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의 향산지도국은 어떤 곳인가?"

     김형수 / 엘리트출신 탈북민 객원기자 /뉴포커스
    김정일의 비자금을 국내에서 걷어 들이는 기관인 ‘향산지도국’은 1990년대 초에 잠깐 생겼다가 1995년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오늘은 김정일의 돈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충성의 외화벌이라는 구실로 달러를 벌어들이는데 앞장섰던 ‘향산지도국’에 대하여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향산지도국’은 중앙당 38호실 산하에 존재하던 외화벌이 기관입니다.
    여러분들은 38호실과 39호실에 대하여서는 많이 들어보았으리라고 봅니다.
    직장과 가두에 외화벌이 과제를 내주는 것이 김정은의 외화벌이 수법 전부가 아닙니다. 

    2011년 김정일이 죽으면서 46억 달러라는 비밀자금은 김정은한테로 넘어갔다고 알려졌습니다. 이러한 비밀자금 관리는 중앙당 재정경리부에 소속된 38호실과 39호실에서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김정은이 직접 장악하고 있습니다. 
  • '39호실'은 대성총국과 대흥총국을 운영합니다. 대성총국은 광석자원을, 대흥총국은 송이버섯이나 인삼 등 약초를 팔아서 그 자금을 마련합니다. 마약밀매와 위조지폐 제조 등 불법적인 방법으로 번 달러와 개성공단에서 벌어들인 돈도 민간단체로 가장한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를 거쳐 중앙당 39호실에 들어갑니다. 

    39호실이 해외 수출과 수입을 통해 김정은의 비밀자금을 장만하는 기관이라면 38호실은 북한의 내부에서 참빗으로 샅샅이 흩어내듯 외화를 걷어 들이는 기관입니다. 1980년대만 해도 북한주민들은 해외에서 달러를 들여와도 사용하기 어려웠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평양이나 원산, 청진 등 큰 도시들에 몇 개의 외화상점과 외화식당이 존재하였고 달러가 있어도 쓰기가 불편하였습니다. 달러를 ‘외화 바꿈표’와 환전해서 쓰도록 했는데 이런 ‘외화 바꿈표’를 사용하는 외화상점이나 외화식당에는 항상 보위 부 감시요원들이 상주하면서 뒷조사를 하였습니다. 

    1990년대 경제난으로 체제붕괴에 직면하자 북한은 해외에 많은 노동자들을 파견하였고 ‘외화 바꿈표’가 없어도 직접 달러를 받는 외화상점과 외화식당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일반인들은 이 시점에서 왜 이렇게 외화상점과 외화식당이 많이 생겨났는지 잘 모를 테지만 저는 중앙당38호실 산하 ‘향산지도국’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기에 그 내막을 잘 알고 있습니다. 

    1990년에 리비아와 쿠웨이트, 수리아, 러시아, 애급, 중국 등 해외에 파견한 노동자들이 많아지면서 그들이 귀국할 때 가지고 온 돈들이 국내에 많이 반입되었습니다. 미국이나 캐나다에 살고 있는 해외동포들이 북한의 친척을 방문하면서 가지고 입국한 달러를 포함하여 국내에 외화가 많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한 김정일의 지시로 국내에서 달러를 모으기 위한 기관인 중앙당 38호실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그 산하에 ‘향산지도국’과 ‘모란지도국’을 내오고 평양과 각 지방들에 외화상점과 외화식당을 내왔습니다. 

    여기에서 외국제 전자제품과 옷종류, 식료품들을 팔고 고급음식들도 식당에서 팔아 달러를 끌어들였습니다. 당시 지도국 내부에서 생활총화를 할 때면 “‘충성의 외화벌이전사’인 우리들의 역할을 다 하자”고 강조하곤 하였습니다. 

    비밀보장을 위하여 향산지도국은 중앙당 24국으로, 모란지도국은 9국으로 불리웠습니다. 외국에 수출하거나 수입할 때에는 향산무역총회사, 모란무역총회사로 불렀습니다. 향산지도국은 평양시 모란봉구역 전우동 9층짜리의 대형건물에 있었습니다. 

    당시 당비서는 김정일의 오른팔로 항일투사였던 서철의 아들 서동명이었습니다. 향산지도국은 평양시에만 9개의 외화상점과 5개의 외화식당. 릉라빵공장. 합성가죽가공품공장 등을 포함해 각 지방에도 외화식당과 상점을 운영하였습니다. 

    외화상점과 외화식당 직원은 평양시뿐만 아니라 지방의 여성들에게서 최고의 좋은 일자리였습니다. 저는 향산지도국 수출원천처 분석 실에 취직하였습니다. 취직조건으로 ‘오사리 바삭과자’를 만드는 기계를 직접 만들라는 지시가 저에게 내려졌습니다. 

    그때 외화상점들에서 ‘평양밀가루가공공장’에서 만든 ‘오사리 바삭과자’를 가져다 팔았는데 수익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오사리 바삭과자’는 계란과 빠다(버터), 밀가루, 사탕가루(설탕)에 콩기름을 넣어 반죽하고 여기에 참깨를 뿌려서 전기로에서 구워내는 카스테라 종류인데 값도 싸고 인기 있는 어린이용 간식이었습니다. 

    저는 인민대학습당 특허자료실에서 일본 회사가 만든 기계설계를 복사해 ‘오사리 바삭과자’ 기계를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용된 부품은 모두 스뎅(스테인)이어야 하기에 평양시 형제산구역에 있는 군부대 상사에서 달러를 주고 불법으로 뽑아서 동 평양기계공장에서 만들었습니다. 

    구이로에 쓰인 자동온도조절기와 수감장치, 고온투명감시유리는 외국에 출장을 다녀오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구입했습니다. 5년동안 모아두었던 돈을 다 써가면서 기계를 제작해 첫 시제품이 생산되어서야 정식 채용이 결정되었습니다. 

    제가 일하던 향산지도국 수출원천처에는 직원이 24명이었는데 모두 중앙당 간부자녀이거나 큰 간부들의 친척뻘이 되는 사람들이다 보니 저처럼 힘들게 회사에 취직하지는 않았습니다. 평양에서 좋은 직업을 얻자면 돈이 많거나 백이 있어야 하는데 지방태생인 저에게는 모든 것이 힘겨운 사투였습니다. 

    그토록 어렵게 취직한 향산지도국에 1995년 여름 대동강구역에 살던 간부 과 부 과장 사건이 터졌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외화상점 판매원 채용은 간부 과에서 보는데 이 업무를 담당한 부부장이 여러 명의 여성들과 관계를 가졌습니다. 

    채용을 위해 몸까지 바친 여성들은 퇴직을 모면하려고 관계를 계속 유지하려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 서로가 서로를 질투하면서 배신당한 여성이 있었습니다. 배신당한 여성이 보안성에 신고하여 담당보안 원이 부부장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하지만 향산지도국 간부라는 특권을 악용해 부부장은 담당보안 원을 문전박대 하였고 외화를 휘둘러 그를 직무에서 해임까지 시켰습니다. 억울한 보안 원은 무직상태에서 끈질긴 미행과 자료 수집을 해 중앙당에 그의 자료를 직보(직접보고)하였습니다. 

    직보 내용은 부부장이 장군님의 당 자금을 빼돌려 집에 냉장고 2대와 천연색 텔레비젼(TV) 3대를 은닉하고 자녀들이 외화상점에서 쓰는 돈만 한 달에 어림잡아 500달러 이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김정일의 지시로 그의 집을 가택 수색하였는데 2만여 달러의 외화가 나왔고 일본에서 직수입한 쌀도 발견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집안에는 모든 제품들이 외국에서 비싼 가격으로 들여온 것들이었으며 색정(포르노)비디오테이프도 무더기로 발견되었습니다. 여기에 화가 난 김정일은 향산지도국을 중앙당이 직접 검열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1990년대 중반에 극심한 경제난과 식량부족으로 수많은 북한주민들이 굶어 죽었지만 간부들은 그런 틈을 노려 불법적으로 횡령과 사취를 일삼았습니다. 당시 향산지도국의 간부들은 남포항에서 들여오는 밀가루와 청수냉면, 설탕 등 식 자재들을 도매가격으로 빼내어 장사꾼들에게 소매로 팔아 이익을 챙겼습니다. 

    중앙당 검열에서 적발된 향산지도국 간부들의 뇌물행위는 말 그대로 돈을 위한 야수들의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였습니다. 격노한 김정일은 “향산지도국이라는 말만 들어도 치가 떨린다”고 소리 지르며 당장 해산해 버리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자기주머니에 들어와야 할 비밀자금이 물 새듯 빠져 나간 데 대한 주체할 수 없는 분노였습니다. 결국 21명의 간부들이 공개처형 되었고 북한이라는 봉건왕조군사독재를 황금으로 떠받들던 향산지도국은 피자국만 남기고 사라져버렸습니다. 김정일의 지시로 ‘향산지도국’ 대신 ‘선봉지도국’이 새로 들어앉았습니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선봉지도국은 김정일의 뒷주머니를 채워주던 충성의 외화벌이 기능을 그대로 넘겨받았습니다. 오늘날 ‘선봉지도국’은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바뀐 주인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외화벌이에 여념이 없습니다. 

    해외에서 가족을 떠나 힘들게 일하며 노동자들이 벌어들인 돈의 80% 이상을 뜯어내고 그나마 남은 돈마저 국내 외화상점과 외화식당을 통해 부가세를 붙여 다 빼먹는 것이 김일성에서 김정은으로 이어진 북한 정권의 실상입니다. 

    김정은의 선물정치, 선심성 ‘인덕정치’는 이렇게 인민의 피눈물을 짜낸 대가입니다. 이런 정권이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은 최근 중동에서 비참한 종말을 고한 독재자들을 통해서도 이미 충분히 증명되었습니다.    
    [뉴포커스=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