玉石 분별해야… 헌법에 근거했던 '탄핵 의거' 뭉뚱그려 사과 말라
  • ▲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연설 도중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이정현 대표는 이날 연설에서 김대중정부 시절 국정 비협조와 노무현정권 시절 대통령 탄핵에 대한 사과 의사를 밝혔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연설 도중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이정현 대표는 이날 연설에서 김대중정부 시절 국정 비협조와 노무현정권 시절 대통령 탄핵에 대한 사과 의사를 밝혔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내용 중 김대중정부 시절 국정 비협조에 사과한 대목과 노무현정권 시절 탄핵을 사과한 대목을 놓고 정치권과 중도·보수층 국민들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김대중정부 시절 국정 운영에 비협조한 부분에 대한 사과는 있을 수 있지만, 노무현정권 시절 탄핵을 사과한 것은 너무 나간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김대중 대통령 집권 시절, 국정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못한 점을 사과드린다"며 "국민이 뽑은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했던 것 역시 사과드린다"고 했다.

    이 중 'DJ 시절에 대한 사과'와 관련해서는 이튿날인 6일, 서울 동교동을 찾아 이희호 여사를 예방한 자리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IMF 직후 어렵던 시절, 높은 지도력을 발휘해서 국민을 하나로 만들고 빠른 시일 내에 IMF를 이겨냈다"며 "초보 야당이라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야당 역할인지 알고 도와드리지 못했던 것을 사과했다"고 부연해서 설명했다.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다. DJ는 '햇볕정책'이라는 이름 하에 북한에 '퍼주기'를 시작하는 잘못을 남겼지만, 한편으로 우리 내부를 지탱하는 근간을 흔들지는 않았다.

    한미동맹 체제를 흔들거나 전시작전권의 환수를 시도하는 등 참람된 일을 벌이지 않았으며, 국가보안법도 손대려 하지 않았다. 신용카드 보급을 통한 소비 진작은 후일 부작용을 초래했지만, 당장의 경기 회복은 이뤄냈다. 안보와 경제라는 측면에서 공과(功過)가 있는 셈이다.

    이정현 대표는 전날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호남 지주들이 기반을 이뤘던 한국민주당(한민당)을 언급했다. DJ 역시 호남 출신으로 한민당을 계승한 정당인 민주당 신파(新派)로 정치를 시작했다.

    민주당 신파 출신인 DJ의 정책을 한민당의 연속선상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자면, 북한 공산 세력에 대해 단호한 자세를 취했던 한민당의 노선을 계승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 그러나 명색 '정권교체'가 된 것인데, 그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행동을 중도·보수층 국민들의 마음에 꼭 맞게 처신하기를 기대할 수야 없는 노릇이다.

    동서 화합은 시대적 과제다. 보수정당인 새누리당은 건국 이후 처음으로 호남 출신 당대표를 선출해 호남과의 역사적 화해를 손짓하고 있다. 이 마당에 이정현 대표가 지난달 18일 추도식에서 표현했듯이 "호남의 위대한 정치 지도자"인 DJ 시절에 협치(協治)하지 못했던 점을 짚고 넘어가는 것은, 선뜻 내키지 않는 사람이 많겠지만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을 탄핵한 것을 사과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대통령 탄핵은 무슨 초(超)헌법적인 반역(叛逆)이나 내란(內亂)의 음모가 아니다. 엄연히 헌법 제65조에 명문화된 국회의 정당한 권능이다.

  • ▲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기 위해 결연한 표정으로 연단으로 향하고 있다. 이정현 대표는 이날 연설에서 김대중정부 시절 국정 비협조와 노무현정권 시절 대통령 탄핵에 대한 사과 의사를 밝혔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기 위해 결연한 표정으로 연단으로 향하고 있다. 이정현 대표는 이날 연설에서 김대중정부 시절 국정 비협조와 노무현정권 시절 대통령 탄핵에 대한 사과 의사를 밝혔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른바 '동북아 균형자론'과 한미연합사 해체로 한미동맹을 붕괴시키려 하고 국가보안법 철폐를 시도하며 사학(私學)을 사실상 몰수하는 조치를 통해 국유화하려 했다. 대통령 시기의 그 행적을 살피자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부정하고, 국가의 안보를 위태롭게 했으며, 우리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공공의 복리를 위협했다고 평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우리 헌법질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통치행위를 하는 이상, 국민이 뽑은 대의대표인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국회가 이러한 폭주에 제동을 걸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헌법적 의무다. 2004년의 탄핵 의거(義擧)는 이러한 신성한 헌법적 의무가 발현됐을 뿐이다.

    정치공학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새천년민주당이 공천한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됐는데도 그 자신의 친위 정당을 결성할 욕심으로 자신을 공천한 정당을 쪼개고 분열시켰다.

    그 결과 원내에 탄핵안 의결이 가능한 의석이 형성됐던 것이다. 야권에서 맹렬히 주장하는 '분권형 개헌론'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이런 시점에서 행정부에 대한 불신임안이 의결되면 나아가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구할 것도 없이 노무현 전 대통령은 권좌에서 축출됐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 역사에 불행했던 그의 잔여 임기 3년 6개월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대적 과제인 동서 화합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면, 노무현정권 5년 동안 호남에 대한 인사와 예산의 차별은 극심했다. 2002년 3월 16일, 광주는 전국 순회 방식으로 치러지던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3회차에서 영남 출신인 노무현 후보의 손을 들어줬지만, 이후 광주 그리고 호남에 돌아온 것은 철저한 배신이었으며 남은 것은 환멸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이정현 대표가 천명한 "새누리당과 호남과의 화해"와 "노무현 탄핵에 대한 사과"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명제다.

    새누리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사과한다는 것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하야시킨 밥 우드워드가 사과한다는 것이나, 히틀러의 폭주를 저지하려 했던 독일 기독민주당파나 사회민주당파가 사과한다는 것만큼이나 터무니 없고 황당한 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잉태한 괴물, 친노·친문패권세력은 지금도 끝없이 국론 분열을 획책하고 나라를 파국의 정쟁 속으로 몰아넣으며 국가 발전의 동력을 소진시키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나라에 끼친 폐해가 이토록 심각하다. 건국 70년을 향해가고 있는 우리 현대사에서 나라와 국민에 이토록 큰 해악을 끼친 인물은 그 짝을 찾기 힘들다.

    그렇기에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은 이날 KBS라디오에 출연해 "대한민국 정치에 있어서 가장 큰 지향점 중의 하나가 이른바 남북통일 이전에 동서화합 아니겠느냐"며 "지나간 부분에 대해서 새누리당이 혹시 잘못한 일이 있으면 깊이 반성하고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동서화합' 측면에서 김대중정부 시절 국정 비협조에 대한 사과를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새누리당 의원들도 온도 차이는 있었다"며 "어느 정도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어떻게 해석해야 되느냐에 대해서는 약간씩 온도 차이가 있었다"고 전했다. 역시 '동서화합'과 전혀 무관할 뿐 아니라 오히려 배치되기까지 하는 '노무현 탄핵 의거'에 대한 사과가 문제됐으리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의거는 언젠가 정당한 역사적 평가를 받을 일이다. 하등의 사과할 일이 아니다. 이정현 대표는 옥(玉)과 돌(石)을 동격에 놓은 뒤 뭉뚱그려 사과하는 과유불급의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