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이한 입장' 반복하면 '기생 정치인' 향한 분노의 타겟될 수도
  •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18일 국립 5·18 묘역에서 열린 공식 기념식에 참석하고 나올 때에 맞춰, 광주시민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문재인은 사퇴하라]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데일리 이길호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18일 국립 5·18 묘역에서 열린 공식 기념식에 참석하고 나올 때에 맞춰, 광주시민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문재인은 사퇴하라]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데일리 이길호 기자

    새정치민주연합 광주·전남 지역 의원들이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문재인 책임론'의 범위와 방법에 대해 고담준론(高談峻論)을 나누던 18일 점심.

    이들이 모인 풍향동 모 한정식집으로부터 직선거리로 약 100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필문대로 인근의 한 돼지갈비집에서는 서민들이 찌개 한 그릇 나오는 '특선 메뉴'로 점심을 해결하고 있었다.

    식사를 하는 와중에 음식점에 설치된 TV를 통해 전날 있었던 5·18 전야제 관련 뉴스를 힐끗거리며 보던 광주시민들은 저마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에 대해 한 마디씩 했다. 이들의 목소리로 인해 이내 돼지갈비집은 문재인 성토장이 된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문재인이 사퇴해야 해결돼."
    "그런데 사퇴를 안 하잖아. 문재인이가 고집을 부리잖아."
    "즈그들 친노 (공천권) 챙겨주려고 그러는 거 아닌가."
    "문재인이가 고집이 쎄."
    "호남을 언제까지 이용해 먹으려고 그러는가."
    "하여간 문재인이가 사퇴를 해야 돼."

    민심은 담백하면서도 직선적이었다. 4·29 재보선에서 전패한 문재인 대표, 당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호남(광주 서구을)에서도 의석을 잃은 문재인 대표, 그가 책임지고 사퇴해서 이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는 것이 '호남 민심'의 목소리였다.

    이러한 '호남 민심'은 비단 풍향동의 한 돼지갈비집에서만 분출된 것이 아니었다. 문재인 대표가 이날 오전 국립 5·18 묘역에서 열린 공식 기념식에 참석하고 나올 때, 시민들은 "문재인은 사퇴하라"라는 구호를 연신 반복하며 직선적으로 그들의 분노를 표출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약 한 시간 뒤, 회합을 마치고 나온 광주·전남 의원들이 합의해 내놓았다는 입장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문재인 대표의 책임에 대해서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기 때문에 하나로 일치된 방법은 결정하지 못했다."(박혜자 광주시당위원장)
    "오늘 우리가 당장 (문재인 대표에게) 어떻게 하라는 것까지는 합의하지 못했다."(황주홍 전남도당위원장)

    정치권 일각에서는 문재인 대표에게 강한 책임론을 제기했다는 분석도 나오지만, '호남 민심'이 요구하는 수준과 기대치에 미치는 반응이었는지는 의심스럽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대표가 '혁신기구' 설치안을 내놓자 "당 지도부가 위기 상황을 안이하게 파악하고 있는 게 안타깝다"고 직격탄을 날렸던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이날 회합이 파한 직후, 취재진의 질문이 쇄도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문재인 대표의 쇄신안 만큼이나 '안이한 입장'을 내놓은 호남 지역 동료 의원들에게 실망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호남, 특히 광주에 있어 더없이 깊은 의미를 가지는 날에 모인 광주·전남 의원들, 하지만 그들이 내놓은 이른바 '입장'이 '호남 민심'의 담백한 요구를 제대로 받아 안았는지는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누구보다 '호남 민심'을 천심처럼 받들고 대변해야 할 이들 의원들이 왜 5월 18일에마저 용기 있는 목소리를 함께 내지 못했을까. 무엇이 두려웠을까.

    앞서 국립 5·18 묘역에서 문재인 대표를 향해 "사퇴하라"고 외친 시민들의 손에 들려 있던 플래카드에는 "친노패권에 기생하는 호남 정치인은 각성하라"라고 적혀 있었다. 지역 의원들이 민심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면, 그리고 당내에 만연한 친노패권주의를 향해 용기 있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면, '호남 민심'의 분노가 향할 곳이 어디인지를 보여주는 구호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