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의 ‘경제민주화’는 과연 무엇인가?
    무식한 궁민(窮民)의 하나 마나 넋두리

    이 덕 기 / 자유기고가
  •   브렉시트(Brexit), 미국의 대선 후보 트럼프, 필리핀의 대통령 두테르테...
    세간의 배우신 분들은 양극화와 그리고 분노의 산물(産物)이라고 지적한단다.
    그리고 이 나라도 곳곳에 지뢰(地雷)가 널려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그래서 그런지 ‘너의섬’ 쪽에서도 관심이 커지고 있나 보다. 
      20대 국개[國개] 개원과 함께, 이른바 ‘경제민주화’가 최고의 화두로 떠올랐다고 한다.
    심지어 모(某) 일간지에서는 “내년 대선, 양극화 해법 내놓은 주자가 웃는다”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할 정도인데... 

      ‘경제민주화’나 ‘양극화 해소’에 대해서는 이미
    엊그제 국개[國개] 3당 대표 연설에서 많은 언급이 있었다.
    그 연설들을 듣고·보면서 많은 궁민(窮民)들은
    역시 그 대표님들의 공부가 높고 많구나 하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사회적 대타협을 통한 임금 중향(中向) 평준화”[새무리]라든가,
    “의회의 거대 경제 세력 견제, 기본 소득 논의”[그당]를 거쳐
    “국회 차원의 격차 해소 로드맵 마련, ‘일자리 특위’ 구성”[쉰당]에 이르자,
    궁민(窮民)들은 일제히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이 나라에서는 먹고 사는 문제로 인한 불평등을 다시는 찾아 볼 수 없겠구나 하며
    희망에 벅찬 가슴을 억눌러야 했다. 더군다나, 그분들이 일제히
    “기득권 내려놓기” 어쩌구 하실 때는 감격의 눈물마저 흘릴 뻔했다. 
      그리고 이어서 다음 ‘북악(北岳)산장’ 주인 자리를 차지해 보겠다는
     ‘잡룡’[雜龍, 또는 土龍]들께서도 너나 할 것 없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외치고 계시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런데... 
  •   최근의 저명한 경제 또는 사회학 이론을 전혀 모르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궁민(窮民)들에게는 어쩐 일인지 이 분들의 말씀에서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왠지 사기(詐欺)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말이다.

      경제이론에는 거의 문외한(門外漢)인데다가 갖가지 경제통계·자료도 없고,
    있다 해도 까막눈이라서 이런 발상 밖에는 하지 못한다.
    거기다가 이 나라 현실이야 이성만 가지고는 해결이 잘 안되는 지경에 이르렀지 아니한가.

      ‘양극화, 양극화’ 하는데,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양쪽으로 쫙 갈렸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또한 그 기준이 뭔지도 개념이 안 선다.
    재산 ‘[많이] 가진 자와 못[덜] 가진 자’로 나누어진다는 의미인 듯한데,
    그 정도가 얼마 만큼인지도 애매하다. 
      “주말에 자가용을 갖고 고속도로를 메우는 궁민(窮民)”들과
    “그럴 형편이 못 되는 궁민(窮民)”으로 나누면 될 텐가?
    흔히들 말하는 ‘금·은수저’를 물고 나왔는지, ‘흙수저’를 물고 있는지
    입 주변을 조사해 봐야 하나? 
  •   더군다나 ‘경제민주화’나 ‘양극화 해소’... 도대체 어떻게, 어느 정도가 되어야
    그게 이루어졌다고 판단할 수 있는 지는 더더욱 모르겠다.
    고래(古來)로 속칭 가진 자나 그렇지 못한 자나 할 것 없이
     거의 모두가 “나는 가난하다!”고 주장하고
    그 편에 서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 아닌가?
      물론 이 나라에는 돈으로 유세(有勢), 이른바 ‘갑질’하는
    아주 못 돼 처먹은 군상(群像)들이 꽤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궁민(窮民)들이야 겉으로는 늘 ‘궁’(窮)하다.

      그러하니 특별히 하는 일이 없거나, 그 일마저도 시원찮으면서
    다달이 거금(巨金)을 챙기는 이 나라 국개[國개]들도 세비(歲費)가 적다고
    공개적으로 개[犬] 우는 소리하는 일이 벌어지는 거 아니겠는가.

      어쨌든 공부가 낮고 적은 궁민(窮民)들은 ‘경제민주화’나 ‘양극화 해소’를 백날 떠들고
    실천한다 한들, 정작 내 주머니 사정이 눈에 띄게 좋아지지 않는다는 걸 너무도 잘 안다. 
      또한 돈으로는 ‘[많이] 가진 자들’을 누를 수 없는 ‘경제적 약자(弱者)’ 내지
    ‘경제정의의 사도(使徒)’를 자처하는 국개[國개]들이
    ‘정치권력’으로라도 어찌해 보려는 의도인 걸 이미 눈치챈지 오래다. 
      때문에 그저 돈으로 유세(有勢)하는 넘들 꼴 보기가 너무도 싫어,
    고개를 끄덕이고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경제민주화’라는 건 결국 “가진 넘들 재산 쬐끔 뜯어서
    표(票)될 넘들에게 나눠주거나, 그런 시늉을 내보자”에 다름 아니지 않는가.
    ‘표(票)될 넘들’이 어떤 부류(部類)들인가는 상상에 맡긴다. 
      이와 반대로 “표(票) 안 될” 정말로 살림 팍팍한 궁민(窮民)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테고,
    많은 궁민(窮民)들의 세금(稅金)이 확 줄어드는 것도 물론 아닐 게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 점은...

      ‘경제민주화’와 ‘양극화 해소’에 게거품을 무는 분들, 특히
     ‘너의섬’에 계신 이 나라 국개[國개]들이나 ‘잡룡’들 대부분은
    한 눈에 척 봐도 ‘금·은수저’를 물고 나오셨다.
    대(代)를 이어 국개[國개] 하시는 분들을 비롯하여 일일이 거명 안 해도 알만 하다.
    평범한 궁민(窮民) 수준에서 보면 처먹고 살만 하거나, 가질 만큼 가진 분들이다. 
     

  • 하지만 이 나라 ‘경제민주화’와 ‘양극화 해소’를 위해
    정작 본인들의 재산을 얼마간이라도 내놓으라면, 무어라 할까?

  아니, ‘힘들게 마련’(?)한 재산을 생짜배기로 내놓으라고 하는 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 하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여,
대신에 이 나라 가구당 월(月) 평균 소득액만으로 서너 달 생활해 보신 후에
다시 ‘경제민주화’를 말씀하시라고 하면 어떨까?

[참고적으로 2016년 1/4분기 이 나라 가구당 월 평균 소득은 455만 5천 원이란다 : 통계청 발표]

  그것도 너무 야박하다면,
나랏돈[窮民 稅金]으로 굴러가는 승용차를 몇 주(週)만 세워놓고,
교통카드로 지하철과 버스를 맘껏 환승해 가며 지내보시라 해 보자.
 이렇게 오가다 보면 의외의 큰 소득을 얻을 가능성도 많은데...
  이 나라 궁민(窮民) 분노의 ‘제일’(第一) 대상이
본인들이라는 사실을 직접 확인한다면,
그 무엇보다도 가장 큰 소득 아니겠는가 말이다. 

  “약삭빠른 고양이 밤눈 어둡다[伶俐猫夜眼不見]” 옛말에 이르기를...  
<더   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