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현진 전 앵커의 6년 전 '작심 고백글', 다시금 회자한 언론노조원, "파업 불참하면 방송 활동 막겠다" 협박
  • 배현진(36) 전 앵커는 백지연 전 MBC아나운서 다음으로 가장 오랫동안 'MBC 뉴스데스크'를 진행했던 베테랑 아나운서였다. 2008년 입사 이래 정권이 바뀌고, 경영진이 교체되고, 수차례 파업이 벌어지는 격변(激變)이 반복됐지만 배 전 앵커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한결 같이 자신의 자리를 고수, 국민에게 뉴스를 전달하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던 그가 지난 9일 자유한국당에 입당했다. 지금껏 이렇다할 정치적 견해조차 밝힌 적이 없던 배 전 앵커가 정계에 투신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주변에선 그가 '출사표'를 던지게 된 배경을 궁금해하는 눈치다.

    그동안 배 전 앵커가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피력할 기회는 많이 있었다. 장기간 MBC와 뉴스데스크를 상징하는 자리에 있었기에 여야를 막론하고 그에게서 정치적 코멘트를 듣고자 하는 이들은 많았다. 하지만 '바른 언론인'의 화두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배 전 앵커는 그 어떠한 요구에도 응하지 않았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앵커 자리를 자진해서 비우지 않았던 이유도 아나운서로서 철저한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이렇듯 '천생 아나운서'였던 그가 정치인으로 변신하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풀이된다. 첫 번째는 줄기차게 배 전 앵커를 압박해온 언론노조 측이 그에게 '퇴사' 외에는 다른 선택지를 주지 않았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10년 동안 켜켜이 쌓여 왔던 변혁(變革)에 대한 갈망이 이번 인사 조치로 한순간에 터져 나왔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자신이 김소영 전 아나운서를 괴롭혔고, 자신 때문에 양윤경 기자가 보도국에서 쫓겨났다는 허위사실이 퍼졌을 때에도 배 전 앵커는 단 한 번도 억울하다는 속내를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10년간 지켜왔던 '마이크'를 빼앗겼다. 최승호 신임 사장이 부임하자마자 내린 '보복 인사'로, 배 전 앵커는 앵커 자리에서 내려와 차가운 조명창고 사무실에서 '무한 대기'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뉴스'와 '방송'이 전부였던 그에게 마이크를 내려놓으라는 것은 사실상 사형 선고를 내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과적으로 10년간 배 전 앵커에게 채워졌던 족쇄를 푼 건, 오매불망 그가 '안되기만을 바랐던' 반대 진영 인사들이다. 배 전 앵커의 전직(轉職)으로, 파업 불참 기자들을 일거에 내친 인사가 MBC에 '자충수'가 될 것이라는 일부 전문가들의 예견은 점점 현실로 굳어지고 있다. 알려진대로 지난해 12월 8일 자신의 자리에서 강제로 축출된 기자들은 배 전 앵커만이 아니었다. 약 80명에 달하는 취재기자들이 일순간 한직(閑職)으로 나가 떨어졌다. 자신의 전문성과 동떨어진 보직을 부여 받은 이들이 '남는 시간'에 어떤 행보를 취하리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파업의 '명분'과 '취지' 이해 못하는 동료들 많아"


    정치적으로 '중립'을 표방했던 배 전 앵커가 딱 한 번 자신의 '소신'을 드러낸 적이 있다. 지난 2012년 언론노조가 주도하는 파업 대열에서 이탈한 이후 그는 사내 인트라넷 자유발언대에 "명색이 뉴스 앵커고 공명선거 홍보대사인데, 정치적 색채를 띤 집회 자리에는 참석할 수 없다"며 현업으로 복귀하게 된 배경을 자세히 서술했다.

    당시 배 전 앵커는 "애당초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 총파업에 돌입한 언론노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겨를조차 없었다"며 "자신 외에도 파업의 명분과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동료들이 많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선배들께서는 '입사 후 고속으로 뉴스데스크 앵커 자리에 앉다보니 할 필요 없는 걱정까지 한다. 생각을 간단히 하라. 여자들은 군대에 다녀오지 않아서 조직의 생리를 모른다. 그냥 따라와라 '며 저의 고민을 일축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파업이라는 최극단의 선택을 100% 이해 못하는 동료들을 많이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말 '적폐기자'로 낙인 찍혀, 자기 자리에서 내쫓긴 기자들 대부분이 이때 총파업에 참여하지 않았던 이들이다. 배 전 앵커는 당시 파업에 소극적이었던 자신에게 한 선배 아나운서가 "계속 이런 식이라면 너 같은 아이는 파업이 끝난 뒤 앵커고 방송이고 절대 못하게 하겠다. 어떻게든 내가 그렇게 하겠다"는 협박을 가했다는 사실을 털어 놓은 바 있다. 놀랍게도 이 선배 아나운서의 '엄포'는 6년 만에 현실이 됐다.

    배 전 앵커의 글을 읽어보면, 당시 왜 이들이 선배들의 시위에 '환멸'을 느끼고 동참하지 않았는지를 알 수 있다. 선배를 자청하는 이들이 '불성실한' 후배를 다잡기 위해 공공연한 장소에서 불호령을 내리거나 심지어 폭력을 가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대의를 위해 사소한 거짓말이나 작은 진실은 덮고 넘어가야 할 때도 있다"고 뭣모르는 후배들을 현혹시키는 이들도 있었다. 참여에 미온적인 기자들에게는 "집회에 성실히 참여해 달라"는 독촉 문자가 날아왔고, 야당 측 국회의원과 진보 진영 인사들이 수시로 얼굴을 내비치는 등, 파업의 '순수성'을 의심케 하는 장면들이 자주 목격됐다.

    배 전 앵커는 지난 9일 자유한국당 입당 환영식에서 "뉴스데스크 앵커로 근무하던 2012년 당시 언론노조가 주도하는 파업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파업 참여 100일 만에 노조 탈퇴를 감행한 바 있다"면서 "그 이후로 인격적으로 몹시 모독감을 느낄 만한 각종 음해와 공격을 받아왔고, 급기야 석 달 전엔 정식 인사통보도 받지 못한 채 뉴스데스크 앵커 자리에서 쫓겨나듯 하차해야 했다"는 속사정을 털어놨다. 최승호 사장의 부임과 동시에 보직을 박탈 당한 근본적인 이유가, 6년 전 언론노조 주도 총파업에 동참하지 않았던 '전적' 때문임을 자기자신도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다음은 6년 전, 배 전 앵커가 처음으로 자신의 소신을 밝혔던 '심경 고백글' 전문.

    "배현진입니다"

    103일간의 파업 후, 노조 탈퇴,

    방송에 복귀한 후 동료들이 SNS상에 남긴 멘션들이 여럿 기사화 되었습니다.

    저는 분명, 개인적인 고민과 결단에 의해 현업에 복귀하겠다 밝혔을 뿐인데 제 의지보다 더 폭넓은 해석과 의미를 부여하신 듯 합니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셨던 그 간의 제 고민에 대해 정직하게 밝히는 글입니다.

    말씀드리지만 일련의 상황을 낱낱이 이야기 하며 제 결정을 다시 설명해야 하는 상황 자체는 안타깝습니다.

    파업 참여 과정, 뉴스 하차는 상황에 따른 불가피한 수순

    지난 1월 25일 수요일, MBC 보도국 기자회는 보도국장과 보도본부장의 퇴임을 요구하며 사흘간의 제작거부 농성에 돌입했습니다. 뉴스 파행이 예상되는 비상상황에서 보도국 편집부는 수목금, 평일 뉴스데스크를 15분으로 줄이기로 결정했습니다. 뉴스 시간 단축에 따라 co-anchor 에서 one-anchor로 대체 운영하기로 했고 당분간 제가 뉴스에서 빠지기로 협의했습니다. 그런데 보도국 제작거부 농성 첫 날 SNS상에는 '사측이 배현진 앵커를 강제 하차 시켰다는 MBC 노조발 멘션이 활발히 리트윗 되고 있었습니다.

    사실이 아니었기에 노조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문의했습니다. 당시 전화를 받은 이용마 노조홍보국장은 " 몰랐다 미안하다. 확인 후 이름을 지워주겠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무수히 RT가 되어버린 뒤였습니다. 모르는 사이 사측으로부터 탄압받은 여자 앵커가 되었고, 이용마 국장에게는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것에 제 이름 석자를 동원하지 않아주셨으면 하고 당부 드렸습니다.

    그리고 사흘 뒤 토요일, 노조는 '1월 30일 월요일 06시부로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총파업 찬반 투표는 제작거부 기간 중 함께 진행되었고 결과는 이러했습니다.

    전체 노조원 939명 중 783명이 투표해 533명 찬성, 15명 무효, 235명 반대 69.4%로 찬성 가결. 이전 파업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찬성률이었지만 이미 '가결'된 사안이었기에 원칙대로 파업에 돌입해야 했습니다. 물론 제작거부 기간이었기 때문에 뉴스 잔류, 하차 여부를 선택할 기회와 겨를은 없었습니다. 이것이 당초 제 거취를 택할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배현진, 왜 무엇을 고민하게 됐나


    저는 뉴스 앵커로서 편집회의에 참석하고 아이템 결정과정에 참여하고 앵커 멘트를 직접 작성합니다. 적어도 저희가 외압에 굴복해 불공정 보도를 했다면 '그냥 그런 것 같다. 마음에 안 든다' 정도가 아니라 '어느 날, 어느 뉴스' 등의 실증적인 사례를 들어 사죄드려야 합니다. 다소 늦었더라도, 노조 지도부의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해야하는 지, 9 시 뉴스데스크의 제작 현장에 있었던 제 경험에 비춰 파업의 명분을 재검토 해야 하는 지 확실히 해야 했습니다. 예컨대 파업의 시점과 파업 돌입의 결정적 사유에 대해서 충분히 설득되지 않은 채 그저 동원되는 모양새는 수긍할 수 없었습니다.

    선배들께서는 '입사 후 고속으로 뉴스데스크 앵커 자리에 앉다보니 할 필요 없는 걱정까지 한다. 생각을 간단히 하라. 여자들은 군대에 다녀오지 않아서 조직의 생리를 모른다. 그냥 따라와라 '며 저의 고민을 일축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파업이라는 최극단의 선택을 100% 이해 못하는 동료들을 많이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입사 5년 차이고, 파업은 네 번째입니다. 연이은 파업 피로를 덜기위해 많은 문화행사가 기획됐고, 마치 대학 축제 같은 즐거운 파업 분위기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먼저 황급했던 파업돌입의 이유 등을 공유할 만한 장이 마련됐어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우리의 정치적 중립성에 관하여-


    조심스러운 이야기입니다. 지극히 제 개인적 생각임을 먼저 밝힙니다.

    적극적인 집회 참석을 유보해오던 중 아나운서 동료가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동료들은 큰 충격과 박탈감에 휩싸였습니다. 그 누구도 더 이상 여지를 줄 수 없다는 분위기가 조성됐습니다. 제게도 집회에 성실히 참여해 달라는 압박이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집회에 나가도 마음이 어지러웠습니다.

    야당 측 국회의원과 진보 진영의 저명인사들이 차례로 초청되었고 이른바 소셜테이너로 알려지며 여러 번 정치적 성향을 밝혀온 연예인들이 방문해 파업을 독려했습니다. 초청 인사들의 말씀은 모두 지당한 말씀이었습니다. 공정방송을 지향하기 위해 언론 독립이 이뤄져야 한다. 이 사실에 누가 이의를 달겠습니까. 그러나 비단 '진보 인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공정방송'과 '완벽한 언론 독립'을 기치로 내건 우리였기에 여야를 막론하고 한 쪽 진영의 인사들에게 무게가 실리는 듯한 모습은 다소 위태롭게 느껴졌습니다.

    집행부인 한 아나운서 선배를 통해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실책에 대해 통렬히 반성한 것이라면 다시 일어서는 것도 반드시 스스로여야 한다. 특히 정치적인 힘을 빌리거나 특정 진영과 함께 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선배의 대답은 제 의도를 비껴갔습니다.

    "보수진영 정치인이나 저명인사들이 우리 파업에 지지의사를 보내준다면 당연히 초청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서 못 부르는 것일 뿐"

    진보건 보수건 간에 '이미 자립 의지를 잃은 것인가. 허탈했습니다. 4.11 총선 후 노조의 행보는 이전에 비해 고요했습니다. 여기저기서 야당의 총선 패배로 노조가 소위 멘탈 붕괴 상태라는 식의 소문이 돌고 돌아 제게도 들어왔습니다. 물론 노조는 곧 사실무근이라며 공식 반박했습니다. 정말 소문이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언론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적 의사 표현과 참여는 오로지 유권자로서 선거와 투표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저는 우리의 파업이 이 무게 중심을 잃고 있지 않나 우려됐습니다.

    선배의 엄포, 진실의 무게는 과연 잴 수 있는가 의문


    아직 찬기가 가시지 않은 2월의 마지막 날, 모 아나운서 선배와 여의도 모처에서 만났습니다.

    이미 많은 선배들이 파업에 적극 참여하지 못하는 저를 염려했었기에 같은 이유시냐 물었습니다.

    "선배님 저 혼란스러워서 제 이름과 얼굴 걸고 당당히 참여하기 힘듦니다. 뉴스 앵커고 공명선거 홍보대사인데 정치적 색채를 가진 구호를 외치거나 그런 성격의 집회 자리에는 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노보에 사실확인이 명확히 되지 않은 채 실리는 내용들도 영 마음에 걸립니다.

    "오늘 화가 나서 부른거다. 우리가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다. 대의를 위해 사소한 거짓말이나 작은 진실은 덮고 넘어가야 할 때도 있다. 어쩔 수 없는 희생이다. 계속 이런 식이라면 너 같은 아이는 파업이 끝난 뒤 앵커고 방송이고 절대 못하게 하겠다. 어떻게든 내가 그렇게 하겠다"

    "그런 논리라면 계속해서 진정성에 의심 갖는 제가 이쯤에서 더 귀찮게 묻지 않고 그만 두는 게 맞겠네요"

    "...... 그건 안돼. 그렇게 되면 노조가 안 된다. 그리하겠다면 지금 내가 무릎 꿇고라도 말려야 한다. 휴......그만 가자. 소화 안 된다"

    만남은 아무 소득없이 이렇게 끝났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진실이란게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으로 나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묻고 싶습니다. 공정이라는 대의를 쟁취하자고 수단이 거짓이어도 된다는 건 제 상식으론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이해하기 힘든 동료간 인신 공격. 어떻게 가능해졌나


    사상 유례없는 끝장 파업. 최장 파업 기록 갱신.

    한 달 두달 월급을 못 받고 상황이 악화 될수록 조직 안에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공포 분위기가 감돌았습니다.

    방송에 복귀한 뒤 < 원래 행태 >, < 뒤통수를 치는 구나 > 또는 < 두고두고 후회할 것 > 등 자극적인 SNS 멘션들이 같은 회사 동료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도 이런 불안한 심리 상태의 방증이라 생각합니다.

    아나운서 노조원 사이에서도 투쟁 동력을 떨어뜨릴만한 행위가 이의제기가 서로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때로 불성실한 후배를 다잡기 위해 공공연한 장소에서 불호령을 내리거나 심지어 폭력을 가하는 믿기 힘든 상황도 벌어졌습니다.

    민주적 절차를 실천해야 할 노조 내에서 절대로 목격되어선 안 되는 장면이었습니다. 저 아닌 누구라도 어떤 일에 참여의 의미가 없다 판단될 때 언제든 그만 둘 수 있는 것, 그리고 그 결정을 존중하는 것, 아파도 이것이 민주주의라 생각합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가두거나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함께 고쳐나가자는 건강했던 마음이 일부 변질되고 있다고 저는 판단했습니다.

    마지막 고백과 약속

    저 또한 바른 방송인, 바른 언론인의 화두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 파업 내내 고민한 것입니다. 다수가 속한 조직에서 나오겠다는 결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파업은 언젠가 끝납니다. 상황을 지켜보며 눈치껏 참여하다보면 더 환영받으며 복귀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점점 더 의의를 잃어가고 있는 제가 눈치 보는 것 또한 비겁이라 생각했습니다.

    자기 소신에 의해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분들의 뜻, 존중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제 신분은 비노조원인 MBC 아나운서입니다. 노조에서 나왔다고 어느 정권 편이니 사측이니 하며 편을 가르려는 시도, 그 의도 매우 불쾌합니다.

    여전히 제게 가장 준엄한 대상은 시청자뿐입니다.

    진정성 있는 대의명분과 정당한 수단을 이 두 가지가 완전히 충족되지 않는 한 두려움 등 그 어떤 이유로도 자리를 비우지 않을 것입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