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한국영화에 여배우가 주인공으로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가 드문 걸까? 최근 1000만관객 신화를 달성한 ‘암살’에서 전지현이 “욕심낼 만한 캐릭터였다. 여배우의 활약이 두드러진 작품이 거의 없던 가운데, ‘암살’은 여자 주인공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래서 더 잘하고 싶었다.”고 말했지만 남자주인공인 하정우, 이정재, 오달수등의 배역에 비하면 턱없이 비중이 적다.

    한참 1000만 관객을 향해 박차를 가하고 있는 ‘베테랑’역시 장윤주의 임팩트있는 연기가 돋보였지만 황정민, 유아인에 비하면 역할은 미비하다.

    이번 추석에 개봉하는 한국영화 세편 역시 예외가 아니다.  

  • ‘탐정 더 비기닝스’에서는 권상우,성동열을 투톱으로 내세웠고 ‘서부전선’에서는 설경구 여진구를 주연으로 내세웠다. 그런 가운데 ‘사도’에서 송강호,유아인 외에 문근영이 주연급으로 출연해 여배우 기근현상을 그나마 달래주고 있다.  

    이런 남배우 중심의 영화가 범람하는 현상에 대해 한 영화관계자는 “ ‘여배우 기근’은 충무로에선 고착화된 현상이다. 여배우 주연의 작품이 거의 없는 것은 그만큼 여성관객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시나리오가 있다고 해도 캐릭터를 소화할 배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올해 대표적인 흥행작(300만 관객 이상)은 ‘국제시장’, ‘연평해전’,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 ‘스물’ 등 역시 여배우의 비중이 그러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영화계는 아예 여배우를 중심으로 하는 시나리오를 검토하거나 고려하지도 않는 분위기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여배우가 없는 것이 아니라 여배우를 전면에 내세운 시나리오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이 이면에는 여배우를 메인 주인공으로 한 경우 대부분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 것이 첫 번째 이유다. 이미지를 중요시하는 여배우들의 특성 탓에 다양한 캐릭터의 소화가 어렵다는 것 역시 두 번째 이유다.

  • 그런데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우리 영화계에 여배우가 미치는 영향력이 적지 않다. 지난해 866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의 경우, 배우 손예진의 첫 액션 연기 도전으로 주목받았다. 865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수상한 그녀’ 역시 심은경이 ‘원맨쇼’를 펼치며 흥행을 견인했다.

    속내를 더 들여다보면 여배우 기근 현상이란 말이 맞는말인가 싶기도 하다. ‘무뢰한’, ‘협녀, 칼의 기억’으로 영향력을 입증한 전도연, ‘미쓰 와이프’를 통해 진폭 큰 연기를 보여준 엄정화, ‘뷰티 인사이드’로 멜로 아이콘을 새롭게 입증한 한효주, ‘한공주’ 이후 ‘손님’, ‘뷰티 인사이드’로 임팩트를 남긴 천우희, ‘인간중독’에 이어 드라마 ‘상류사회’까지 열연한 임지연이 건재하다.  

    또 ‘은교’, ‘협녀, 칼의 기억’의 김고은, ‘늑대소년’,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의 박보영, ‘7번방의 선물’ ‘상의원’으로 족적을 남긴 박신혜, ‘건축학개론’으로 정상의 자리에 오른 수지까지 당장 주연급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여배우들이 즐비하다.  

  • 그러나 그럼에도 여전히 여배우 기근현상은 남아있다. 유아인이 베테랑에 이어 사도로 뒤를 이을 적에 이번 추석 동시 개봉하는 영화에 세편 중 단 한편만이 주인공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도' 또한 송강호나 유아인의 비해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다.  

    앞으로도 당분간 이런 여배우 기근 현상은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전쟁,액션 코드가 계속 승승장구하고 있는 지금의 영화 트렌드를 볼 때는 여배우가 주인공으로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남배우 속 여배우로 출연하거나 혹은 멀티 캐스팅으로 여배우의 비중이 더 떠오를 전망이다.  

    한편 이런 영화코드 트렌드에도 불구하고 ‘안젤리나 졸리’같은 색다른 여전사의 탄생도 기대해본다. 멜로 영화가 아닌 곳에서 여배우를 만날 수 있는 시나리오, 그것을 흔쾌히 선택하는 제작사, 투자사가 있어야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