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커 교수 NYT 인터뷰 “최소한 10년”, 올브라이트 美ISIS 소장 “2~3년이면 가능”, CIA "비핵화 의지 없어"
  • ▲ 2017년 9월 핵무기 연구소를 찾은 김정은.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7년 9월 핵무기 연구소를 찾은 김정은.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북한이 미국과 합의를 해도 실제 완전한 비핵화에 걸리는 시간이 15년 이상 걸릴 것이라는 주장과 “기껏해야 2~3년이면 충분하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두 주장은 모두 핵전문가들이 내놓은 것이다. 북한 비핵화에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가능은 할까. 북한이 언제 마무리될 지 모르는 비핵화를 조건으로 내세워 미국과 불가침 조약을 맺고 한반도를 유린하지는 않을까.

    ◆ 지크프리드 헤커 美스탠포드大 교수 “북한 비핵화는 정치적 사안”

    ‘뉴욕타임스’는 28일(현지시간) 로스 알라모스 소장을 역임하고 美정부의 핵 정책을 자문해왔던 지그프리드 헤커 스탠포드 교수와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헤커 교수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美北회담을 거쳐 북한 비핵화는 예상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추정하며 ‘빠른 비핵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헤커 교수는 최근 스탠포드大 국제안보협력센터를 통해 동료 교수들과 함께 내놓은 ‘북한 비핵화 추진 단계별 일정 제안’을 소개하며 "북한 비핵화에 美핵전문가들이 참가할 경우 美정보기관들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비밀 핵시설이나 핵무기 저장고, 농축 핵물질 등을 발견할 가능성이 높아 예상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헤커 교수는 “美정부가 북한 비핵화에 나설 경우 수십 여 곳의 핵시설과 수백여 개의 시설, 수천여 명의 관계자와 인터뷰를 해야 한다”면서 “북한이 60년 전부터 핵개발을 시작한 시설들을 해체하는 것이 목표”라고 지적했다. 1962년 영변 핵시설이 지어진 뒤 북한 김씨 정권은 곳곳에 수많은 핵무기 관련 시설을 건설했을 것이고, 대부분은 겉모습으로는 알 수 없는 비밀시설일 가능성이 높아 찾아내기가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헤커 교수는 “북한에게 핵무기는 체제 안보 문제이자 정치적 문제”라는 점도 강조했다고 한다. 핵무기를 보유해야 체제가 안전할 거라 여기는 김정은 정권에게 이를 제거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북한의 국내 정치를 뒤흔들 것이므로, 그 대안도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 ▲ 2017년 11월 29일 북한이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발사 당시 모습.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7년 11월 29일 북한이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발사 당시 모습.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미국과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서 군사적 핵시설과 민간의 그것을 어떻게 분리해서 사찰 대상에 포함시킬 것인가 하는 점도 중요하다고 헤커 교수는 지적했다. 이는 ‘자유아시아방송(RFA)’이 2017년 11월 “북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은 이동식보다 고정식이 더 위험하다”는 북한 소식통의 주장을 인용 보도한 것과 연결해 생각할 수 있다. 북한은 미국의 감시망과 공격을 피하기 위해 ICBM 발사 기지를 민간인 거주 지역에 숨겨놓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헤커 교수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폐기와 함께 관련 과학자와 기술자들의 향후 거취 문제도 협상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모두 폐기한다고 해도 관련 기술 인력만 있으면 언젠가 미사일을 다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미래 위협’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이들의 거취 문제도 논의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뉴욕타임스’는 “헤커 교수는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북한 비핵화를 완전하게 처리하는데 최소한 10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고 설명했다. 심하면 15년 이상 걸릴 수도 있다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헤커 교수가 2007년과 2008년 영변 핵시설을 둘러본 것을 포함해 북한을 30여 차례 이상 방문했고, 그가 美국립 핵물리학 연구소인 ‘로스 알라모스’의 소장으로 재직했던 점 등을 거론하며, 그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 VOA “헤커 박사 주장에 전문가들 다른 의견”

    ‘뉴욕타임스’의 헤커 박사 인터뷰 보도가 나온 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다른 핵전문가들의 의견을 소개했다.

    “북한이 평양 인근에 비밀 핵시설을 운영 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던 美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의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소장이 “헤커 교수의 주장은 너무 수동적인 논리이며 이런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 ▲ 2018년 5월 현재 외부에서 파악한 북한 핵시설 지도.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8년 5월 현재 외부에서 파악한 북한 핵시설 지도.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브라이트 美ISIS 소장은 “헤커 교수의 주장에는 북한 비핵화를 실시할 때 우선 쉬운 부분부터 집중해 해결하고 어려운 문제를 뒤로 미루는 경향이 심각하다”고 비판하면서 과거 다른 나라의 비핵화 과정에서 어려운 문제를 뒤로 미뤘다가 합의 등에서 변화가 생기면서 실패했던 사례가 있음을 상기시켰다.

    올브라이트 美ISIS 소장은 자신의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사찰 경험을 언급하며 “북한 비핵화는 어려운 문제를 먼저 해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등 근본적으로 달라야 한다”며 “북한을 검증 가능한 수준으로 비핵화 하는 데는 2년 내에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소리’ 방송에 따르면, 올브라이트 美ISIS 소장은 넬슨 만델라 대통령 집권 이후에 이뤄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비핵화 사례 등을 거론하며 “핵무기 자체의 폐기에는 몇 주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리고 비핵화 과정에서 우라늄 농축장비 등 핵시설의 사용을 재개할 수 없도록 조치하면 의외로 빠른 시간 내에 작업이 마무리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이란 핵합의에 따른 비핵화 조치 등을 진행 중인 국제원자력에너지기구(IAEA)에서 일했던 전문가 또한 "북한 비핵화는 2~3년이면 충분하다"고 밝혔다고 한다.

    올리 하이노넨 前IAEA 사무차장은 과거 남아공 비핵화에 걸린 시간이 몇 달도 되지 않았음을 지적하며 “북한 비핵화는 모든 과정이 제대로만 진행된다면 2~3년이면 충분하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북한이 핵무기 개발 계획과 관련 시설들, 보유한 핵물질을 모두 공개하는 ‘비핵화 의지’가 확실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美중앙정보국(CIA)이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이 문제 때문에 북한 비핵화 기간이 길어질 수도 있어 보인다.
  • ▲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의 '햄버거 정상회담' 발언 뒤에 등장한 '트럼프 세트'.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의 '햄버거 정상회담' 발언 뒤에 등장한 '트럼프 세트'.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美CIA “北비핵화 의지 없어…맥도날드는 열 수 있을 듯”

    美NBC 방송은 최근 美중앙정보국(CIA)이 북한 비핵화를 평가한 보고서를 소개했다. CIA는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핵무기를 빠른 시간 내에 포기할 뜻이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美NBC 방송은 “CIA 보고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美北정상회담 취소를 발표하기 전인 5월 초에 나왔다”면서 “CIA 분석관은 보고서에서 ‘모두 알다시피 그들(북한 정권)은 비핵화를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CIA는 보고서에서 “북한 비핵화에 15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헤커 교수의 주장도 인용했고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김정은은 미국 측에 호의의 뜻을 표시하려 평양에 서방 국가의 햄버거 프랜차이즈 개설 같은 일은 허락할 수 있다”고 적었다고 한다. 물론 햄버거 브랜드는 명기하지 않았다. CIA는 또한 미국과 한국은 북한이 비핵화에 나설 경우 농업 및 사회기반시설 재건 원조, 제재 해제를 포함한 다양한 지원을 하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소수의 미국인들이 대북투자, 특히 사회기반시설에 투자할 의향을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CIA는 또 북한이 사전 실무회담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았으며, 美北정상회담에서 이를 논의한다는 기대 또한 전혀 없었다고 평가했다. 동시에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과 강력한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종전 선언을 고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고 한다.CIA는 향후 美北정상회담에서 정치범 수용소를 비롯한 북한 인권, 한국과 일본을 위협하는 중거리 탄도미사일 폐기, 화학무기와 생물학 무기의 폐기 등을 논의하는 것도 비핵화 합의에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美NBC 방송은 그러나 “CIA 보고서는 대부분의 정보기관이 북한에 대해 내놓는 보고서들이 그렇듯 낮거나 중간 수준의 신뢰도 밖에 제공하지 못했다”면서 그 이유로 세계적으로 첩보 수집이 가장 어렵기로 악명 높은 북한의 사회 체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 지난 24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당시 외신 취재진의 모습.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24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당시 외신 취재진의 모습.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북한 비핵화에 걸리는 시간, 평가 다른 이유

    이처럼 최근 미국에서는 북한 비핵화에 걸리는 시간과 실현 가능성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는 과거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타지키스탄, 남아프리카 공화국, 리비아 등과 달리 북한은 보유한 핵무기와 핵물질의 양을 알 수가 없고, 1950년대 후반부터 추진한 핵무기 개발 시설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탓이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이나 평안북도 영변군의 핵시설 등은 김정은 정권이 드러내놓고 활동하는 핵시설이다. 그러나 수많은 탈북자들과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은 정권이 공개 시설이 아니라 비밀 시설에서 진짜 핵무기를 개발하고 생산한다고 주장한다. 탄도미사일 또한 美첩보위성에 노출되는 이동식 차량 발사대(TEL)가 아니라 민간 마을이나 공항, 산 속 지하시설, 해안가 절벽에 만든 땅굴에서 생산하는 중이라고 주장한다.

    헤커 교수를 비롯해 美로스 알라모스 연구소 출신 전문가들은 이런 점 때문에 완전한 북한 비핵화에 10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본다. 반면 美정부나 IAEA 등에서 비핵화에 동참해 본 전문가들은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북한의 비밀 핵시설을 이미 상당 부분 파악하고 있고, 비핵화가 하나씩 진행되는 게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한다는 점에 근거해 북한 비핵화는 3년이면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북한 비핵화에 3년이 걸리느냐 10년이 걸리느냐는 美핵전문가들의 지적보다 더 중요한 부분은 美정부가 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를 김정은이 수용하느냐, 즉 美정부가 지정하는 곳은 어디든 핵사찰을 할 수 있느냐 하는 대목이다. 김정은이 美정부의 ‘랜덤 사찰’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이는 CVID가 아니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랜덤 사찰’을 받아들일 경우 정치범 수용소를 포함한 각종 비인도적 시설과 화학무기·생물학 무기 보관시설과 북한군 비밀 기지들이 노출될 수 있다. 김정은이 이를 딜레마로 인식하지 않아야만 북한 비핵화에 몇 년이 걸릴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31일 한 언론 보도는 북한 비핵화에 긍정적인 신호가 있음을 알렸다. ‘중앙일보’는 이날 “미국과 북한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 비핵화를 전제로 美北 국교 수립에 착수한다는 데 의견이 접근했다”고 익명의 외교 소식통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美뉴욕에 도착한 김영철 北통일전선부장이 ‘비핵화-국교 수립’을 맞바꾸기 위한 협상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고 관측했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최근 판문점에서 열린 美北 실무협상에서 북측은 “우리는 이미 핵실험장을 폭파하는 등 비핵화 조치에 나섰고 앞으로도 완전한 비핵화의 길을 가겠다”고 밝히며 미국 측에 국교 수립과 제재 해제 등을 강력히 요구했다고 한다. 이때 북측은 “미국이 우리와 국교를 수립하고 대북제재를 해제하는 등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면 우리가 핵무기를 가질 이유가 없다”는 주장을 폈다고 한다.

    ‘중앙일보’가 보도한 내용은 북한 비핵화에는 좀 더 근접한 것이나 다른 측면에서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주한미군 철수 명분 만들기에도 가까워진 것이어서 향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