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개별 사건에 대한 '음모론' 나올 때마다 특별법 만들어야 하나
  • ▲ 국민의당 소속 38명의 국회의원 전원은 지난 1일 이른바 5·18 왜곡방지법을 공동발의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국민의당 소속 38명의 국회의원 전원은 지난 1일 이른바 5·18 왜곡방지법을 공동발의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5·18 민주화운동 특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률 개정안에는 국민의당 소속 의원 38명 전원이 참여하는 형태로 공동발의가 이뤄졌다고 한다.

    이 법률 개정안은 일명 5·18 왜곡방지법으로 불리고 있는데, 이는 개정안 제8조 때문이다. 개정안 제8조는 1항에서 신문·방송이나 출판물·정보통신망을 이용해 5·18을 비방·왜곡하거나 사실을 날조해서는 안 된다면서, 2항에서 이를 어긴 자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개정안이 왜 발의됐는지 그 취지는 일응 이해가 간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개정안의 제안 이유에서 "5·18을 폄훼하는 일부 사람들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5·18을 북한에서 남파한 특수군이 일으켰다는 주장으로 인해 현재 법적 쟁송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심지어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우리의 '서울대 총장'에 상당)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우리의 '국회의장'에 상당)을 지냈던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직접 1980년 광주에 남파됐다고 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식 밖의 주장이 우리 사회에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주장을 펼치는 인사들에 대해서는 현재 민·형사상의 법적 절차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사법부를 존중하며 판결의 추이를 지켜볼 일이다.

    다만 이러한 주장에 동의할 수 없음은 별론으로 하고, 이러한 '사회적 갈등'을 박지원 원내대표가 발의한 '5·18 왜곡방지법'이라는 형태로 다스려야 하는지는 의문이 있다.

    무분별한 음모론적 의혹 제기로 우리 사회에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비단 5·18 뿐만이 아니다. 북한의 공작에 의한 1987년 11월의 대한항공기 공중폭파 테러 만행에 대해 우리 사회 좌파 일각에서는 끊임없이 의혹을 제기하며 사회적 갈등을 양산해왔다.

    심지어 이 사건은 지난 2007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 당시 북한의 리근 미국국장이 "우리는 KAL기 폭파 사건 이후 한 번도 테러한 적이 없다"고 실언하면서 전모가 완전히 드러났는데도 그러하다.

    가까운 예로는 2010년 3월 북한의 연어급 잠수정에 의해 피격된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도 좌파 일각의 음모론은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응당 '천안함 왜곡방지법'을 만들어 이들 또한 엄정히 법으로 다스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대한항공기 참사 왜곡방지법' '천안함 피격 왜곡방지법' '세월호 잠수함 충돌설 왜곡방지법' '연천 제5땅굴 왜곡방지법' '530GP 사건 왜곡방지법' '노무현 타살설 왜곡방지법' 등 개별 사건들을 일일이 법령으로 만들어야 할 게 한둘이 아니다.

    설령 이렇게 해서 사회적 갈등이 없어지면 혹여 모르겠으되, 그럴 리도 없다. 전형적인 '입법만능주의'이고 행정력의 낭비다. 미국은 왜 '9·11 테러 왜곡방지법'을 만들지 않았는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 ▲ 범죄 수단이나 양태의 위험성·비난가능성이 아닌, 범죄 대상·객체의 특수성을 이유로 가중 처벌하는 것은 헌법상 평등 원칙에 반해 위헌 요소가 높다는 게 학계와 법조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1973년 존속살해죄에 대해 위헌 결정을 했다. 국민의당 의원들이 공동발의한 5·18 왜곡방지법도 헌법재판소에 갈 경우 위헌으로 결정날 가능성이 높다고 보여진다. ⓒ뉴시스 사진DB
    ▲ 범죄 수단이나 양태의 위험성·비난가능성이 아닌, 범죄 대상·객체의 특수성을 이유로 가중 처벌하는 것은 헌법상 평등 원칙에 반해 위헌 요소가 높다는 게 학계와 법조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1973년 존속살해죄에 대해 위헌 결정을 했다. 국민의당 의원들이 공동발의한 5·18 왜곡방지법도 헌법재판소에 갈 경우 위헌으로 결정날 가능성이 높다고 보여진다. ⓒ뉴시스 사진DB

    또, 5·18 왜곡방지법은 법리적으로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 개정안은 형법상 명예훼손죄에 대한 가중 처벌의 성격을 가진다. 그런데 일반법에 대한 특별법의 형태로 가중 처벌 조항을 만드는 경우, 범죄의 수단이나 양태의 위험성·비난 가능성이 높아 가중 처벌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대상이나 객체의 특수성을 이유로 가중 처벌하는 입법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명예훼손죄에는 일반 명예훼손죄(형법 제307조 1항)가 있고, 이에 대한 가중 처벌의 형태로서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죄(동조 2항)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형법 제309조)가 있다.

    일반 명예훼손죄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지만,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가중 처벌되고,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형이 무거워진다.

    이는 명예훼손을 할 때 출판물을 통하면 위험성이 높아지고, 허위사실에 의할 경우 비난가능성이 무겁기 때문이다. 이처럼 수단이나 양태의 위험성·비난가능성이 높을 때 가중 처벌을 하는 것이 형사법의 법리다.

    강도죄 또한 마찬가지다. 형법 제333조의 강도(3년 이상 유기징역)를 야간에 하거나, 흉기를 들거나, 2명 이상이 함께 하면 제334조의 특수강도가 돼서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게 된다. 해상의 선박 내에서 하는 경우에도 제340조의 해상강도가 돼서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으로 가중 처벌된다.

    이 또한 범죄의 수단('야음을 틈탄다' '흉기를 든다' '여럿이 함께 한다' '도망갈 곳 없는 바다 위의 배에서 한다')이 일반 강도에 비해 위험성이 지극히 높거나 비난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가중 처벌하는 것이다.

    반면 범죄의 대상이나 객체가 특수하다는 이유로 가중 처벌하는 입법례는 드물고, 헌법상 평등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에 위헌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 형법상 범죄 객체의 특수성을 이유로 가중 처벌하는 것은 존속살해죄(형법 제250조 2항)가 거의 유일한 사례다. 그나마도 "이미 살인죄에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돼 있기 때문에, 구체적 사건의 심리 과정에서 형량에 참작하면 될 요소를 뭣하러 별도 조항으로 규정했느냐"는 위헌론에 휩싸여 있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1973년 존속살해죄가 평등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위헌 결정을 했으며, 이에 따라 현재 일본에서는 존속살해죄가 폐지됐다. 우리나라에서도 1987년 개헌을 통해 헌법재판소가 출범한 이후로 존속살해죄에 대한 위헌 결정이 이뤄질 것이 확실시되자, 1995년 형법 개정으로 존속살해죄의 형량을 낮춰 '편법 유지'하고 있다.

    명예훼손죄 자체도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 논란이 거센데, 거기다가 5·18 만을 특수한 객체로 삼아 보호하고, 명예훼손죄의 특별법으로서 가중 처벌한다는 5·18 왜곡방지법은 더 나아가 살펴볼 것도 없이 위헌 요소가 너무나 강하다.

    박지원 원내대표가 명색 4선 의원인데, 20대 국회 개인 1호 법안으로 제출한다는 5·18 왜곡방지법이 위헌 요소로 덕지덕지 얼룩져 있다는 것은 참으로 한심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입법 전문기관으로서 국회의 존재 의의에조차 먹칠을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에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5·18에 대한 왜곡과 폄훼는 현행 법령으로도 다스릴 수 있다. 그 증거로 이미 그러한 주장을 펼치는 인사들에 대한 민·형사 소송이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 차분하게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면서, 국회는 헌재에 가면 위헌으로 결정날 일에 역량을 낭비하지 말고 민생을 돌보는 일에 집중해야 할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