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차례 비슷한 합의, 번번히 합의 깬 北…野 "남북간 공동성명발표 뒤따라야"
  • ▲ 지난 5일 방북한 정의용 수석특사가 맞은편에 앉은 김정은을 향해 서서 말하고 있다. ⓒ YTN 방송 화면 캡처
    ▲ 지난 5일 방북한 정의용 수석특사가 맞은편에 앉은 김정은을 향해 서서 말하고 있다. ⓒ YTN 방송 화면 캡처
    지난 5일 방북한 대북특사단이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한 6가지 합의문을 내놓은 것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서 '신뢰할 수 있는 합의문이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05년 9월 19일 북한은 지금과 거의 흡사한 남북합의문을 도출하고도 이듬해 미사일도발·핵실험 등을 감행했다. 특히 이번 남북합의 사항은 우리 측의 일방적인 발표만 있었을 뿐, 북한이 어떤 진정성 있는 조치를 취할지가 명시돼 있지 않다.

    청와대 관계자는 7일 오전 기자들과 만나 "지난 6일 대북특사단이 방북한 뒤 발표한 내용은, 특사단이 북쪽과 이야기를 나눈 뒤 북쪽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발표해도 되겠냐고 요청해 북에 포괄적인 인정을 받은 뒤에 한 것"이라며 "국가간의 신의와 무게감이 실려있는 북한이 인정하는 그런 항목"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청와대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수석특사로하는 대북특사단을 지난 5일 북한에 파견했다. 정의용 수석특사는 같은날 북한 김정은과 4시간 12분 간 접견·만찬을 한 뒤, 다음날 돌아와 언론 발표문을 공개했다.

    총 6개 조항이 들어있는 이 발표문에는 4월말 남북정상회담을 비롯, 북한의 입장이 들어있다. 다음은 전문이다.

    1. 남과 북은 4월말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하였으며, 이를 위해 구체적 실무협의를 진행해나가기로 하였습니다.
    2. 남과 북은 군사적 긴장 완화와 긴밀한 협의를 위해 정상간 Hot Line을 설치하기로 하였으며, 제3차 남북정상회담 이전에 첫 통화를 실시키로 하였습니다.
    3.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하였으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하였습니다.
    4. 북측은 비핵화 문제 협의 및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해 미국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용의를 표명하였습니다.
    5.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북측은 추가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 전략도발을 재개하는 일은 없을 것임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북측은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 무기를 남측을 향해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확약하였습니다.
    6. 북측은 평창올림픽을 위해 조성된 남북간 화해와 협력의 좋은 분위기를 이어나가기 위해 남측 태권도시범단과 예술단의 평양 방문을 초청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같은 내용은 지난 2005년 9월 19일 6자회담 과정에서 도출된 합의문과 유사하다. 다음은 지난 2005년 9월 19일 합의문 내용이다.

    1. 6자(한·미·일·북·중·러)는 전원일치로 6자회담의 목표가 한반도에서 평화적 방식으로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이루는 것이라는 것을 재확인했다.
    북한(D.P.R.K)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기로 약속했고, 빠른 시일내에 NPT와 IAEA의 보장.감독으로 복귀할 것을 약속했다.
    미국은 한반도에 핵무기가 없으며 핵무기나 재래식 무기로 북한을 공격하거나 침략할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한국은 1992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 따라 핵무기를 반입하거나 배치하지 않기로 한 약속을 재확인하고 현재 한국영토에는 핵무기가 없음을 확인했다.
    1992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 엄수되어야 하며 실현되어야 한다.
    북한은 핵에너지를 평화적으로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다른 참가국들은 이에 대해 존중을 표시하고 적당한 시점에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는 문제를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2. 6자는 그들의 관계에서 유엔헌장의 원칙과 목적을 준수하고 국제관계에서의 규범에 따르기로 했다.
    미국과 북한은 상호주권을 존중하기로 승낙하고 상호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그들의 양자간 정책에 따라서 그들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일본과 북한은 평양선언에 따라서 그들의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기로 승낙했다.
    이는 불행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남은 현안들을 해결한다는 기초위에서 또 평양선언의 정신에 따라서 양국관계를 정상화하는 조치를 취해가기로 했다.
    3. 6자는 에너지, 교역, 투자 분야에서 양자 그리고 다자 사이에서 경제적 협력을 증진시키기로 했다.
    중국, 일본, 한국, 러시아, 그리고 미국은 북한에 에너지를 제공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한국은 북한에 200만㎾의 전력을 제공하는 2005년 7월12일의 제안을 재확인했다.
    4. 6자는 동북아에서 평화와 안정을 지속시키기 위한 공동노력을 다짐했다.직접 당사자들은 한반도에서의 영구 평화체제를 위한 협상을 적절한 별도의 포럼을 통해 하기로 했다.
    6자는 동북아에서의 안보와 협력을 위한 방법을 찾아보자는데 합의했다.
    5. 6자는 말대말, 행동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서 앞서 언급한 합의를 실현하기 위한 조율된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했다.
    6. 6자는 5차 6자회담을 오는 11월초 베이징에서 열기로 합의했다. 구체적인 날짜는 상호 협의를 통해 결정하기로 했다.

    두 합의안의 내용은 북한이 핵무기를 파기하고 단계적 비핵화, 한반도 평화협정,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 제거, 미·북간 신뢰 구축 등을 골자로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정치권에서도 이에 대한 언급이 나오고 있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7일 MBC 라디오 〈양지열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2005년 9.19 합의 때도 그런 것(체제안전만 보장해주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내용)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박 의원은 "결국 이번에 정의용 안보실장이 특별히 미국에 북한의 말을 전달할 게 있다면서도 공개는 하지 않았지만, 저는 이 9.19합의 틀 안에서 무엇인가가 전달될 것"이라며 "저는 9.19합의로 돌아가면 북한 핵 문제는 해결된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북한은 당시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2006년 7월 4일(미국시각)에 대포동 2호의 1차 발사를 하여 협약을 공식적으로 파기했고, 이어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을 단행, 9·19 공동성명이 파기된 것임을 재확인했다.

    지난 6일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 의지를 밝힌 건 비핵화가 아닌 군축 대화를 하려는 목적"이라고 밝힌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힐 전 차관보는 "북한이 비핵화 대화 용의가 있다면 2005년 9.19합의에 대한 현재 입장부터 설명해야 할 것"이라며 "미국은 매우 신중히 대응해야 하며, 북한에 핵무기를 포기하고 핵확산금지조약에 복귀할 준비가 돼 있느냐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청와대 관계자 역시 지난 5일 발표문에 대해 "엄격하게 국제법적으로 효력이 있느냐 이렇게 따지면 한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북한 매체에서 동일한 발표가 있을 것으로 보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강도높은 비판을 내놓고 있다.

    자유한국당 정태옥 원내대변인은 "과거 북은 국제사회와 약속한 비핵화 합의를 헌신짝처럼 버리기 일수였다"며 "우리는 지난 1994년 제네바 합의로 1조 3800억원 규모로 북한에 경수로 2기와 중유 등을 제공했고 북한은 핵시설 동결과 핵확산금지조약 복귀를 약속했지만 이후 핵개발을 실시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렇게 늘 비핵화 약속은 북에게 핵과 미사일 개발의 시간을 벌어준 결과"라며 "특사단의 일방적 발표가 아닌 남북간 공동성명 발표가 뒤따라야 한다"고 비판했다.

    정 원내대변인은 "한국 측 기자단이 배제된 상태였고, 특사단 파견 이후 김정은 면담 등 1박 2일 간 모든 일정이 깜깜이로 진행됐다"며 "북한의 조선중앙통신 등에 의하면 남북 관계 개선 및 한반도 평화와 안전 보장 문제, 한반도의 첨예한 군사적 긴장 완화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다고 했지, 실제적 비핵화 의제를 다뤘다는 소식은 전혀 없다"고 언급했다.

    한편 이날 북한 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끝끝내 가로막는다면'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현 남북대화와 화해국면이 계속 이어지는가, 아니면 또다시 대결과 긴장격화의 상태도 되돌아가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합동군사연습재개에 달려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지난 6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대해 북한 김정은이 '예년 수준으로 진행하는 것을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언급한 것과는 다소 온도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