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 추진단’의 수상한 행보
  • ▲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 있는 국세청 남대문별관의 공사 가림막 전경.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 있는 국세청 남대문별관의 공사 가림막 전경.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4월26일 교사 이O호는 대학생 강경대가 경찰 쇠파이프에 맞아 숨졌다는 소식을 듣고 수배 은신처에서 나와 녹음 짙은 연세대로 향했다. 1991년.

    4월1일 철원에서 경계병으로 근무하던 육군일병 김O윤은 서울올림픽 요원으로 차출되자마자 짐을 싸서 서울로 실려 갔다. 1988년.

    9월22일 대학생 김O조는 서울아시안게임 탁구시합(서울대 체육관) 때문에 휴교조치를 내려 폐쇄된 교문 앞에서 도서관에 들여보내 줄 것을 요청하다 전경버스로 연행됐다. 1986년.

    1. 구로공단 노동자 연대투쟁
    2. 을지로 미국문화원 점거 농성 규탄. 1985년.

    6월2일 아일랜드 유학생 양O승은 미국 대통령 레이건 명예박사학위 수여에 반대하는 인구 4만명 골웨이 시민들의 긴 행렬을 봤다. 1984년.

    가발공장 노동자 최O영은 설날, 추석날, 3.1절, 광복절 정도를 빼고는 대부분 휴일 없이 일을 했다. 1973년.

    11월 13일 청계피복 노동자 전태일이 분신했다는 소식을 어머니 이소선은 오후 두시 라디오뉴스로 들었다. 1970년.

    10월3일 개천절날 베트남전에 파병된 백마부대원 안O호는 매복작전 성과를 장기복무하는 분대장에게 양보한 뒤 돌아와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다. 1966년.

    경향신문 창간호(1946.10.6.). 1959년.

    1985년 4월 3일 고등학생 고O민은 집안에 들이닥쳐 행패를 부리는 친척을 보았다. 그날에야 아버지가 4.3사건 당시 경찰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1948년.

    연탄공장에 다니던 황O용은 10월1일 저녁 대구시청 근처에 나갔다가 총에 맞아 쓰러진 뒤 일어나지 못했다. 1946년.

  • ▲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 있는 국세청 남대문별관의 공사 가림막에 인쇄된 문구. ‘광복 7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 추진단’이 제작한 이들 문구에 대해, ‘광복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욕보이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졌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 있는 국세청 남대문별관의 공사 가림막에 인쇄된 문구. ‘광복 7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 추진단’이 제작한 이들 문구에 대해, ‘광복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욕보이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졌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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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위 문구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이적단체인 한국진보연대, 혹은 범민련 남측본부가 만든 문구가 아니다. 전교조나 민주노총도 이들 문구를 만들지 않았다.

    흡사 반국가단체의 선전 선동 문구를 연상시키는 이 글귀들을 만든 곳은 다름 아닌 서울시다.

    위 문구들을 만들어낸 곳은 ‘광복 7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 추진단’. 서울시가 국가의 광복 70주년을 기념한다면서 구성한 공적 단체다.

    글귀를 만든 곳이 공적단체인 만큼, 현재 이들 글귀가 걸린 곳도 공공기관이다. 좌파단체의 반국가시위에서나 등장할 법한 이 글귀들이 걸려 있는 곳은 국세청 남대문별관이다.

    본격적인 건물 철거를 앞두고 설치된 공사 가림막에 바로 이 문구들이 인쇄돼 있다.

    이들 문구에는 국가에 대한 반감을 넘어 적대감이 스며들어 있다. 1991년을 기념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은 시위에 나섰던 대학생이 경찰의 진압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일이고, 40대 이상 세대들에게 뚜렷하게 각인돼 있는 서울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역시, 국민의 인권을 침해한 사건에 불과하다.

    1985년 가장 큰 사건은 노동자들의 투쟁과 미국문화원 점거 농성이고, 1984년을 기념하는 사건으로는 엉뚱하게도 미국 레이건 대통령 명예박사학위 수여를 반대한 아일랜드 시민들의 시위가 ‘선정’됐다.

    산업화의 기적은 노동자에 대한 착취 속에 이뤄졌고(1970년, 1973년 기념 문구), 월남전은 참전 군인들에게 고엽제 후유증을 남긴 추악한 전쟁에 불과하다(1966년 문구).

    1959년을 기념하는 사건에 느닷없이 경향신문 창간호 사진이 등장한 것도 당혹스럽지만, 대한민국이 건국한 1948년을 기념하는 문구는 당혹스러움을 넘어 이질감마저 느끼게 한다.

    “1985년 4월 3일 고등학생 고O민은 집안에 들이닥쳐 행패를 부리는 친적을 보았다. 그날에야 아버지가 4.3사건 당시 경찰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1948년.”


    1948년은 대한민국이란 신생 독립국이 국가로서 역사를 시작한 첫해다. 그러나 ‘광복 7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단’은 1948년을 기념하는 사건으로 대한민국의 건국이 아닌, 제주 4.3사건을 꼽았다.

    대한민국 건국을 막기 위해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이 북한 정권의 지령을 받아 저지른 공산 폭동이, 대한민국의 건국을 제치고 1948년을 기념하는 사건으로 선정된 것이다.

    이쯤 되면 1946년을 기념하는 사건으로 ‘대구 10.1 폭동’이 선정된 것은 이상할 것도 없다.

  • ▲ ▲ 이만열 숙명여대 교수. ⓒ 사진 연합뉴스
    ▲ ▲ 이만열 숙명여대 교수. ⓒ 사진 연합뉴스

    서울시는 광복70주년을 맞아 ‘나의 광복 1945-2015’라는 주제로 기념사업추진위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이번 기념사업에 대해 “역사의 주체인 ‘개인’의 발견에 초점을 맞췄다”며, “어제의 ‘낡은’ 광복이 아닌, 오늘의 ‘젊은’ 광복, 관행적인 광복이 아닌 문화창조적 광복으로 기본취지를 정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의 설명은, 광복 70주년을 개인의 역사로 치환한 문재의 문구들이 탄생한 배경을 짐작케 한다.

    문제는 개인의 역사로 치환한 ‘나의 광복 70주년’이 철저하게 반국가적 관점에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시가 만든 ‘광복 70주년 기념 문구’는 공통적으로 어둡고 부정적인 이미지로 가득하다. 이들 문구에서 광복 70주년에 대한 축하의 의미를 찾기란 어렵다.

    서울시가 말한 ‘젊은 광복’, ‘문화창조적 광복’의 느낌은 더더욱 찾을 수 없다.

    이들 문구가 설명하는 ‘광복 70주년’은 가진 자가 없는 자를 착취한 역사이며, 계급투쟁의 역사이고, 국가가 국민을 억압하고 인권을 침해한 폭정의 역사일 뿐이다.

    ‘한강의 기적’과 같은 상투적인 찬사가 아니더라도,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산림녹화에 성공한 나라”,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성장한 유일한 나라”와 같은, 국제사회가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부러워하는 현대사가 얼마든지 있는데도 불구하고, ‘서울시 기념사업 추진단’은 이런 긍정적 역사를 철저하게 외면했다.

    반대한민국-친북-반미적 시각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광복 70주년 기념 문구’를 보면서, 대한민국의 건국을 비롯한 한국현대사에 대해 자긍심을 갖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나의 광복 1945-2015’ 프로젝트의 본래 목적에 의문을 갖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서울시가 ‘광복 70주년’을, 반대한민국적 사고를 국민들에게 각인시키는 선정 선동의 도구로 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광복 7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 시민위원회 위원장은 이만열 숙명여대 교수다.

    이만열 교수는 과거 ‘종북세력은 없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대표적인 좌파 역사학자다. 이만열 교수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동영상 백년전쟁에도 출연한 이력을 갖고 있다.

  • ▲ 민족문제연구소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공개한 동영상 백년전쟁. 역사적 사실 왜곡과 악의적 편집으로 심각한 물의를 빚었다. ⓒ 뉴데일리DB
    ▲ 민족문제연구소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공개한 동영상 백년전쟁. 역사적 사실 왜곡과 악의적 편집으로 심각한 물의를 빚었다. ⓒ 뉴데일리DB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공개된 ‘백년전쟁’은 건국대통령인 이승만 박사와 박정희 대통령을 악의적으로 매도해, 시민사회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만열 교수는 2013년 11월 양화진문화관에서 열린 ‘초기 기독교 외국인 선교사들의 활동역사 강의’에서, “대한민국은 이승만이 건국한 것이 아니고 임시정부를 계승한 것이다. 종북세력은 없는 것인데 매도하고 있다”고 발언하는 등, 노골적으로 반대한민국적 사고를 드러냈다.

    이만열 교수는 NLL을 부정하는 글을 잡지에 게재하는 등 친북적 성향도 나타내고 있다.

    “(중략) ‘NLL 논란’만 해도 그렇습니다. 새누리당은 이를 국경선이라고 주장하면서 철통같이 지켜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지만, 그들도 NLL이 국제법적으로도 영해를 규정하는 경계선은 아니라는 국제법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를 모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중략) 차제에 대화록을 공개해서 진실을 밝힘으로써 허위 비방과 선동을 한 당사자를 처벌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 ‘복음과 상황’ 2013년 2월호 커버스토리

  • ▲ ▲ 5월 6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열린 광복 70주년 기념사업 계획 설명회에서 서해성 예술감독(사진 왼쪽)이 주요 행사를 발표하고 있다. ⓒ 사진 연합뉴스
    ▲ ▲ 5월 6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열린 광복 70주년 기념사업 계획 설명회에서 서해성 예술감독(사진 왼쪽)이 주요 행사를 발표하고 있다. ⓒ 사진 연합뉴스

    광복 70주년 기념사업 서울시 예술감독인 서해성 성공회대 외래교수의 역사관도 눈길을 끈다.

    그는 지난 5월 8일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도둑과 장물아비들이 해방, 광복, 독립을 독점해버렸다. 분단체제로 귀착하고 만 독립은 광복을 암전시키더니 마침내 처형해버렸다”며, 한국 현대사에 대한 좌파 특유의 비뚤어진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서해성 교수의 다음 설명은, 서울시가 만든 ‘광복 70주년 가림막’이 음울하고 부정적인 수사(修辭)로 가득한 이유를 설명해 준다.

    “지난 70년 동안 개인은 신문과 라디오, 티브이로 광복절 행사를 지켜보는 구경꾼일 뿐이었다. 주권자는 냉전 권력의 교육대상이거나 행사에 동원되는 나부랭이들에 지나지 않았다.”

       - 서해성 광복 70주년 기념사업 서울시 예술감독, 성공회대 외래교수


    ‘광복 70주년을 욕보이고 있는’ 서울시 기념사업에 대해 시민사회는 강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안보시민단체 블루유니온 권유미 대표는, “말 그대로 역사왜곡이다. (좌파진영은) 오히려 나라가 망하길 바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권유미 대표는 박원순 시장 취임 후, 서울시 공무원들이 좌편향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권유미 대표는 6.25 관련 행사를 위해 서울시에 청계광장 사용을 신청했으나 허가를 받지 못한 사실이 있다고 털어놨다.

    권유미 대표가 밝힌, 서울시의 청계광장 불허 사유는 매우 황당하다.

    “담당 공무원이 행사 자료를 요구해 국가기록원에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만든 것을 보냈으나 해당 공무원은 ‘6.25를 남침이라고 하시는데 반대로 북침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어서 안 된다’며 허가를 불허했다.”


    권유미 대표는 “시간이 갈수록 서울시 말단 공무원들조차 좌편향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 박원순 시장과 학연·지연 등으로 얽힌 책임자들이 진행하는 역사왜곡은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