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버 6·25'와 마지노線

    미국은 ‘핵우산’을 제공할 수는 있어도,
     ‘사이버 우산’을 제공하진 못한다.
    마지노선의 실패를 거울삼아 신개념 국방을 구축하지 못하면
     ‘사이버 6·25’는 언제든 발발할 수 있다.


황성준 / 문화일보 논설위원
 (문화일보 12월30일자  '뉴스와 시각' 전재)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프랑스인들은 마지노선(線)을
 난공불락의 요새로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독일군의 침공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한달반 만에 항복해야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을 전제로 구축된 마지노선은 독일군 전차부대의 전격전 앞에 무력했다. 수십 만의 프랑스군은 마지노선에 고립된 채, 이를 우회해서 파리로 진격하는 독일 전차군단을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다. 탱크는 보병의 보조병기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나지 못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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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원자력발전소 해킹 사태는 사이버 공간이 더 이상 ‘가상 세계’가 아니라 ‘현실 세계’임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미국 소니픽처스 해킹 사태는 ‘저강도 사이버 전쟁’이 이미 시작됐거나,
가까운 미래에 대전(大戰) 형태로 벌어질 것임을 예고한다.

사이버 전투기술은 단순 해킹을 넘어, 적의 인프라 시설을 붕괴시키는 수준에 이르렀다.
사이버 기습 남침을 당해 원전이 폭발하고 기차가 충돌하고 전기·가스·수도시설이 마비되고,
국가 수뇌부 및 군 통신망이 교란된다면, 휴전선의 ‘철책 방어선’은 마지노선처럼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미국은 2009년에 사이버사령부를 조직, 기존 육·해·공·해병대 사이버 전력을 하나의 지휘 체계로 통합했다. 국방예산이 줄어드는 가운데에서도 사이버전 예산만큼은 매년 증가시켜 내년엔 51억 달러 규모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도 적극적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언급한 ‘비례적 대응’은 나토의 ‘탈린 매뉴얼’에서 따온 표현이다.
탈린은 에스토니아 수도로서, 2007년 러시아의 에스토니아 사이버 공격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됐기에 이 명칭이 붙여졌다. 나토는 최근 에스토니아에서 28개국이 참가하는 대규모 사이버전 훈련을 했다.

중국도 사이버 전략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은 1991년 걸프전과 1999년 코소보전을 통해, 미군의 취약점은 컴퓨터 네트워크라 판단했다. 그리고 “전자 공격의 중점은 전자 시스템의 약점과 급소 부위에 두어 그 혈을 눌러 전체를 마비시킴으로써 작전 효과를 추구한다”는 ‘점혈전략(點穴戰略)’을 만들었다. 북한도 2012년 김정은의 지시로 전략사이버사령부를 창설해 운용 중이다.

이에 비해 국군사이버사령부는 전투부대라기보다는 보조부대다.
내년에야 합참에 사이버 작전과(課)가 신설돼 합참이 사이버사의 작전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사이버 부대를 ‘독자적 전략군’으로 육성·훈련 시키지 못한다면,
주(主)전장이 되고 있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전투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 5년간 북한 소행으로 추정되는 공공기관 대상 사이버 테러만도 7번이며,
군을 대상으로 한 사이버 공격은 6000건을 넘어섰다. 이미 저강도 사이버전쟁 중이다.

그런데도 사이버테러방지법 하나 제정하지 못하고 있다.
정보통신 인프라가 세계 최고 수준인 만큼 사이버 공격의 피해는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
 미국은 ‘핵우산’을 제공할 수는 있어도, ‘사이버 우산’을 제공하진 못한다.
마지노선의 실패를 거울삼아 신개념 국방을 구축하지 못하면
 ‘사이버 6·25’는 언제든 발발할 수 있다. <sjhwa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