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세력이 KBS·SBS·MBC·EBS 공중파 4대 방송 장악…역사에 남을 일"
  • ▲ 강규형 전 KBS 이사. ⓒ뉴데일리 정상윤 사진기자
    ▲ 강규형 전 KBS 이사. ⓒ뉴데일리 정상윤 사진기자

    "정부기관 다 동원해 이런 식으로 해놓고 그냥 넘어간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정치권력에 기생하는 언론은 시한부나 다름없어요. 죗값을 비싸게 치를 날이 반드시 올 겁니다. 그때가 되면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겠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제일 만만한 대학교수' 강규형 前 KBS 이사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지난해 12월 28일 KBS 이사직에서 물러나는 과정에서 온갖 고초를 겪었다. KBS 언론노조는 직장(명지대)까지 찾아와 학생들에게, ‘강규형 교수 퇴진’을 요구하는 유인물을 나눠주고, 학내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지난달 27일에는 감사원 특별감사 결과 관련, 강 전 이사의 소명을 듣는 방송통신위원회 청문회가 열렸다. 비공개로 진행된 청문회가 끝나고, 방통위는 예정에 없던 전체회의를 열어 강 전 이사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의결했다. 해임 사유는 법인카드 부당 사용·KBS 이사 품위 훼손 등이었다.

    강 전 이사의 표현에 따르면, 이날 청문회에서는 ‘코미디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망언이 터져나왔다. 특히 청문회 주재인(主宰人) 김경근 고려대 교수는 "교수가 만만한 걸 모르느냐", "방송은 힘 있는 놈이 먹는 것" 등의 상식 이하 발언을 쏟아냈다고 한다. 방통위 관계자가 김 교수에게 "흥분하지 말고, 한두 가지 들으면 된다"는 조언까지 할 정도로, 청문회는 형식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이 강 교수의 주장이다.  

    청문회 다음날 문재인 대통령은 강 전 이사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재가했고, 그는 올 8월까지인 KBS 이사직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해임됐다. 강 교수는 방통위의 해임 의결에 불복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소송하는 것만큼 피곤한 일은 없다"는 그는, 앞으로도 관련 줄소송이 예정돼 있다고 전했다. 뉴데일리는 지난 30일 오후 전화인터뷰를 갖고, 그가 못다한 이야기를 들었다. 

    기자 <기>, 강규형 교수 <강>. 

    <기>순탄치 않았던 해임 과정이었다. 벌써 한달이 훌쩍 지났는데.

    <강>"정부가 방송장악 안 한다고 해놓고 지나치게 노골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장악하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이런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소위 민주화 세력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제5공화국 전두환 정권보다도 폭압적인 행태를 보일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기>KBS2노조(언론노조)가 직장(명지대학교)까지 찾아와 시위를 벌였다.

    <강>"이들은 방송장악의 일념만으로 소위 '적폐 명단'에도 없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공격했다. 나 뿐만 아니라 우리들(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KBS 이사진)이 대학교수(김경민 한양대 교수)나 로펌 변호사(이원일 법무법인 바른 대표변호사)이기 때문에 괴롭히기 쉬웠다고 본다. KBS와 학교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 교내까지 들어와 시위를 벌였다. 한 기자가 아무 관련 없는 학교를 왜 찾아오냐고 성재호 (KBS2노조)위원장에게 물었더니, KBS 수신료가 6천억인데 안 될 일이 뭐가 있냐고 했다더라."

    <기>당시 상황은 어땠나.

    <강>"대형 스피커로 떠들어서 옆 건물에 있어도 다 들리더라.(당시 명지대 학생회관에 있던 한 교수는 학습권 침해로 경찰에 KBS2노조를 신고하기도 했다.) 조용한 학교를 어지럽히고 난장판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법인카드로 애견을 구입했다든가 면세점에서 물품을 샀다든가 하는 허위사실로 가득찬 유인물을 학생들에게 나눠주며, 선악구도로 모는 치졸한 방식을 썼다. 심지어 강의실까지 찾아와 사퇴 의사를 물으며 괴롭히기도 했다. '목적이 좋으니까 법 안 지켜도 된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이들의 정당성은 무너진 것이다. 기본도 모르면서 무슨 방송인이라고 하나. 이런 태도야말로 전체주의 사회를 가져오는 첩경(捷徑)이다."

    <기>가장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강>"뜻대로 물러나지 않으니 온갖 정부기관을 다 동원했다. 개인정보를 빼낸 것도 불법이었고, 공금으로 애완견을 샀다든가 백화점·면세점에서 물품 구입했다는 식의 허위사실도 흘렸다. 그럼에도 이미 언론노조가 장악한 MBC는 내게 망신을 주려는 목적으로 PD수첩을 내보냈다. 전부 법적으로 문제가 될 사안이다."

    <기>해임 절차 상의 문제점을 말씀하시던데. 

    <강>"이들은(KBS2노조) 권한도 없이 방통위에 내 이사직 해임을 요청했다. 청문주재인과 방통위는 내 의견서를 다 검토해 보지도 않고 처리했다. 청문회 당시에도, 주재인에 대해 제척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전 공고가 없었다. 청문위원 제척 신청을 했더니 거부 통보를, 해임이 된 후에 받았다. 이게 말이 되나.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었던) 고영주 변호사 청문회가 내 청문회보다 2주정도 빨랐는데, 의결은 나보다 더 나중에 이뤄졌다. 방통위는 청문회 당일 내 해임을 의결했고, 다음날 대통령이 승인했다. 절차 무시하고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연내에 잘라야 한다는 일념으로 끝낸 것이다."

    <기>비공개로 진행된 청문회 녹취록이 공개됐다.

    <강>"청문회를 주재한 김경근 교수는 '힘있는 놈이 방송 먹는 거야', '수신료 인상을 위해 단식투쟁 왜 안 했느냐, 이사로서 의무 다하지 않은거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얘기만 했다. 방통위 관계자들이 김 교수에게 '막말하면 안 됩니다'라고까지 했다. '방통위 관계자는 김 교수에게, ‘길게 끌지 말고 빨리 끝내라. 얘기만 들어도 된다'고 말했다. 이 말을 곱씹어보면 청문회는 그냥 통과의례였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엉터리 청문회가 어디 있나. 청문회 녹취록은 역사에 남을 증거가 됐다. 김 교수는 '방송은 누군가에 의해서 장악된다. 센 놈이 먹게 돼 있다. 그런 법칙이고, 우리 방송 역사의 법칙' 등의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도 했다."

    <기>지난 15일 관련 소송에서 기각 결정을 받았다.

    <강>"(KBS 이사 해임처분) 집행정지에 대한 기각이다. 변호사에 따르면 내 서류는 완벽한 논리를 갖췄다고 한다. 하지만 이게 인용되면 난리가 날 것이다. 새로 KBS 이사로 선임된 김상근 목사도 엮여 있다. 과연 그것을 뒤집을 만한 강단 있고 소신 있는 판사가 우리나라에 있을까. 나에 대한 해임취소 소송이 본안(本案)이다. 보나마나 거북이처럼 진행될 것이다. 내가 소송하는 것은 무조건 거북이다. 반면, 그들이 고소한 것은 속전속결로 진행된다. 내 정보를 마음대로 공개했기 때문에 개인정보보호법 위반과 명예훼손이 성립한다. (KBS)2노조는 내가 고소해야 할 일을, 자기네들이 먼저 고발했다. 이런 적반하장이 없다. 권력이 뒤에 있다고 믿으니까 보이는 것이 없는 것 같다."

    <기>못다한 말이 있다면.

    <강>"특정 세력에 의해 KBS·SBS·MBC·EBS 공중파 4대 방송이 장악됐다. 우리나라 역사에 남을 일이다. 이 사람들 하는 행동을 보면, 역사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구나, 자기들이 어떻게 기록될 것인지 생각하지 않는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그만큼 방송장악이 계획적·조직적으로 무지막지하게 진행됐다. 사안의 중대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예전 광우병 선동 같은 부작용이 많이 생길 것이다. (국민들도) 이런 폐해를 곧 깨닫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