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만화제작소 출신...'로동심문' 등 작품 인기, 탈북 과정 재치 있게 그려내
  • ▲ 최성국씨가 연재하고 있는 웹툰 '로동심문'
    ▲ 최성국씨가 연재하고 있는 웹툰 '로동심문'

    최근 '로동심문'이라는 이색적인 만화를 인터넷 포털 네이버 등에 연재하고 있는 웹툰 작가 최성국(39)씨는 탈북민이다. 

    최씨는 평양미술대학을 졸업하고 20대 초반에 실력을 인정받아 북한 최고의 아동영화(애니메이션) 제작사인 '조선4.26아동영화촬영소' 원도가(애니메이터)로 들어가 해외 수출용 고급 만화를 그렸다. 경제시스템이 붕괴한 북한에서 '만화'는 국제 경쟁력을 갖춘 매우 예외적인 산업 분야다. 

    최 작가가 몸담았던 ‘조선 4.26 만화영화촬영소'는 세계적으로도 이름이 알려진 곳으로 'SEK Studio'라고 불린다. 북한 만화제작소가 주로 담당하는 작업은 원화, 선화, 배경 등 그림과 채색 작업이 주를 이룬다. 노동집약적 작업의 특성 상 해외 만화 선진국들은 북한에 이들 작업을 맡기는 경우가 많다. 북한 만화노동자들의 숙련도와 손재주가 상당히 높다는 점도 해외 고객들이 꼽는 장점 가운데 하나다. 최근에는 3D 작업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국내 어린이 만화를 대표하는 '뽀로로'도 남북이 합작한 작품이다. 외화벌이에서 만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확대되면서 북한은 만화제작소 노동자들에게 군 복무 면제 등의 파격적인 혜택도 주고 있다. 

    굶주림이 일상화된 북한에서 특혜를 받은 최 작가가 한국 땅을 밝은 건, 새로운 문화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다. 한국 영화 및 드라마에 심취했던 그는 자신이 본 작품을 복제해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그의 비밀스런 작업은 얼마 가지 못했다. 북한 당국에 적발된 그는 같은 혐의로 3차례나 감금됐다. 결국 최 작가는 27살 되던 해 탈북을 결심했다. 그의 탈북과정은 험난했다. 중국과 라오스 태국 등 3개국을 거친 그는 2010년 대한민국 국민이 됐다. 국내 정착 후 세종대 대학원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그는 지금도 만화를 그리고 있다. 최씨는 웹툰 작가 데뷔 전부터 종합편성채널 예능프로그램인 모란봉클럽, 이만갑(이제만나러갑니다)에 출연하면서 얼굴을 알리기도 했다. 

    그가 연재하는 웹툰 '로동심문'은 탈북민들의 엑소더스가 주제다. 탈북과정에서 그가 직접 보고 들을 경험담이 소재가 됐다.  

    북한 최고의 만화 일꾼에서, 대한민국의 성공한 웹툰 작가로 인생 2막을 살고 있는 최성국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 최성국 작가. ⓒ 뉴데일리DB
    ▲ 최성국 작가. ⓒ 뉴데일리DB

    북한에서 만화 제작소를 다닐 때 분위기는 어땠나.

    “미술대학이 촬영소 안에 있었다. 김정일이 그렇게 만들었다. 학생들을 아주 효율적으로 부려먹었다. 대개 오전에는 수업을 하고 오후 과제가 애니메이션 제작이었다. 가르치면서 동시에 일을 시켰고 돌격대나 군대에는 일체 못 가게 했다.”


    군대에 보내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다. 

    “북한은 만화로 막대한 외화를 벌어 들인다. 돈을 버는 것이 북한 정권에게 가장 시급했기 때문에 만화 그리는 사람들에게는 군 면제 같은 특혜를 보장해주었다. 북한 경제를 논할 때 만화를 빼놓으면 안 된다. 북한에서 마약 빼고 돈을 제일 많이 버는 아이템이 만화영화다. 주로 프랑스나 이태리 등 유럽으로 수출한다.”


    작업은 어떻게 했나.

    “여전히 종이에 연필로 그린다. 북한은 해외 수출용 만화 제작에 많은 인력을 투입한다. 대개 80명씩 한 팀으로 전체 1500명의 인력이 만화를 그렸다. 한 팀이 1달에 25부 시리즈 만화를 2개씩 만들어야 했다. 사실상 영화 제작이 아니라 영화 생산인 셈이다. 거의 대부분 외국 하청이다.”

  • ▲ 웹툰 만화 '로동심문' 캡처
    ▲ 웹툰 만화 '로동심문' 캡처

    제작한 만화를 주민들에게도 보여주는가.

    “타이타닉도 만화로 만들고, 왕후 심청, 뽀로로도 만들었지만, 북한은 자신들이 만든 외국 만화를 주민들에게는 절대 보여주지 않는다.”


    '로동심문'이라는 웹툰 제목이 코믹하다.

    “원래 이름은 북한 신문 이름 그대로 '로동신문'이었는데, 북한이 한국의 방송사에게까지 저작권료를 받아간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 내게도 저작권료를 요구하지 않겠나 싶어 제목을 바꿨다. '심문'이란 말이 북한 감옥에서의 조사를 떠올리게 해서 나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 ▲ 최성국 작가의 작품 '국정원 이야기' 중 한 장면. ⓒ 최성국 작가 제공
    ▲ 최성국 작가의 작품 '국정원 이야기' 중 한 장면. ⓒ 최성국 작가 제공

    웹툰 중 '국정원 이야기', '사고남의 탈북스토리'에 대한 누리꾼들의 관심이 뜨겁다.

    “'국정원 이야기'는 탈북자가 처음 국내에 들어온 뒤 국가정보원에서 조사를 받으며 겪는 해프닝을 다루고 있다. 화장실 변기 위에 올라서서 볼일을 본다든가, 남북한 용어의 차이 때문에 벌어지는 에피소드 등이 그 예다. '사고남의 탈북스토리'는 북한 여성 군인이 가족을 탈북시키기 위해 국경에서 북한군 경비대원과 총격전을 벌이다 숨진 이야기를 담고 있다.”

  • 새로 준비 중인 작품이 있는가.
    “역시 북한 이야기다. 이번에는 극심한 경제난을 겪는 북한에 시장경제가 유입되는 과정을 다루고자 한다. 웹툰 속에 내 인생을 녹여내려고 노력 중이다.”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문화가 남북통일에 굉장히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린 북한 관련 만화를 보고 패러디를 많이 해주면 좋겠다. 남한 용어로는 '팬픽'이라고 하더라. 내 만화를 패러디 해서 만화 속 주인공들이 다른 곳에서 다른 짓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재미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