권 탄생의 주역이었고, 이후로도 북의 최고위급 정치인으로 한국전쟁에 간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KBS 대하 드라마의 전통은 깊다. 

    대중들에게 또 학생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태조 이방원을 재조명한 '용의 눈물', 그 뒤를 이어 '태조 왕건', '불멸의 이순신', '대왕 세종', '정도전', '장영실' 등으로 KBS 대하 드라마의 맥을 이어 왔다. 이들은 학계 및 교육계에서 역사 교육의 주요 고증자료로 쓰일 정도로 주목을 받는다. 

    북의 고위급 정치인으로 있으면서, 대한민국에 적대적 행위를 한 '김원봉'을, 세종-이순신의 맥락에 추가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 ▲ 북한의 초대 내각 사진. 맨 앞줄 가운데 김일성이 있고 좌우로 부수상인 홍명희와 박헌영이 있다. 약산 김원봉은 둘째 줄, 오른쪽으로부터 두 번째에 선글라스를 쓴 사람이다. ⓒ위키백과
    ▲ 북한의 초대 내각 사진. 맨 앞줄 가운데 김일성이 있고 좌우로 부수상인 홍명희와 박헌영이 있다. 약산 김원봉은 둘째 줄, 오른쪽으로부터 두 번째에 선글라스를 쓴 사람이다. ⓒ위키백과

    독립운동가 혹은 북한 정치가 김원봉

    '독립운동가, 북한의 정치가'. 포털사이트에서 김원봉(1898~1958) 이름 석 자를 검색하면 곧바로 뜨는 인물 정보다. 의열단을 결성해 일제 수탈 기관 파괴 등을 지휘한 주역 중 하나인 김원봉은 일제가 백범 김구보다 많은 체포 현상금을 내걸었던 무장 독립운동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부사령관을 역임하기도 한 김원봉은 이승만, 김구, 김규식 등 대한민국에서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들과 다르게 이제껏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1948년 남북협상 당시 월북해 북한 내각에 참여한 탓이다.

    그는 해방 정국에서 좌파 연합 '남조선 민주주의 민족전선' 공동의장단으로 활동했다. 남조선 공산주의자 세력의 총연합이다. 북한 정권 출범 이후에는 그 공을 인정받아 북한 '국가검열위원장' 자리에 올랐다. 이는 서열 1위 김일성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려는 자를 색출하고 국방전략을 짜는 등 북한 내 서열 7위의 막강한 자리로 잘 알려져있다.

    1950년 6.25 남침에서 김원봉의 역할이 지대했음을 알리는 사실 중 하나다. 1954년 국내 경향신문 보도에 의하면 당시 평양에 본적을 둔 간첩 4명이 체포된 후 "김원봉의 지휘 하에 선거 방해, 경제혼란을 목적으로 남파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해당 사건은 "김원봉이 북한정권에 부역(附逆)했다"는 오명을 쓴 결정적 계기가 됐다.

    "김원봉은 자발적 월북자이며,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서 장관급 이상의 고위직을 역임했기에 건국훈장을 추서할 수 없다"          -국가보훈처

    1958년 종파 사건에 연루되면서 김일성에 의해 숙청됐지만, 김원봉은 북한 정권 수립 과정에서 '김일성 오른팔'로 대한민국 전복에 앞장섰다는 비판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해방 후 사회주의 활동은 했지만 적어도 북한정권에 부역행위는 한 바 없는 '몽양 여운형'도 아닌, 약산 김원봉의 일대기를 제작한다는 KBS에 성토가 쏟아지는 이유다.

  • ▲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KBS본관에 내걸린 김정은 사진.ⓒKBS공영노조 제공
    ▲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KBS본관에 내걸린 김정은 사진.ⓒKBS공영노조 제공

    "김일성 드라마 만드는 것과 뭐가 다르나"

    KBS 안팎으로는 "믿을 수 없다"는 반응도 나온다. KBS공영노조는 해당 사실이 알려지자 즉각 성명을 내고 "단지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드라마로 만든다면 김일성 역시 드라마 주인공으로 만들어도 된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공영노조는 "한국 전쟁에 깊이 개입해, 남파간첩 교육을 시킨 것으로도 알려진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를 공영방송 KBS가 왜 제작하나. KBS 본관건물에 김정은 대형 사진이 걸린 이유가 이것인가"라고 성토했다.

    이들은 "대한민국을 출범시키고 자유민주주의 근간을 세운 인물들을 조명해 올바른 역사 정체성을 키워가는 게 공영방송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인물 미화를 넘어 한국에 좌편향 이념을 교묘히 강화시킬 수도 있는 김원봉 드라마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정치권과 여론의 반응도 뜨겁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23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남파 간첩을 지휘한 북한 정치인을 찬양하는 드라마 제작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의 국정감사와 예산안 심사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반드시 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누리꾼들 역시 "제정신이 아니다. 이런식으로 하면 우린 수신료 못낸다", "대단하다. 북한 간첩을 숭배하는 드라마라니", "하는 김에 김일성 일대기도 사극화 하지 그러냐"는 반응을 보였다.

    성창경 KBS 공영노조 위원장은 25일 통화에서 "사회적으로 남북 친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고 여전히 KBS 본관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나란히 걷고 있는 사진이 걸려있다. 아마도 남북 일체감을 드러내기 위한 그런 취지의 연장선상이 아닌가 싶다"고 내다봤다.

    성 위원장은 "그러나 회사에서 이를 강행한다면 저지할 수 있는 방안은 없다"며 "이 드라마가 제작되는 절차와 타당성에 대한 사회적 여론 확대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논란과 관련해 KBS측 관계자는 "김원봉의 월북 이후 행보는 다루지 않는 쪽으로 검토되는 것으로 안다. 또한 대하드라마가 아닌 임시정부 수립을 기념하는 특집 드라마가 될 것"이라는 해명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