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Reflection Mapping -Cube TV Table_Wall Paper OLED TV&Gold-plated injection model on tempered glass_181.7x89.3x5cm_2015 ⓒ 채은미
    ▲ Reflection Mapping -Cube TV Table_Wall Paper OLED TV&Gold-plated injection model on tempered glass_181.7x89.3x5cm_2015 ⓒ 채은미

    채은미 작가의 개인전 'Reflection - Mapping' 이 오는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진화랑에서 열린다.

    17번째 개인전 'Reflection - Mapping' 에서 채 작가는 금과 자개 등 전통적인 소재로 빛을 담아 굴절시키는 독창적인 기법과 금빛 입방체(cube)를 반복해 배치함으로써 특유의 조형성을 보여준다. 

    전시 대표작인 'Cube TV Table'은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LG전자의 월페이퍼 TV를 활용해 첨단 기술과 예술의 융합을 시도했다. 물, 빛, 바람, 불, 구름, 나비, 꽃의 영상 위로 금빛 입방체가 수놓아진 형상과 음악에 맞춰 춤추는 '라벨의 물의 요정'이 눈여겨 볼 만하다. 

    이번 전시에는 대표작 'Cube TV Table' 이외에도 영상 작품 6점, 자개에 색을 입힌 항아리 작품 40점, 각도의 변화 시리즈 5점, 총 52개의 작품이 전시된다. 

  • ▲ Reflection Mapping-water, light, fire, cloud, wind_Wall Paper OLED TV,Glass on injection model_134.2×86cm_2015 ⓒ 채은미
    ▲ Reflection Mapping-water, light, fire, cloud, wind_Wall Paper OLED TV,Glass on injection model_134.2×86cm_2015 ⓒ 채은미



    다음은 백남준 아트센터 서진석 관장의 전시서문이다. 


    백남준 아트센터 관장 서진석Jinsuk Suh Director, Nam June Paik Art Center 


    1. 3차원 입방체의 4차원적 확장 

    X와 Y좌표, 즉 좌우 상하로 구성되어 있는 3차원의 공간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이다. 여기에 우리가 인지할 수 없는 시간이란 좌표가 개입되는 순간, 3차원의 공간은 4차원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고전 역학 즉 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평행의 두 선은 영원히 교차될 수 없다. 하지만 양자역학으로 넘어가면 유클리드 기하학은 무의미해지고, 그 두 선은 시공간의 얽힘과 확장으로 인해 서로 만날 수 있게 된다. 

    영화 큐브 Cube (1997, 빈센트 나탈리)에서 등장인물들은 만여 개의 3차원 입방체에 갇혀 있다. 이들은 이 작은 폐쇄공간들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3차원적 인지 세계 안에서는 그 방향을 찾을 수가 없다. 무수히 많은 3차원의 방들을 옮겨 다니면서 탈출구를 찾아 헤매지만 결국은 4차원의 초입방체(Corpus Hypercubus)를 인지하는 순간, 의외로 자신들의 출발점이었던 첫 번째 방에 그 문이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현실의 한계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우리들의 수많은 물리적 노력들과는 정반대로, 우리의 사고와 인식이 전환되는 의외의 한 순간에 탈출구가 이미 열려져 있는 것이다. 

    채은미 작가는 화려한 금색의 3차원 입방체를 끊임없이 나열시키며 작업을 한다. 거시적 시점에서 무수히 많은 이 큐브들은 하나의 픽셀로 작용하며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구상적 형상을 이루지만, 가까이 갈수록 미시적 시점에서의 픽셀들은 금색의 거대 큐브들로 확대된다. 이 큐브들의 표면은 빛을 반사할 수 있는 한편, 이 반사경들은 서로 서로를 끊임없이 투영하고 반사시키기를 반복한다. 큐브 안에도 큐브가 있고 큐브 밖에도 큐브가 존재하는 것 같은 효과를 통해서 상하 좌우의 좌표에 빛과 시간이라는 새 좌표를 부여하는 동시에, 3차원 입방체를 4차원 초입방체로 재구성해 버린다. 유한의 3차원의 형상이 무한의 4차원으로 확장되는 그 효과는 순간적으로 인식의 한계를 탈출하는 놀라운 경험을 가능케 한다. 

    채은미는 “자기 스스로를 사회에서 고립시킬 만큼 근간의 삶에서 매우 힘든 시기를 겪었다”고 고백한다. 누구나 삶에서 한 번쯤은 한계상황을 겪는다. 이렇게 자존감을 상실하며 자아가 위협받는 위기의 상황마다 인간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정신기제를 작동시킨다. 이를 자기방어, 즉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라고 부른다. 방어기제의 최초 연구자인 프로이트는 “자기방어는 갈등을 일으키는 충동들 간의 타협, 혹은 좌절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내적 갈등과 불안을 감소시키는 정신적 조작”이라고 했다. 그런 방어기제를 발달시키는 여러 가지 동기로는 감정의 억압, 문제의 자기 합리화, 상황의 부인, 자아의 퇴행 등등 다양한 요인들이 존재한다. 채은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승화’라는 방법을 선택한다. 즉 삶의 고통이나 스트레스 등을 자신의 예술 작업으로 표출, 치환함으로써 삶의 고통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한다는 것이다. 

    작가가 작업에서 표현하고자하는 4차원의 초입방체는 이러한 3차원 세계의 삶에서 탈출하고 싶은 작가의 갈망처럼 보인다. 거시적 상황 즉 사회적 관점 안에서의 존재 상실이라는 경험보다 미시 세계인 자신 내부의 심상 안의 무수히 많은 주체적 반사경들을 통해 무한의 빛과 시간을 만들어냄으로써 자신 안에 내재하고 있는 갈망을 해소한다는 것이다. 이는 보다 쉽게 스스로를 위안할 수 있는 그녀만의 독창적인 방법론이다. 


    2. 현실과 이상 사이의 균형 

    채은미는 무수히 많은 작은 금색 큐브들의 사각 꼭짓점을 서로 연결하고 이들을 바둑판 모양으로 배열해가며 작품을 제작한다. 이렇게 연결된 입방체들은 서로서로를 투영하며 확산되어진다. 그러나 무수히 많은 이 큐브들은 기하학적인 반복성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실제로 작가는 매우 정교한 규칙성을 가지고 이 큐브들을 배열하고 부착하고 있기 때문에, 그 틀에서 몇 밀리미터만 벗어나도 이 작업의 전체적인 형태는 허물어져버리고 만다. 틀 안에서 나열되는 수많은 금색 입방체들은 정확한 규칙을 가지고 반복되면서 끊임없이 펼쳐지고, 이 규칙적 확산은 그녀의 작업에서 꼭 지켜져야만 하는 규범이다. 집착적으로도 보이는 이 정교한 규범적 행위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고통의 삶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갈망과 함께 상대적으로 그 삶의 끈을 놓지 못하는 작가 자신의 무의식적인 내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녀의 큐브들은 지속적으로 변화하며 빛을 발현하는 TV모니터 위에 설치된다. 큐브들은 빛을 투영하지만 모니터는 빛을 발산한다. 이 작은 큐브들이 그녀가 거쳐 온 삶 하나하나의 궤적들로 서로를 투영해가며 얽혀진 실체라고 한다면, 모니터의 빛은 이상의 세계이다. 큐브들은 소소한 지난 삶들의 이야기들로, 비록 카르마(karma)의 정형화된 규율 안에서 탈출할 수는 없지만 작가 내면의 심상에 흡수되는 과거와 미래의 빛들은 무한하게 담겨져 있다. 작가는 작업을 통해서 삶의 안과 밖의 두 균형의 아슬아슬한 선상에 스스로를 위치해 놓음으로써 규율과 자유를 넘나들며 균형 있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인간이 세상의 지식과 지혜의 상을 넘어 그것을 분별하고 판단하는 단계를 거쳐서 이 모든 것들을 균형 있게 볼 수 있는 궁극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우리는 이를 ‘성인(master)’이라 고 부른다. 마스터의 위치에 다다르게 되면 속세의 번민에서 벗어나서 진정한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채은미는 그녀의 작업을 통해서 물리적으로는 시간과 빛을 인지할 수 있는 4차원의 초입방체를 표현하는 한편, 정신적으로는 일정한 규칙성 안에서 제업즉수행(諸業卽修行) 즉 노동의 반복적 수행을 통해 인식의 한계를 벗어나려고 한다. 동시에 그 둘 사이의 균형을 찾음으로서 마스터의 위치를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독창적인 시도를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공간과 시간(빛), 필연과 우연, 외면과 내면의 사이를 균형 있게 조정하는 동시에, 우리 앞에 펼쳐진 지난한 현실의 삶의 굴레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