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극기 民心, 드디어 희망을 쏘다

    -광화문 애국시민집회 참관기-
    최 응 표 / 뉴데일리 고문(뉴욕에서)


  • 촛불민심과 태극기민심

     미래학자 티모시 맥은 한국방문 첫인상을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다.
    “조용한 나라 한국이 주는 이미지는 평화, 차분함, 그리고 우아함이다. 그러나 봄을 싣고 한국을 찾은 3월의 하늘 아래 평화, 차분함, 우아함은 없었다.”

    오랜만에 내가 찾은 조국 대한민국에도 역시 평화, 차분함, 우아함은 없었다.
    온통 민심을 가장한 촛불로 거짓과 위선과 선동, 그리고 분노와 증오로 혁명 깃발에
    불을 댕기려는 광란의 굿판만 요란했다.

    누가 순진한 군중들 손에 촛불을 들게 했는가? 촛불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거리로 떠밀려 나온 근중은 정말 괴벨스(나치 독일의 선전부 장관)의 말대로 우매한 것인가?
    모처럼 방문한 조국에서 받은 인상은 괴벨스 뺨치는 왜곡, 선동 기술자들(언론, 보따리 평론,
    전문가들)의 구역질나는 행태와 그에 따른 국가혼란이었다.

    대중을 조종하는 최고의 무기는 증오와 분노다. 증오와 분노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선동엔 증오의 대상이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바로 그 선동의 대상이 된 상태에서 나라는 온통 革命(혁명)분위기에 휩쓸린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는 ‘저들 뜻대로 혁명정부가 만들어지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신앙 같은 것이 더 강력하게 꿈틀대고 있었다.

    “민중은 단순하다. 빵 한 덩어리와 왜곡된 정보만 주면 국가에 충실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는 괴벨스의 선동선전술이 그대로 먹혀들고 있었다. 문제는 민심을 가장한 촛불이 공산혁명의 신호탄이라는 끔찍한 사실을 대중이 모른 채 저들의 선동선전에 끌려간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거리를 정복하면 군중을 장악할 수 있고, 군중을 장악하면 국가를 장악할 수 있다”는 나치독일의 대표적 선동전술을 그대로 답습한 만노총, 전교조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촛불(공산화전략)이 진짜 민심이냐, 가짜 민심이냐를 국민 스스로가 가려내지 못한다면 촛불은 횃불이 되고 횃불은 다시 들불이 되어 들판 전체를 불태워버릴 수 있다는 불안감도 컸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국민을 속일 수는 없다. 진실은 더디지만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이다.
    세상에서 가장 악마적인 것이 거짓말과 사기다. 그래서 속임수는 오래 지속될 수가 없다.
    그것이 하늘의 이치다.

    1894년, 진실과 정의를 짓밟은 드리퓌스 사건(유대인 드리퓌스 프랑스 육군 소령 간첩사건)을 고발한 에밀 졸라는 “진실이 땅 속에 묻히면 조금씩 자라나 엄청난 폭발력을 축적하고, 마침내 터지는 날에는 세상 모든 것을 날려버린다”고 했다.

    에밀 졸라의 말처럼, 언론의 거짓선동과 악의적 왜곡보도, 그리고 민노총, 전교조 같은 불온한
    혁명세력과 여의도 정치건달들의 속임수에 갇혀있던 국민의 양심이 마침내 인내의 한계를 넘어 세상의 모든 불의를 날려버릴 기세로 폭발했다.

    드디어 12월 10일, 12월 17일, 지축을 흔들며 터져 나온 “태극기민심”이 광화문 촛불의 가짜민심을 덮어버린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양심 과 진실을 담은 혁명이고 기적이었다.
    하지만 조건 없이 주어지는 기적은 없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이제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역사는 언제나 정의와 진실 편에 있다는 하늘의 뜻을 되새기며
    태극기민심을 따라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헌정질서를 회복하고 무너진 대한민국의
    가치와 정통성 회복에 온 국민의 역량을 쏟아야 한다.

     ‘중고생 혁명지도부’의 등장은 전교조의 좌경화 역사교육 산물

    “전 현직 전교조 교사들이 막후 조종하는 ‘21세기 청소년 공동체 희망’이라는 청소년단체가 전국적으로 참가 학생들을 모아 전세 버스로 실어 나를 계획까지 밝히고 있어서 더 걱정이다.

    "어른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어린 학생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해 불쏘시개로 쓰겠다는 흉계이기 때문이다”라는 인터넷 기사를 읽은 충격은 지금까지 가슴을 뛰게 한다.

    ‘중고생이 앞장서서 혁명정부 세워내자’는 플랜카드를 들고 광화문을 누비는 어린 학생들의 일그러진 모습은 한마디로 공포분위기 그 자체였다. 용어부터가 순 북한식이다. 누가 어린 학생들 손에 이런 끔찍한 현수막을 들게 했나? 서글픔이 앞섰다.

    민노총과 전교조가 주도하는 광화문 촛불 시위엔 민심은 없고 공산혁명 열기만 가득한 광란의 굿판이었다. 평화시위를 가장한 촛불 속에는 공포와 살기, 저주와 증오, 분노와 독기가 서린 막장드라마의 한 단면이 그대로 녹아있었다.

    ‘통진당 해산 무효’ 주장과 ‘양심수 이석기 석방하라’는 주장 저변에는 ‘폭력으로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세력’의 음모가 깔려있다는 인상이 강하게 묻어났다.

    거기에 “순순히 내려오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는 민주당의 독기서린 으름장은 북한 노동당의 민청과 여성동맹의 붉은 완장부대등장을 예고하는 것 같아 김일성 치하의 6.25 慘劇(참극)이 떠오른다.

    이런 난장판 정국을 보면서 성장해가는 어린 학생들에게는 어떤 가치관이 형성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국가의 미래가 어둡게만 비쳐진다. 전교조의 친북좌편향 역사교육이 결국 이런 참담한 결과를 가져 온 것이다. 이래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침묵으로 일관할 것인가?

    어디 그뿐인가. ‘헌재에서 탄핵이  부결되면 시민혁명으로 뒤집어엎겠다’는 문재인, 통수권까지 뺏겠다며 대통령 행세하는 문재인, 실질적인 공산혁명을 하겠다는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는 점에서 문재인은 김대중, 노무현보다 더 무서운 종북적인 인물이다. 절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될 인간이다.

    역사도 인생과 마찬가지로 고통과 직면한 경험을 통해서 眞實의 가치를 찾게 된다.
    가짜 광화문 촛불민심으로 한 순간 고통은 받았지만, 거짓과 진실을 구별할 수 있는 사회적 지혜를 얻었다는 점에서 가짜 촛불민심은 전화의복의 계기가 되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중고생이 앞장서서 혁명정부 세워내자’는 중고생들의 일그러진 모습은 영원한 아픔으로 남을 것이다. 어쩌다 어린 영혼들이 이렇게 흉측하게 망가졌는가? 원죄는 전교조의 친북좌경화 역사교육에 있다. 그래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국가생존의 문제라고 하지 않는가.

    또 하나 가짜 촛불민심에서 터득한 것은 “선동은 문장 하나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해명하려면 수 십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해명할 때면 이미 대중은 선동 당해있어 어떤 해명보다 선동내용을 더 잘 기억 한다”는 괴벨스 선동논리의 철저함이다.

    지금 모든 언론매체를 비롯해 촛불주도세력들의 거짓, 왜곡, 악의적 허위보도를 마음대로 해대는 것은 괴벨스의 그런 선동논리의 산물이다. 그 논리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집단이 언론 매체다. 그래서 한국 언론매체는 척결대상이라는 것이다.

    “악마의 얼굴을 보고도 침묵한다면 그 역시 악마와 다를 바 없다” 영국 종신 상원의원 데이비드 올턴 경의 말이다. 태극기민심은 악마를 악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단결, 도덕성, 용기, 결단, 의지 등을 강화시켜주는 것이 바로 역사의 힘”이라는 귀중한 메시지도 함께 선물로 주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태극기민심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지킴이 역할엔 별 힘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중고생이 앞장서서 혁명정부 세워내자”라는 끔찍한 외침에도 집권여당을 비롯해 지식인 사회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싸울 의지가 없는 비겁한 국민에게 가혹한 법을 내리는 것이 역사다.
    박정희 대통령은 역사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았다. 그래서 “역사는 언제나 난관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용기가 있는 국민에게 발전과 영광을 안겨다 준다”는 신념으로 조국근대화의 길을 열어 오늘의 영광을 가져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애써 이룩한 ‘한국사교과서 국정화’가 물거품이 될 공산이 크다. 친북좌경화 역사교육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광화문 촛불을 보고도 깨닫지 못한다면 결과는 빤한 것, 중고생들에 의해 혁명정부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모든 길은 모스크바로 통한다”는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브란덴브르크’의 문이 열리면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 그 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모든 길은 평양으로 통한다’는 시대를 열기 위해 뿜어내던 촛불의 광기도 마침내 태극기민심에 꺼져가는 형국인데도 싸울 의지가 없다면 이유 없이 맞아죽고, 얼어 죽고, 굶어 죽는 북한식 삶을 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진정 그것을 원하는가? 오늘의 집권여당과 보수 세력 가지고는 한국판 ‘브란덴부르크’의 문을 열 가능성은 0퍼센트도 없다.

    한국판 ‘브란덴브르크’의 문을 열 ‘時代의 神’은 태극기민심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조선은 율곡의 말대로 나라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의 가장 공격적이고 비판적인 상소문 ‘萬言封事(만언봉사)에서 지적한대로 조선은 날로 심하게 썩어 하루가 다르게 붕괴되어가는 한 채의 큰 집이었다.

    지금 한국이 바로 그런 형국이다. 가짜 촛불민심이 광화문 광장을 점거하고 있는 한,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기란 거의 불가능 하다. 집권여당과 언론과 지식인사회가 썩어있는데 무슨 힘으로 제자리를 찾을 수 있겠는가.

    문제는 태극기민심을 제대로 읽고 행동하는 국민적 교양과 양심이다.
    독일의 실증사학자 랑케는 어느 시대나 그 시대를 주관하는 ‘時代의 神’이 있다고 했다.
    그럼 우리의 이 난국을 헤쳐 나갈 ‘시대의 신은 어떤 神일까. 바로 ‘태극기민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태극기민심에 희망을 걸어본다.

    이제는 광화문의 가짜 촛불민심에 분노할 때다.
    ‘분노’의 저자 스테반 에셀은 “분노할 이유를 발견하는 것은 귀중한 선물이며, 분노할 것에 분노할 때 거대한 역사의 흐름의 일부가 된다”고 했다.

    썩은 상처(언론, 촛불민심 주도세력, 여의도 정치건달들, 양심 없는 지식사회 등)는 하루 빨리
    도려내야 한다. 그래야 나라 살릴 새살이 자랄 수 있다.

    가짜 촛불민심에 분노해 광화문에서 혜화동 로터리까지 가득 메운 태극기민심에 희망을 건다.
    ‘우리 시대의 神(정신)’이 된 태극기민심은 오늘도 내일도 광화문 광장을 넘어 자유대한의 들판에 쓰나미처럼 번질 것이다. 이것이 진리고 진실이며 사회적 양심이다. 광화문 애국시민집회가 주는 메시지는 대한민국 미래의 희망을 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