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입에 재갈물리는 효과....성폭력 문제를 정치쟁점으로 희석
  • 지난달 24일 '나꼼수 멤버' 김어준은 자신이 진행하는 팟캐스트에서 "제가 예언을 할까 한다"며 "공작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어떻게 보이느냐. 진보진영을 분열시킬 기회로 사고가 돌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발언을 놓고 여야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단체가 들썩였다. 그와 정치적 성향이 같거나 비슷한 정당·사회단체도 예외는 아니었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당일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피해자 인권 문제에 여야(與野)나 진보·보수가 무슨 관련이 있느냐"며 "지금도 힘든 피해자를 한 번 더 망설이게 하는 것"이라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리며 비판했다.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이 몰려들어 비난 댓글을 달기도 했지만 금 의원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다. 2차 피해를 조장하는 격"이라며 소신을 지켰다.

    ‘親與·親文’의 대표주자 격인 김어준씨의 부적합한 행보에 대해서는, 여당에서도 경계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그는 '미투공작설' 주장을 멈추지 않고 있다. 김어준은 이달 9일 같은 팟캐스트 방송에 출현, "안희정에 이어 정봉주까지 (미투에 연루됐다), 이명박 각하가 (관심에서) 사라지고 있다"며 "제가 공작을 경고했는데, 그 이유는 미투를 공작으로 이용하고 싶은 자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야당은 김어준의 미투공작설을 맹렬히 비판했다. 허성우 자유한국당 수석부대변인은 지난 12일 논평을 통해 "김어준이 민주당 성추문 물타기 호위무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김어준의 행태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고 했다. 권성주 바른미래당 대변인도 "김어준은 즉각 대국민사과를 하고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길 바란다"고 논평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김어준씨는 "미투를 공작에 이용하는 자들이 있다고 말한 것이지, 미투를 공작이라고 한 적이 없다"며 한발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김씨의 부적절한 처신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진보 성향이 강한 문화예술계·여성단체에서 더 적극적으로 김어준씨의 '미투 공작' 발언을 문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12일 한국영화성평등센터 개소 기념행사에서 임순례(영화감독) 센터장은 "미투 운동을 '무언가를 덮기 위한 공작' 혹은 '진보진영 분열을 위한 수단'이라고 보는 잡스러운 이론이 나오고 있는 현실이 대단히 우려스럽다"고 쏘아붙였다. 

    15일에는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범시민행동' 출범식에서 백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가 "일부 세력은 미투 운동이 공작에 이용될 수 있다는 음모론을 제기하거나 '누군가의 기획'이라고 표현하는 등 본래 취지를 왜곡하려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어준’ 이름 석 자가 나오지 않았을 뿐, 사실상 그를 지목해 비판한 것이다.

    김어준씨의 음모론은 유명하다. ‘18대 대선 조작투표설’, ‘세월호 실소유주 국정원 관계설’ 등이 대표적이다. 김씨는 지난해 인터넷매체 스타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저를 음모론자라고 하는 분들도 계신데, 문제 제기를 하면서 이유를 말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 앞으로도 이상한 것은 이상하다고 하면서 힘닿는 데까지 밝힐 것"이라고 했다.

    근대정치사상에서 말하는 ‘자유’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테두리 안에서만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김어준씨의 '미투공작설'은, 힘없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또 따른 유형의 폭력이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