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주의에 영혼 바친 자를 위한 변명
    질 나쁜 배운 자? 고뇌하는 불쌍한 위선자?

    이 덕 기 / 자유기고가 

      그가 가막소에 들어갈 그 즈음,
    그에게 북녘은 남녘보다 훨씬 잘 사는 지상천국(?)이었다.
    그것이 가막소에서도 신념과 사상을 버리지 않은 이유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20년 20일 간의 가막소 생활을 마치고 나왔을 때,
    아마도 깜짝 놀랐을 것이다.
    변한 세상과 남북 인민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듣고 보고서 말이다.

    “이밥에 고깃국을 먹고, 기와집에서 살게 해주겠다”는
    북녘 ‘백도혈통(百盜血統)’의 타령이 새빨간 거짓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는 철학적 소양까지 갖춘 똑똑한 경제학자였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녘의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던,
    아니 인정해서는 안 되는 처지가 얼마나 힘 들었을까?
    더욱이 북녘 인민 2백만 명 이상이 생짜배기로 굶어죽었다는 소식도 사실로 밝혀졌다. 

      아마도 그 고뇌(?)의 일단이 이런 ‘말씀’으로 나타났을 거라고 한다면,
    너무 무식하고 과한 지적일까?
      “새로운 인간주의는 자연으로부터 독립하는 것도 아니며, 궁핍으로부터 독립하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인간이 만들어 쌓아놓은 자본으로부터, 그리고 무한한 허영의 욕망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 가난해도 굶어죽어도 행복의 길은 있다는 거다.
    “처음처럼”, 그렇게 “더불어”만 산다면... 
  그가 가막소에서 나온 이후 37년여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가 가졌던 신념과 사상을 버리거나 바꿨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
필자가 과문한 탓이길 바랄 뿐이다. 그런데... 

  “우리 시대의 참 스승”, “온 몸으로 감당한 시대의 고통을 사색과 진리로 승화시킨
시대의 지성인” 등등... 쏟아지는 찬사와 추모의 언어가 엄청나게 화려하다. 
  하지만 ‘스승’과 ‘지성인’이 공허하고 무색해 보일 뿐이다.
젊은 시절 전체주의에 영혼을 바쳤고, 그 이후 전체주의, 더구나 세습까지 하는
독재의 실상을 보고·알고도 깨닫지 못했다면 헛 똑똑이 밖에는 안 된다.
모른 체했다면 위선자이거나 아주 질 나쁜 ‘배워 처먹은 자’에 다름 아니다. 

  다른 한편에서 보면, 너무 불쌍하다.
뻔한 북녘의 현실을 애써 외면하면서, 양심을 속여가면서 까지
 ‘지조 있는, 변절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야 하는 괴로움이야말로 밤잠을 설치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전체주의와 세습독재의 패악을 꾸짖는 양심과 진실의 목소리를 냈다면,
이 땅의 이른바 친북·좌익, 그리고 대북(對北) 굴종·추종의 ‘진보(眞保, 진짜 보수?)’ 기득권자들은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그들의 손가락질이 실로 겁도 났을 만하다. 
  그가 했다는 언필칭 “깊은 사색, 치열한 성찰”은 그 위선을 가리고,
그 괴로움을 자기 합리화로 떨쳐내기 위한 몸부림은 아니었을까?
  •   그가 갔다. “고인의 정신을 계승할 것”이라고 떠들어 대는
    제자·후배·추종자뻘 되는 이들과 정치집단이 있다.
    그의 정신이 과연 무엇인가?
    “우리가 나갈 방향을 밝힌 매우 존귀한 정신이라고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면
    그저 아찔할 뿐이다. 그러나... 

      그는 이 땅에 가족을 남겼다. 그래서 ‘지조’와 ‘변절’을 떠나,
    그도 최소한 가족이 때 끼니 걱정을 하면서도 이 추운 겨울날 ‘지도자의 말씀’을 관철하기 위해 ‘거름 전투’에 나가는 것을 행복으로 알고 살아가기를 저승에서는 바라지 않을 것이다.
    설사 자신이 이승에서야 그런 세상을 동경했다 할지언정...

      날씨가 춥다. 그렇더라도 오늘은 전체주의에 영혼을 바치고 괴로워했을(?) 헛 똑똑이와
    그의 ‘정신 계승’을 외치는 얼간이들을 위해 잔을 들어야겠다.
    축배라면 축배고, 명복주(冥福酒)라면 명복주다.
    이전에는 마시지 않았던 “처음처럼”으로 특별하게...
    <더   끼>
  • # 1964년 검거된 ‘인민혁명당(인혁당)’과 1968년의 ‘통일혁명당(통혁당)’에 대해
    여러 말들이 많다. 그 중에서 한 가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1990년 남파(南派)되었던 북녘의 대남공작조는 다음과 같은 임무를 부여받았다고 한다.
      = 민주화 운동을 하고 있는 ‘도예종(인혁당 총책)의 아들’ 도OO을 만나 “부친의 대를 이어 대남혁명을 열심히 하라”는 격려와 함께, 공작금을 전달하라! 그리고 통혁당 서울시위원장이었던
    김종태의 부인과 가족들을 찾아 인사를 전하고, 공작금을 전달하라! = 
      그 공작조에 속했던 공작원에 의하면, 그 임무는 수행하지 못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