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무 연속성 고려… 청산은 안하되 친박 주도권 인정 않는다는 경고
  • ▲ 자유한국당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이 31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전당대회의 개회를 선언하며 당기를 힘차게 휘날리고 있다. 이날 한국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인명진 위원장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위촉할 뜻을 비쳤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자유한국당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이 31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전당대회의 개회를 선언하며 당기를 힘차게 휘날리고 있다. 이날 한국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인명진 위원장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위촉할 뜻을 비쳤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자유한국당의 대선 후보로 확정된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선출 일성(一聲)으로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을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추대하겠다고 천명했다.

    기존 비대위원장을 우선적으로 선대위원장으로 추대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은 당무의 연속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굳이 '인적 청산'까지는 하지 않겠지만, 향후 당무에 있어서 친박계가 지금처럼 헤게모니를 쥐려 하는 것은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경고의 의미로도 읽힌다.

    홍준표 지사는 31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한국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직후, 현장 취재진과 일문일답을 가진 자리에서 "탄핵 국면에서 우리 당을 끌고오면서 고생한 분"이라며 "우선 인명진 위원장을 선대위원장으로 모셔야 한다"고 밝혔다.

    또 "당내와 당외의 공동선대위원장 체제로 할 것"이라고 밝혀, 향후 구성될 선대위는 정치권의 관례대로 당내와 당외 인사 수 명이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추대될 것으로 보인다.

    홍준표 지사는 "당내에서도 모셔야 할 분이 있긴 한데, 지금 당장 발표하기는 이르다"며 "방금 후보가 된 것인데…"라고 빙긋 웃었다.

    '당내에서 모셔야 할 분'으로는 김황식 전 국무총리나 박관용 전 국회의장 등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가 지난 23일, 후보 선출 이후 공동선대위원장 위촉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김황식 전 총리와 박관용 전 의장의 이름을 거론한 것이 한 뉴스통신사의 카메라에 포착된 적도 있다.

    당외 인사로는 노무현정권에서 청와대 정책실장과 교육부총리를 지냈던 김병준 국민대 교수와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장관,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장관 등이 물망에 오르내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준표 지사가 다른 인사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면서도 우선적으로 인명진 위원장을 선대위원장 추대 대상으로 지목한 것은, 대선까지 불과 39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 당무의 연속성을 기하려는 것으로 추측된다.

    종래 비대위원장을 맡아왔던 인명진 위원장이 완전히 물러나게 되면, 각종 당직자의 인사 문제와 당무의 처리 등이 문제될 수 있다. 그렇다고 대선이 불과 39일 남았는데 당 체제를 새롭게 정비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인명진 위원장이 선대위원장으로 수평 이동하면서 현재의 당직·당무를 큰 변화 없이 유지해 대선을 치러내겠다는 복안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른바 '태극기 세력'이라 불리는 친박 성향의 당내외 소수 세력이 인명진 위원장을 반대했던 것도 인선의 배경으로 꼽힌다. '태극기 세력'을 이용해 당무에서 헤게모니를 놓지 않으려 하는 당내 친박계를 향한 경고의 의미라는 것이다.

    홍준표 지사는 이날 일문일답에서 "극히 일부의 양아치 같은 친박이 있는데, 당헌·당규 절차에 의하지 않고 청산한다는 것은 혁명 때나 가능한 일"이라며 "대통합으로 나가야 하는데, 누굴 빼는 뺄셈의 정치는 안 된다"고 '친박 청산'에 일단 선을 그었다.

    친박패권으로부터 자유로운 홍준표 지사가 대선 후보가 되면 당의 면모를 일신하는 인적 청산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왔던 당내 중도·온건·민생·실용 성향의 의원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입장이 아닐 수 없다.

  • ▲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31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후보로 선출된 직후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31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후보로 선출된 직후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이 때문에 친박계가 착각에 빠져 지금처럼 계속해서 당무에 주도권을 쥐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일이 사전에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친박계와 '태극기 세력'의 타겟이 됐던 인명진 위원장을 가장 먼저 상징적으로 선대위원장에 추대하겠다는 뜻을 천명했다는 분석이다.

    물론 인명진 위원장이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선대위에 입성하는 것과 관련해, '태극기 세력'이나 '일부 친박들'의 반발이 있겠지만, 홍준표 지사가 경선 과정 내내 어떠한 경우에도 이들에게 끌려가거나 얹혀가지 않으려는 담대한 기개를 보여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외의 결정은 아니라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달 22일 부산롯데호텔에서의 특강이나, 지난 15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 한반도미래재단 특강 때만 해도 '태극기 세력' 상당수가 홍준표 지사를 주목하면서 그로부터 듣고 싶은 말을 들어하는 눈치였으나, 홍준표 지사는 이들 세력에 영합하지 않고 소신을 지켜왔다.

    홍준표 지사가 지난 14일 페이스북에 "이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머리 속에서 지워야 할 때"라는 글을 올리자 '태극기 세력'은 그의 페이스북으로 몰려가 댓글을 달며 분탕질을 쳤다. 그러나 홍준표 지사는 개의치 않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춘향인 줄 알고 뽑아놨는데 향단이"라는 식으로 더욱 강하게 비판했다.

    지금까지 그의 정치 스타일로 보면 당연하다는 지적이다. 22년 간의 정치역정 동안 홍준표 지사는 계파나 조직에 의존하거나 눈치를 보면서 정치를 해본 적이 없다. 이날 54.2%라는 압도적 과반 득표율로 당선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소수 '태극기 세력'의 눈치를 하등 보지 않아도 경선에서 자력으로 승리할 수 있는데 굳이 이들에게 영합하는 발언을 할 이유가 없다는 분석이다.

    '태극기 세력'이 제2의 보수정당인 바른정당을 '배신자'라고 지칭하며 통합이나 연대·단일화에 거부 반응을 보여왔으나, 홍준표 지사가 전혀 괘념치 않고 '대선 전 단일화, 대선 후 통합'이 필요하다는 소신을 견지한 것도 이의 연장선상으로 해석된다.

    상식적으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방향으로 크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대선 본선을 승리하기 위해서는 바른정당과의 연대·단일화는 필수불가결하다. 그런데 일부 세력의 잘못된 견해에 동조하는 것은 스스로 대선 패배의 길로 가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경선을 이기기 위해서는 굳이 '태극기 세력'에 영합하지 않아도 되고, 본선을 이기기 위해서는 절대로 '태극기 세력'에 영합해서는 안 되는 셈이다.

    이날 홍준표 지사가 수락연설과 그 이후 취재진과의 일문일답에서 바른정당과의 연대 의지를 재차 강조한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이해된다.

    경선 패배자인 김진태 의원이 후보 선출 직후 바른정당과의 연대에 부정적인 입장의 연설을 했다는 지적에 대해, 홍준표 지사는 "계파는 없고 이제는 내가 대장"이라며 "쉽게 이야기해서 5월 9일까지는 내가 대장인 것"이라고, 일각의 반발을 전혀 고려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일축했다.

    이어 "탄핵 때문에 분당이 됐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되고 구속까지 됐으니 (분당의) 원인은 다 없어져버린 것"이라며 "돌아오는 게 정답이고, 같이 합치는 게 정답"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유승민 후보와 만날 때가 되면 만날 것이고, (만남을) 회피하지 않는다"고 밝혀, 바른정당과의 단일화 내지 통합을 위해 직접 후보 간의 1대1 정치협상을 할 뜻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