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찌라시 신문과 카더라 방송

    댓글 물고 늘어지기에 이어 인사 청문회 딴지 걸기(애국우파 죽이기),
    세월호 책임 덮어씌우기, 청와대 문건 유출에 환호하기로 쉴 새 없이 몰아붙였다.
    그런데 18대 대통령은 17대 대통령과 달리 끝내 ‘아침이슬’을 부르지 않았다.

    최성재  
     
      찌라시(ちらし, 散らし)는 표준국어사전에도 안 나오는 일본어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속된 말로 널리 쓰인다.
     ‘악의적으로 적에게 불리한 내용을 1% 사실에 99% 거짓을 섞어 믿거나 말거나
     마구 뿌려대는 싸구려 전단지’라는 뜻을 담고 있다. 우리말로는 흑색선전 정도가 되겠다.

    ‘세월호’ 선정적 보도가 약발을 다하자마자, 세계일보에서 찌라시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다.
    곧바로 한겨레와 KBS는 말할 것도 없고 조선과 동아까지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면서
    게거품 장단을 맞추었다. 그러나 거기 어디에도 스스로 확인한 물적 증거가 없었다.
  • 보도의 가장 기본인 6하 원칙이 깡그리 무시되었다.
    그러자 얼마 안 있어, ‘바른 말 고운 말’의 표준 박근혜 대통령이 굳은 얼굴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이 말을 저급한 언론보도의 맥락에 적확하게 씀으로써
    다수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친북좌파 대통령이 아닌 대통령에 관한 짜라시라면 덮어놓고 일단 굳게 믿고
    곧장 개탄과 비난을 퍼붓는 진보민주 진영은 얼씨구나 힘차게 발을 구르며
    ‘찌라시나 만드는 청와대’라고 비아냥거렸다.
  • 자유민주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그것은 다양성의 관용(톨레랑스)과 절차의 인내를 악용하는
    아카시아와 잡초에 속수무책이라는 것이다.
    2백년 내지 3백년의 민주 역사를 자랑하는 서구 선진국도 이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공산권이 자멸한 후에도 여전히 문화계는 좌파가 압도적인 우위를 장악한 상태),
    하물며 문화적 경제적 토대가 전근대적인 나라에서는 자유민주의 가녀린 벼와 밀은
    봉건주의의 잡초와 인민민주의 아카시아에 둘러싸여 명맥만 유지하기 일쑤다.

    심지어 3대세습공산왕조도 선거의 형식을 거치거니와,
    명색이 어느 날 갑자기 자유민주를 도입한 후진국은 선거가 결과적으로
    권력을 독점한 정치깡패에게 부정과 부패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래서 다양성의 관용과 절차의 인내를 어느 정도 희생하고 정치적 안정을 꾀한 지도자가
    공무원의 부정과 부패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과학기술 인재를 대대적으로 키우고,
    경제적 토대를 근대적으로 바꾸어 생산을 눈부시게 늘려서 절대빈곤을 몰아내고 
    중산층을 급격히 늘리면, 자유민주의 벼와 밀은 어느새 황금물결을 이루기 시작한다.

     악역을 담당한 강력한 지도자 또는 선의의 독재자가 물러나면,
    중산층이 대거 등장한 사춘기의 자유민주가 새로운 위기를 맞는다.
    사춘기의 자유민주는 더 이상 다양성의 관용과 절차의 인내를 희생하지 않으려 한다.
    당연하다!

    그것은 자유민주의 핵심인 법치(法治)에 어긋나기 때문인데,
    어차피 겪어야 할 단계로 자유민주가 성인이 되기 위한 성장통이다.
    여기서 위기는 다양성의 관용을 다양성의 자유방임(케세라세라)으로,
    절차의 인내를 절차의 나태(懶怠)로 악용하는 무리가 독버섯처럼 자라나
    그들이 방대한 조직을 갖추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때 제일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신문과 방송이다.
    1990년대 이후에는 포털이 이들보다 강력한 언론매체로 등장했다.

    한국에선 ‘80년의 봄’을 기점으로 ‘6.29선언’을 교두보 삼아
    이단적 인민민주의 아카시아와 말기적 유교봉건주의의 잡초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대학의 대자보 찌라시로 늦어도 1990년 무렵에, 악의 제국이 무너지는 바로 그 무렵에
    지식인 사회를 거의 장악했다. 민주, 평등, 분배, 민족, 평화, 통일, 환경, 여성주의의 만국기를
    펄럭이면서 386운동권은 수시로 김일성공산왕조와 라디오와 팩스로 지령 받고
    반잠수정을 타고 오르내리기도 하면서 재야를 일통했다.
  • 노태우 정권에서는 노조운동과 시민운동으로 재야의 실세 386운동권은
    조직을 키우고 뿌리내리느라고 자유민주에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지 못했다.
    기껏해야 대학에서 찻잔 속 위수김동 태풍을 일으키는 정도였다.
     마교(마르크스교)가 힘이 약할 때 쓰는 통일전선에 충실한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신문과 방송은 이때가 가장 자유민주에 충실했다.
    사실과 이성(理性)이 가장 중시되었다. 방송 토론에서 억지와 궤변, 야유와 빈정거림,
     말 가로채기와 삼천포로 빠지기 등은 엄정 중립의 사회자에 의해 바로 바로 차단되었다.

    친북좌파의 숙주인 김영삼 정권부터 한국의 신문과 방송은
     다양성의 자유방임과 절차의 나태에 즐거이 빠져들기 시작했다.

    찌라시 신문과 카더라 방송이 여기저기 출몰하기 시작했다.
    이미 내부적으로 많은 인민민주 후배가 다양성과 절차를 내세워
    자유민주 선배의 고삐를 쥐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곧 한통속이 되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죽창으로 마구 찌르기 시작했다.
    이에는 선후배가 따로 없었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대한민국의 빛나는 성취는
    반제반봉건(半帝半封建) 곧 미국의 반식민지(半植民地), 친일독재자의 반봉건주의(半封建主義)로 난도질되었다. 북한에서 주장하는 그대로!
    그 과정에서 선명성을 내세운 인민민주 후배가,
    진보민주 후배가 시나브로 실세로 자리 잡아 갔다.

    찌라시 신문과 카더라 방송와 찌카(찌라시 카더라) 포털이 가장 재미 본 것은
    노무현 탄핵 사건 때였다.
    민주적 절차에 따른 3분의 2 찬성은 이들에 의해 가차 없이 매도되었다.
    자기들이 유리할 때는 절차의 인내를 그렇게 신봉하던 자들이 불리하자
    바로 그것을 절차의 ‘개무시’로 뒤바꿨다.
  • 그들의 힘은 2008년 봄에 다시 한 번 폭발했다.
    우파가 양분된 상태에서도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된 위장 애국우파 대통령이
    이전 친북좌파 대통령이 결정한 것에 절차의 인내를 무시하고 덜컥 도장을 찍었다는 이유로
    국제수역국(國際獸疫局)에 따르면 등급 외 한우보다 훨씬 안전한 미국 소를 청산가리보다 못한 것으로 선전선동하자, 새 대통령은 바로 국민지지도가 이전 대통령들의 임기말처럼 떨어졌다.
    새 대통령은 ‘아침이슬’을 봉창(奉唱)하면서 100일 만에 스스로 위장 우파임을 실토했다.
     그는 그대로 코가 꿰어 5년 내내 아무리 잘해도 좌우 양쪽에서 동네북이 되었다.

     근소한 차이로 당선된 18대 대통령은 17대 대통령 못지않은 초반 길들이기
    찌라시 신문과 카더라 방송과 찌카 포털에 시달렸다.
    댓글 물고 늘어지기에 이어 인사 청문회 딴지 걸기(애국우파 죽이기),
    세월호 책임 덮어씌우기, 청와대 문건 유출에 환호하기로 쉴 새 없이 몰아붙였다.

    그런데 18대 대통령은 17대 대통령과 달리 끝내 ‘아침이슬’을 부르지 않았다.
  • 3대 세습독재자의 개성공단 협박에 넘어가지도 않았다.
    지지도가 그때마다 제법 내려갔지만 이내 원위치했다.
    그 사이 비정상이 정상으로 하나씩 돌아왔다.

    그중 가장 큰 것이 헌재의 통진당 해산이다. 무려 8:1!
    이로써 찌라시 수준으로 떨어졌던 조선과 동아가 우파의 지침을 얻었다.
    자유민주의 원칙이 정해졌다. 진보의 개념이 명확해졌다.
    반박(反朴)은 변함없겠지만, 반국가(反國家)는 불가능해졌다.
    이제 언론 스스로 개혁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