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해협박, 저주, 음해, 거짓 민원 쏟아져"… 탈북민 정성산씨 폐업키로
  • ▲ 탈북 감독 정성산 씨가 인천시에서 운영하는 식당 '평광옥' 전경.ⓒ정성산 감독 페이스북 캡처
    ▲ 탈북 감독 정성산 씨가 인천시에서 운영하는 식당 '평광옥' 전경.ⓒ정성산 감독 페이스북 캡처

    MBC 시사프로 '스트레이트'...반세월호 집회 보도하면서 정 감독 얼굴 내보내

    방송 직후, 악성 민원에 살해 협박까지...정 감독 “심신이 지쳤다”

    "이제 더 이상 믿을 곳이 없습니다다. 이러다 (암살 당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처럼 될까 두렵습니다."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가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위원직에서 물러난 24일, 탈북자 출신 뮤지컬 감독 정성산 씨가 운영하던 냉면 전문점 '평광옥'의 폐업 소식이 들려왔다.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참혹한 인권 실태를 고발한 뮤지컬 '요덕스토리'를 제작하면서 이름을 알린 정성산 감독은 24일 새벽 자신의 SNS를 통해, "죄송스럽고 지극히 외람되지만 '평광옥'을 접어야겠다는 말씀을 올린다"고 밝혔다.

    같은 글에서 정 감독은 "23일 인천 연수경찰서에서 피해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고 가게에 대한 악성민원들로 인해 3일에 한 번 꼴로 (감독관청인) 연수구청을 간다"고 근황을 전했다. 덧붙여 그는 "민원을 두고 (그 내용을 반박하는) 자료와 근거를 제출했지만, 저도 인간인지라 한계가 오는 듯하다. 혹자는 이번 계기로 손님이 많아져 좋겠다고 하지만, 매일 사람의 눈을 마주 볼 수 없는 상태로, 저하된 저의 심리 상태를 솔직히 밝히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인천 연수구에 위치한 '평광옥'은 가게 주인이 정 감독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탔다. 그를 지지하는 이들에게 이곳은, 일종의 순례지가 됐고 사람들은 가게를 다녀가면서 인증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기도 했다. 반면, 정 감독을 '반통일세력'으로 치부하는 친북성향 시민활동가들과 이들을 따르는 일부 시민들은 평광옥 개업에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평광옥은, 연수구청 공무원들이 현장 점검을 위해 가장 자주 들리는 민원 업소가 됐다. 담당 공무원이 '이렇게 민원이 많은 경우는 처음'이라고 고개를 가로저을 정도였다. 그 사이 '페인트 스프레이 테러'도 벌어졌다. 결국 정 감독은 가게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정 감독은 24일 오후 뉴데일리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 동안 숨겨놨던 울분을 거침 없이 쏟아냈다.


    ◆“MBC '스트레이트' 방송 직후부터 살해 협박, 악성 민원 잇따라”

    “심신이 지쳤습니다.” 갑작스런 폐업 결정의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정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온라인은 물론이고 오프라인으로도 살해 협박을 받고 있었다. 정 감독을 상대로 한 살해 협박이 급증한 데는 방송의 영향이 컸다.

    지난달 20일 MBC 시사프로그램 '스트레이트'는, 2014년 9월 세월호 유가족 단식 농성장 인근에서 열린 '폭식 집회'를 보도하면서 정 감독의 얼굴을 10초 가량 내보냈다. 방송 직후 속칭 진보성향 누리꾼들 사이에서 '폭식 집회'의 배후에 정성산 감독이 있다는 근거 없는 주장이 나왔고, 평광옥은 이들에게 '표적'이 됐다. 진보성향 누리꾼들의 폭력은 온라인에 그치지 않았다. 가게 정문과 창문은 페인트 스프레이 협박 문구로 도배 됐고, 평광옥에 대한 불매 운동까지 벌어졌다. 가게에 대한 민원이 관할구청에 접수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SNS와 좌파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지금도 "정성산 감독의 음식점을 망하게 해야 한다"는 게시글이 퍼져나가고 있다. 현재 정 감독은 자신의 얼굴을 내보낸 MBC와 악성 댓글 유포자를 상대로 언론중재위원회 제소 및 민형사상 소송을 준비 중이다.

    정 감독은 “폭식 집회를 주도하거나 세월호 유가족을 폄훼한 사실이 결코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이런 사실이 언론에 좀 알려지고 나면 민원이 줄어들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고 했다.

  • ◆ “구청 공무원이, 무슨 원한을 그렇게 많이 샀느냐고 물었다”

    평광옥에 대한 민원의 실체가 궁금했다. 민원의 내용은 '평광옥에서 식사 중 바퀴벌레가 나왔다”, “식재료에 대한 원산지 표시가 없다” “직원들 가운데 월급을 받지 못한 사람이 있다”, “업소명 변경 신고를 하지 않았다” 등으로 다양했다. 구청 측에 직접 확인을 했다.

    구청 관계자는 "한 달이 안되는 기간 동안 식품 위생 관련 민원이 3건 접수됐고, 내용은 바퀴벌레 신고, 업소명 관련 위반 민원이었다”고 설명했다. 구청에 따르면 업소명 변경 미신고 건은 처분이 완료됐고, 바퀴벌레 민원은 사진도 없이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구청 관계자는 “사진이 없는 이상 우리가 직접 확인할 수는 없다”며, “소독을 주기적으로 하는지 여부를 파악하는데 정상적으로 소독 관리가 되고 있었다”고 답했다.

    "단 기간에 특정 업소를 상대로 이렇게 많은 민원이 들어오는 게 일반적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구청 관계자는 “사실 흔한 경우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일단 민원이 들어오면 소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업소에 일일이 연락을 취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정 감독은 “어제도 구청을 다녀왔는데 요즘 하루 종일 진이 빠진다”며, “스트레스로 간 수치가 너무 많이 올라갔다. 병원에서 무조건 요양을 권하는 상태”라고 말했다.

  • ▲ 정성산 감독.ⓒ뉴데일리DB
    ▲ 정성산 감독.ⓒ뉴데일리DB

    ◆ 정 감독 “인증샷 격려 고맙지만...버티기 힘들다”

    정 감독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일부 시민은, 평광옥을 찾아가 식사를 한 뒤 간판 앞에서 인증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방법으로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러나 정 감독은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며 폐업 방침을 거듭 밝혔다. 그는 페인트 스프레이 사건 이후,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매일 밤 가게를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폭력의 정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정 감독에 따르면 인천 시민들이 자주 접속하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평광옥에서 근무하는 직원 신상을 모두 까발려야 한다” 글까지 올라왔다. 이런 사실이 알려진 뒤 가게 직원 2명이 스스로 일을 그만뒀다.

    “누군가 노동청, 구청 등을 찾아다니며 갖가지 허위 민원을 넣고 있다. 사람을 괴롭히는 방법을 너무나 잘 아는 사람들이 분명하다.”

    - 정성산 감독.

    정 감독은  평양연극영화대학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했다. KBS 사회교육방송을 몰래 청취한 죄로 1994년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돼 모진 고문을 받았다. 극적으로 북한을 탈출한 그는 한국에 정착한 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각본 집필에 참여했으며, 북한 인권 실태를 고발한 뮤지컬 제작에 힘쓰고 있다.

  • ▲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가 지난 1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본인의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 출판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책을 들어 보이고 있다.ⓒ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가 지난 1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본인의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 출판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책을 들어 보이고 있다.ⓒ뉴데일리 이종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