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서 못 믿겠다” 병가 승인 않고 뒷조사… 공정노조 “인권유린" 항의
  • ▲ 지난 3일 인천 소재 C병원을 방문한 MBC정상화위원회 소속 기자들(좌측 두 명). ⓒ 김세의 기자 페이스북 캡처
    ▲ 지난 3일 인천 소재 C병원을 방문한 MBC정상화위원회 소속 기자들(좌측 두 명). ⓒ 김세의 기자 페이스북 캡처
    최근 대기발령 상태 직원의 휴직 신청을 고의적으로 묵살했다는 비판을 받은 MBC가 허리디스크 치료를 위해 병가를 신청한 도쿄특파원의 요구를 거부한 것도 모자라, '실제로 아픈지 의심된다'며 특파원이 입원한 국내 병원까지 찾아가 조사를 벌인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MBC 공정방송노동조합에 따르면 MBC 정상화위원회 소속 기자 두 명이 지난 3일 인천 소재 C병원을 방문해 도쿄특파원을 지낸 MBC 전OO 기자의 입원 여부와 함께 전 기자의 건강 상태를 캐물은 것으로 전해졌다.

    병원 측이 환자의 신상 정보를 함부로 공개할 수 없다는 건 지극히 상식에 속하는 일. 그러나 정상화위원회 소속 기자들은 C병원 담당 의사에게 전 기자의 소재와 더불어 "진짜 아픈 게 맞느냐?"며 흔히 말하는 '나이롱 환자'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C병원 관계자는 18일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지난 3일 MBC에서 오신 기자 두 분이 저희 병원에 내방하신 건 맞다"면서도 "이들이 병원 측에 어떤 요구를 했고, 병원에서 어떤 식으로 응대를 했는지는 말씀드릴 수가 없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 한 내부 소식통은 "병원 측에선 당시 전 기자의 신상에 대해 이것저것 캐묻는 MBC 기자들에게 '환자의 신상 정보를 밝힐 수 없다'는 원론적인 대답으로 일관하다, 이들이 위압적인 표현을 써가며 '전 기자가 아직도 입원해 있느냐'고 다그치자 '계속 입원 중'이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전 기자의 사정을 잘 알고 있다는 MBC 현직 기자는 "전 기자가 C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음에도 불구, MBC 측은 여전히 전 기자의 병가를 승인하지 않고 있다"며 "현재 전 기자는 어렵사리 '육아 휴직'을 얻어 가족들이 있는 일본 도쿄로 돌아간 상태"라고 말했다.

    MBC 정상화위원회 측은 C병원을 방문하기 수일 전(4월 30일)에도 전 기자에게 디스크 판정을 내린 일본 현지 병원에 연락을 취해 전 기자의 건강 상태를 캐물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한 관계자는 일본 의사에게 '진단서 발급 자격'이 있는지를 묻는 무례한 질문까지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박상후 전 시사제작국 부국장은 "일본 모 병원의 현지 의사는, 자신에게 전 기자에 대한 진단서 발급 여부와 실제로 발급 자격이 있는지를 물어본 MBC 정상화위원회 관계자를 가리켜, '부레이모노(ぶれいもの)'라며 대단한 분노를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밝혔다.

    박 전 부국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부레이모노(ぶれいもの)'는 글자 그대로는 '무례한 자'이지만 일본인의 입장에서는 그 이상의, 정말 예의가 없는 자에게나 평생 드물게 사용하는 격한 뉘앙스가 담겨 있다"며 "해당 기자가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충분히 유추해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MBC 공정방송노동조합에 의하면 MBC 정상화위원회는 지난 3월 초 세계 각국에 파견돼 있는 12명의 MBC 특파원들을 상대로 '본사로 들어오라'는 소환 명령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명목상 현행 특파원 제도의 '고비용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였다고는 하지만, 특파원 전원이 전임 사장 체제에서 선발된 기자들이라는 점에서 소위 '적폐 청산'의 일환으로 임기 축소가 이뤄진 것이라는 게 공정방송노동조합 측의 시각이다.

    도쿄특파원으로 현지에 체류 중이었던 전 기자도 본사로부터 동일한 '소환 명령'을 받았으나, 당시 추간판이 돌출되는 증상(허리디스크)이 심해지는 바람에 병가와 휴가를 신청, 귀국일을 늦춰줄 것을 요청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MBC 보도본부가 이같은 요구를 묵살함에 따라 전 기자는 가족의 곁을 떠나 홀로 귀국, 4월 20일경 인천의 C병원에서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부친의 뇌수술 간병을 위해 '가족돌봄휴가'를 신청한 뒤로 기약 없는 기다림을 이어가고 있다는 김세의 MBC 기자는 18일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MBC 정상화위원회가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서 'NLL 포기 발언'을 했는지 여부를 다룬 리포트를 검증하겠다며 (당시 취재기자였던)전 기자의 병가조차 승인하지 않고, 당장 정상화위 조사에 응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동병상련의 아픔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2012년 10월경 당시 무소속 안철수 후보(현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의 논문 표절 의혹을 보도했던 현OO 기자가 얼마 전 취업 규칙 등의 위반 사유로 해고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MBC 정상화위원회가 '적폐청산'이란 미명 하에 과거의 기사들을 부정하고 비언론노조 기자들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김 기자는 "동일한 배경으로 전 기자에게 수차례 출석을 강요하던 와중, 전 기자가 계속 입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지속되자, 결국 병원까지 쳐들어간 모양"이라며 "MBC 정상화위원회 측에선 '설쳐댔다'는 일각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말하고 있으나, 병원 CCTV 등을 확인해본 결과 당시 정상화위원회 소속 기자들이 꽤 긴 시간 동안 여러 병실을 돌아다니며 '갑질'을 한 모습으로 판단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 방송 기자는 "시기를 조정하자는 것도 아니고, 이유도 없이 연월차 승인을 일방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MBC 사측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안팎에서 최승호 사장의 MBC가 근로기준법 등 노동 법률을 고의적으로 묵살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며 "특히 뇌수술을 받으신 아버지를 돌봐드려야 한다고 휴직을 신청한 김세의 기자의 요청을 여전히 승인하지 않고 있는 건 '정상'과는 거리가 먼 행보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한편 MBC 정상화위원회 측은 지난 11일 MBC 공정방송노동조합에서 정상화위가 허리디스크로 치료를 받고 있는 회사 직원을 상대로 '뒷조사'를 하고 다닌다는 성명을 낸 것과 관련, "해당 병원에서 전 기자를 만난 적이 없으니, '조사를 받으라고 설쳐댔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공정방송노동조합 측의 주장에 일부 어폐가 있음을 지적했다.

    MBC 정상화위원회 측은 "조사의 필요가 있어 전 기자에게 출석을 요구했으나 병가를 이유로 출석이 불가하다고 하여 진단서와 입원확인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고, 전 기자가 일본에서 보낸 진단서에 의문이 있어 진단서를 발급한 한의원(접골원으로 확인됨)을 상대로 사실 여부 및 진단서 발급 자격 등을 전화로 확인한 바 있다"며 "또 전 기자가 일본에서의 진단서에 이어 한국의 병원에서 진단서와 입원확인서를 보냈기에 이를 확인하기 위해 해당 병원을 직접 방문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