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초동 세모녀 살인사건’의 살해범은 두딸을 가진 가장이었다. 피의자 강씨의 범행동기는 주식투자 실패와 그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었다고 한다. 강씨는 지난 6일 새벽경 서초동 소재 자신 소유 아파트에서 아내와 두 딸을 목졸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강씨는 충북 대청호에 투신을 하고 손목을 긋는 등 방법으로 자살을 하려 하였으나 실패 후 경북 문경에서 도피하던 중 경찰에 검거되었다.

    세상을 놀라게 하였던 것은 그가 서울 소재 명문 사립대를 나온 엘리트로서 시세 10억원을 호가하는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주식투자를 위해 담보대출 5억원을 받아 탕진한 바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트를 처분하면 빚을 갚고도 남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매월 생활비로 아내에게 400만원을 주고 있었으며 아내 통장에는 3억원의 예금이 있었다고 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어릴 때부터 좋은 환경에서 곱게 자란 탓에 시련을 이겨지내 못하였다”는 평가를 하고 있으며, 경찰 관계자는 “조사 과정에서 만난 강씨는 순한 성격으로 참혹한 범죄를 일으킬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면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또 한 언론에서는 “아내와 두 딸을 죽이는 선택을 한 것을 보면 대한민국의 가장상(象)이 차츰 강인함보단 한 인간으로서의 유약함을 감추지 못하는 쪽으로 변모하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하였다.

    물론 유명대학 경영학과 출신의 강씨가 외국계 회사를 다니며 고액연봉을 받다 실직을 하여 중산층에서 탈락되는 경험, 즉 상대적 박탈감을 이기지 못하여 자살을 결심하게 되었고 심지어 가족까지 살해하게 되는 파국을 초래하였다는 평가가 전혀 일리 없는 것은 아니다. 강씨의 유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미안해 여보, 미안해 00(딸)아, 천국으로 잘 가렴. 아빠는 지옥에서 죄값을 치를게”라는 내용.

    그러나 과연 중산층의 삶을 유지하지 못함으로 인한 상대적 빈곤과 그로 인한 박탈감을 살인범행의 결정적 이유로 볼 수 있을까. 중산층의 상대적 빈곤과 주관적 박탈감이 살인범죄 원인이다? 단순한 상대적 박탈감만으로 인간의 공격성이 증폭된다는 도식은 과히 설득력 있어 보이지 않는다.

    특히 강씨가 아파트를 처분하더라도 6억원 이상의 현금자산이 남게 되며, 다른 친지들의 금전적 지원도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다. 실직의 고통, 경제적 부담 증가, 주식투자 실패 등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을 살인범죄의 원인으로 보기에는 아직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살인범죄의 경우 80% 이상이 상호 지인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사람들 사이에 범해진다는 통계결과도 있다. 그리고 그 중 상당수는 가족간의 살인으로 밝혀지고 있다. 강도살인과 같은 물질적 탐욕이 주된 동기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살인사건은 가족 등 근친관계를 통해서 이뤄진다고 한다. 이런 통계결과에 대한 범죄사회학적 해석은 이렇다. 가족간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기 때문에 가족이 곧 즐거움의 근원인 동시에 때로는 좌절과 상처의 근원이 된다는 것.
        
    일반적인 살인범죄는 상당한 수준의 범행동기를 요하므로 아무런 감정을 못 느끼는 이방인을 상대로 한 이른바 묻지마 살인은 극소수에 그치고 있다. 티오(Thio)라는 범죄학자는 살인을 ‘가족문제(family affair)’라고까지 논한 바 있다.

    필자는 ‘서초동 세모녀 살인사건’이 단순히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감정적 요소만으로 이뤄진 것이라 보지 않는다. 상대적 박탈감과 같은 감정적 요인이 모종의 공격성을 발현시켰을 것이라는 전제를 먼저 얘기해 두고 싶다. 중산층의 살인범죄와 관련하여 비교적 설득력이 있는 심리학 이론으로는 ‘좌절-공격성(frustration-aggression)'이론이 꼽힌다. 좌절이란 목표성취를 위한 시도의 봉쇄를 의미한다. 다만, 좌절상태가 발생하였을 경우 누구나 공격성을 띠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해 준 이론으로 헨리와 쇼트(Henry & Short)라는 심리학자의 외적 제재(external restraint) 이론이 있다. 그들에 따르면 자살과 살인범죄 모두 공격적 행동이라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자살은 자신을 향한 내부지향적 공격성의 표출인 반면, 살인은 타인을 향한 외부지향적 공격성의 표출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약한 수준의 외적 제재를 받은 사람의 경우 자살을 택하고, 강력한 수준의 외적 제재를 받은 사람의 경우 살인을 선택하게 된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외적 제재라 함은, 타인의 기대감과 요구에 어쩔 수 없이 동조해야 하는 정도, 즉 사회적 통제의 정도라 정의되고 있다. 위 학자들에 따르면, 사회적 통제를 크게 받는 사람들의 경우 본인들이 겪는 좌절감에 대해 타인을 합법적으로 탓할 수 있기 때문에 자살보다는 살인을 선택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서초동 세모녀 살인사건’의 강씨는 과연 사회적 통제를 크게 받는 사람이었던가 의문을 던져 본다. 실직 이후 경제적으로 전과 다른 상당한 추락의 경험을 하였을 것이고, 그로 인해 중산층 생활을 잘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열등감이 생겼을 것이며, 또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한 데서 오는 가족들이나 주변 친지의 눈총에 괴로워했을 것이다. 상류층으로 다시는 진입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도 컸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정도의 사회적, 경제적 추락 상태를 두고 살인을 부를 만한 강력한 사회적 통제가 있었다고 볼 수 있을까. 그것도 아내와 두딸을 살해할 만한 긴장감을 초래하는 사회적 통제가 있었다고 볼 수 있을까. 필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살인범죄는 사소한 다툼 끝에 우발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아는 가장 비상식적이면서도 상식적인 살인범죄의 양상이 이렇다. 살인이란 극단적인 인간행동이지만 살인의 동기는 지극히 사사로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는 학자들이 많다. 예를 들어 부부간, 친구간, 동료간 단순 말다툼 끝에 어이없는 살인사건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이 사건의 경우도, 처음에는 강씨 개인의 자살로 끝날 가능성이 높은 사건이었다. 그러나, 개인적 자살시도의 실패 끝에 왜 자신만 살고 나머지 가족만 살해하였는지를 단순히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이유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강씨를 압박하여 가족의 살해를 불러일으킬 만큼의 사회적 통제가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필자는 강씨의 살인범행 이유가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었다는 세간의 평가에 동의할 수 없다. 수사가 이런 방향으로 흘러가고 언론이 이를 따라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면 결국 강씨는 더 잘 살지 못해, 상류층으로 진입하지 못해 가족살인을 범하였다는 결말로 사건이 종결될 것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사건 살인범죄 발생은 특별한 동기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상대적으로 미미한 수준의 사회적 통제를 받고 있던 강씨가 사건 발생 당일 저녁 또는 새벽시간 가족들, 특히 아내와 모종의 다툼이 있었을 가능성, 그로 인해 즉흥적, 우발적으로 살인범죄가 일어났을 가능성까지를 열어두고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본다.

    생각보다 대단치 않은 이유로 살인범행이 이뤄졌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상대적 박탈감이 살인범죄의 결정적 원인이 아닐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