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학생들 “왜 우리가 본토 중국어 배워야 하나?”

26일 홍콩침례대학 학생들, ‘푸통화’ 필수과목 철폐 촉구 집회

허동혁 칼럼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8.01.28 19:16:25
▲ 총장실 건물로 진행중인 시위 학생들.ⓒ 허동혁 객원논설위원.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 ‘조선어학회사건’과 비슷한 일이 지금 홍콩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난 26일 홍콩침례대학(Hong Kong Baptist University)에서 이 학교 학생과 다른 학교 학생 300여 명이 모여, 졸업필수 과목인 중국 표준어(푸통화, 普通語) 면제 시험의 채점 방식에 항의하던 학생회장 등 학생 2명에게 내린 정학 처분에 대한 항의 집회를 열었다.

학생들은 교내 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정학 조치 취소와 푸통화의 필수과목 해제를 요구했으며, 집회 후 총장실 건물 앞까지 행진한 뒤 총장 대리에게 요구사항이 담긴 서한을 전달했다.

홍콩침례대학 학생회장 등이 정학을 당한 사유는 이렇다. 이 학교는 2007년부터 푸통화를 필수과목으로 정했는데, 필수 면제시험 불합격률이 70%에 이르고, 이 학교의 중국어 홍보대사까지 불합격하는 일이 벌어지자, 지난 1월 17일 라우체카이(劉子頎) 학생회장을 포함한 30여 명의 학생들이 ‘시험 내용이 어렵지도 않은데 합격 기준이 뭐냐’며 학교 사무실로 몰려가서 격렬하게 항의했다. 이 때 학생회장이 고성을 지르며 폭언을 했다고 한다.

정학 처분을 받은 또 한명의 학생은 의대생 찬록항(陳樂行) 씨로, 그는 항의 직후 중국 광저우의 한 병원에 인턴을 다녀오던 중 약 100통의 협박 메시지를 받았다고 언론에 밝히고 학교에 재차 항의했다가 학교 측이 ‘예의에 어긋나다’며 정학 처분을 받았다.

이 소동의 배경에는 홍콩의 언어 문제가 있다. 홍콩 공용어는 토착 언어인 광동어와 영어 그리고 푸통화이다. 푸통화는 1997년 중국 반환 이후 공용어가 됐다.

현재 홍콩에서는 푸통화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나 2류 언어 취급을 받고 있다. 실제로 홍콩인들은 외국인에게 ‘홍콩에서는 가급적 푸통화를 쓰지 말라’고 조언하는데, 푸통화를 사용하면 홍콩인에게 무시당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된 주요 원인은 반중감정이다. 중국 관광객의 비문명적 행태로 인해 ‘푸통화는 2류 언어’이자 지배자의 언어라는 인식이 홍콩인들 사이에 팽배하다. 게다가 전국시대부터 이어져 온 광동어 특유의 고립적인 언어문화도 한 몫하고 있다.

▲ 홍콩침례대학 건물벽에 스프레이로 푸통화 배척 낙서를 하는 학생. PTH는 푸통화(putonghua)를 의미한다.ⓒ허동혁 객원논설위원.
홍콩침례대학의 정학 조치 이후 학생들은 ‘우리가 왜 푸통화를 배워야 하느냐’ 며 들끓기 시작했고, 교내 건물에는 ‘푸통화는 필요 없다’ 등의 낙서를 그리기 시작했다. 교내에서 정학 조치에 대한 의견을 묻는 설문조사에서는 ‘학교 측의 조치가 부당하다’는 의견이 92%에 달했다.

라우 학생회장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푸통화로 쓰여진 협박 메시지가 지금도 계속 오고 있으며, 심지어 항의에 참가 중인 여학생들을 겁탈하겠다는 메시지도 두 번이나 왔다”면서 “다음 주 수요일까지 우리의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으면 단체수업거부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26일 홍콩침례대학 학생들의 집회는 한 시간 반 동안 평화롭게 진행됐으며, 집회 도중 눈물짓는 학생들도 보였다. 홍콩 주요 언론사는 물론 오는 3월 열리는 입법원 보궐 선거의 민주파 후보도 찾아오는 등 홍콩 시민들은 이날 집회에 큰 관심을 보였다.

한편, 같은 학교의 한 중국 학생이 집회의 요구 내용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 학교 석사과정의 첸아이쟈(陳艾嘉,여) 씨는 정체자와 간체자로 ‘당신들의 푸통화 공부를 돕고 싶다. 학교 당국에 대한 공격을 중지해 달라’고 쓴 종이를 들고 시위 현장 옆에 서 있었다.

첸 씨는 인터뷰에서 “푸통화는 세계 언어이니 배우면 좋지 않느냐. 곳곳에 벽보 낙서가 있는데 항의를 조금 더 부드럽게 했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이 학생과 다른 시위 학생들 간의 충돌이나 언쟁은 없었다.

▲ 시위대 옆에서 일인 시위 중인 중국인 학생 첸아이쟈 씨. 중국 정체자와 간체자로 '푸통화 공부를 도와 드리겠습니다. 학교와 교수님을 공격하지 마세요' 라고 쓴 종이를 들고 있다. ⓒ허동혁 객원논설위원.
중국의 관영언론은 이 사태에 대해 즉각 대응하고 있다. 관영 ‘환구시보’는 논평에서 “중국어(푸통화)는 지금 영어 이상으로 중요한 언어가 돼가고 있다”며 홍콩 학생들에게 각성을 촉구했다.

다민족 국가나 식민지에서나 일어나는 이런 종류의 논란은 홍콩 정치권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고, 특히 학생들이 학교 측의 정학 조치에 대해 상당히 격앙된 상태여서, 다음 주 학교의 후속 조치에 홍콩 사회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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