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창극 현상”

    조광동 /재미 언론인


  • 박근혜 대통령이 문창극씨를 국무총리로 지명한 뒤
    큰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한국 식민 지배와 남북 분단이 하느님의 뜻이었다는
    발언과, 위안부 사과 문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죽음이 임박했을 때
    쓴 칼럼이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가장 큰 잇슈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하느님의 뜻이었다”는 발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문창극 후보자의 식민지 사관을 규탄하고 사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문창극 후보자가 식민지 사관을 가졌다면 당연히 사과하고 사퇴해야겠지만,
이러한 비난의 근거가 사실이 아니라면 문창극은 악의적인 모함을 당하는 것입니다. 

강연 전문을 읽어보면 악의적인 왜곡이 있습니다.
문창극 후보자는 강연에서 망국 직전의 조선 시대 상황을 설명하고,
망국이 주는 의미와 교훈을 신앙적으로 해석하고,
이 시대 신앙인이 나라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상황 설명을 위해, 문창극 후보자는 1874년 조선을 방문한 달래 신부가 쓴
조선에 대한 책을 인용했습니다.
 “일본은 이렇게 깨끗한데 한국은 이렇게 더러우냐”고
기록했던 달래 신부는 조선인들이 이주한 북간도 연해주를 방문한 뒤,
거기에 있는 “조선인들은 더럽고 게으르게 사는 하류 원시인”이 아니라,
“러시아 사람들보다 훨씬 잘 살고 깨끗했다.”고 기술했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조선인 모습에 놀란 달래 신부는
“왜 연해주 조선인과 조선의 조선인이 이토록 다르냐”고 물으면서,
그 대답을 “나라가 잘못돼서 그렇다”는 데서 찾고 있습니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는 당시 잘못된 나라의 모습을 전하기 위해
개화기 지식인 윤치호의 일기도 인용했습니다.
윤치호는 나라가 망해 가는데 고종은 “일본이 우리를 합병해도 좋다. 단, 우리 왕실만 살려 달라”는 조건으로 이완용으로 하여금 일본과 협상케 할 만큼 무능 나약 타락했다고 말하고,
당시 엘리트들은 “혓바닥 놀리면서 게으르게 먹고 살려고 했고”,
“조선 유학생들은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고,
이게 우리 민족의 DNA로 남았다”고 탄식했습니다.

그리고 일제 식민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나라를 보호해 주셨으면, 일본한테 합방하지를 않게 하시지,
하나님은 왜 이 나라를 일본한테 이렇게 당하게,
식민지로 만들었습니까' 라고 우리가 항의할 수 있겠지요.
하나님이 뜻이 있는 거야. 우리한테 너희들은,
이조 500년, 허송세월을 보낸 민족이다.
 너희들은 시련이 필요하다. 너희들은 고난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한테 고난을 주신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 고난 속에서 우리가 36년을 지나고 난 다음에야,
마치, 광야의 40년 세월을 하고서, 우리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있듯이,
36년의 고난을 거치고 난 다음에야, 대한민국에게 독립을 허락하신 거예요.
그것도 다, 하나님의 뜻이다”

개인이든 국가든 부끄러운 역사가 있을 때 그 원인을 어디서 어떻게 찾느냐에 따라
 가치관 역사관이 달라집니다. 모든 잘못을 남에게 돌리는 사람도 있고,
잘못을 자신에게로 돌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을 때 우리는 당연히 가해자를 벌주고 비난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 성장을 위해 피해자의 권리와 분노에 안주하지 않고
자기 반성의 길을 택하기도 합니다. 도약과 웅비의 역사, 감동의 역사는
대부분 과감하고도 파격적인 자기 성찰에서 잉태됩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나라를 빼앗겼던 비극의 원인은 일본의 야욕과 침략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대처하지 못한 우리 민족의 무능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준비하지 않고 허송 세월을 보낸 민족은 수난을 당한다는 섭리,
이 섭리를 문창극은 “하느님의 뜻”이라고 말했습니다. 

인간과 민족이 시련과 고통을 당하는 것이 무슨 의미이고,
이러한 역사를 지배하는 섭리의 중심이 누구냐 하는 질문은 아무도 정답을 줄 수 없습니다.
이 질문을 풀기위해 인류는 수천 년간 수없는 주장과 논쟁과 탐구를 해 왔고,
사람들은 이 해답을 얻기 위해 저마다 철학과 사상과 종교를 택하고 있습니다.
 이 질문에 누구나 주관적인 대답을 가질 수 있지만
객관적인 해답은 인간이 알 수 없는 신의 영역입니다

그러나 논란의 핵심은 역사를 주관하는 것이 신이냐 인간이냐,
하는 철학적 종교적 논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창극의 강연 내용이 식민지 사관이냐, 하는 것에 있습니다.
문창극의 연설 어디에도 “일본 식민 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이나
그런 뜻의 내용이 없습니다. 친일, 매국과는 너무나 거리가 멉니다.
문창극이 하느님에게 “우리나라를 보호해 주셨으면, 일본한테 합방하지를 않게 하시지,
하나님은 왜 이 나라를 일본한테 이렇게 당하게, 식민지로 만들었습니까?” 하는 질문은
 빼앗긴 사람, 억울한 사람의 고통스럽고, 항의적인 질문입니다.
여기에는 조금도 식민지가 불가피했다거나, 유익했다거나, 공헌했다는 식민지 사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참 못난 민족이다, 이럴 필요가 없다. 그게 다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 피 속에 고난이 영글어져서, 뿌리가 됐기 때문에 애석하지만 상심될 필요는 없다.
(하느님의 뜻을 헤아렸으니 당당해지고 사명감을 가지자),
한국을 세계의 중심 국가, 세계의 예루살렘으로 만들어야 되겠다 하는 뜻이 있다.
이걸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자”는
성찰적, 희망적, 애국적 역사관입니다.

문창극이 “하나님의 뜻”을 말하기 전에 연해주 조선인은 깨끗하게 하고 사는데
조선의 조선인들은 불결하게 산다고 말하고 그 원인을 나라에 찾은 달래 신부의 책과,
나라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했는데 왕실이나 엘리트들이 무능 타락하고 게으른 것을 탄식한
 윤치호의 일기장을 인용한 것도 나라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준비하지 않은
당시 조선의 상황을 말해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 문창극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들은 “왜 우리가 식민지를 당하게 하셨습니까?” 라는 질문을
    “일본이 식민 지배를 한 것”으로 재편집했습니다. 이 두 말은 표현도 의미도 극명하게 다릅니다. 그리고 식민지를 당하게 한 것은 “너희가 허송 세월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고난이 필요하다” 라고 대답한 뒤, 이러한 섭리가 바로 “하나님의 뜻”이다, 라고 말 한 것을 모두 잘라 내고,
    마지막 부분 “하나님의 뜻”만 연결 시켜서 한 문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식민 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짜깁기로 새로운 뜻의 문장을 만들었습니다. 

    사이비 사진 기자들이 사진을 컴퓨터로 재편집해서 자기가 의도하는 사진을 만드는 것처럼,
    문창극의 말을 생선 토막 내듯 칼질해서 머리 부분을 이상하게 만들고, 몸통을 다 뺀 뒤,
    꽁지를 붙여서 전혀 다른 생선으로 만들었습니다. 내용을 왜곡시킨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 하느님의 뜻을 아는 길은 기도와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라고
    강연 서두에서 말했던 문창극은 하느님의 뜻을 알았으니 우리 인간이 해야 할 일을 하자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나라의 운명에 있는 “흥망성쇠의 싸이클”에서 망하는 싸이클을 끊고, 흥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 나라를 도덕의 나라, 개혁의 나라로 정신적으로 바꿔야 한다. 이게 우리 첫째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 “나를 위해 매일 기도하듯 나라를 위해 기도하자”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대부분 언론은 “식민 지배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왜곡하는데 그치지 않고,
    윤치호의 말을 문창극의 말로 바꾸면서 그 내용까지 고쳤습니다.
     “조선 유학생들이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고, 이게 우리 민족의 DNA로 남았다” 라고 된 글에서 “조선 유학생들”을 “조선 민족의 상징”으로 바꾸어, “조선 민족의 상징은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는 것, 이게 우리 민족의 DNA로 남았다”로 변경했습니다. 조선 유학생을 비하 시킨 것이 아니라, 조선 민족을 비하시킨 것으로 해야 “문창극이 민족을 비하”한 것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윤치호의 말을 문창극의 말로 바꾼 것도 실수로 보기 어려운데, “조선 유학생들”을 “조선 민족의 상징”으로 바꾼 것은 명백하게 의도적으로 기사를 변질 시킨 것입니다.

    과연 한국 언론인들이나 지식인들이 문창극 연설의 전문을 읽고 이런 공격을 하는지,
    그리고 60%가 넘는다는 비난 여론의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연설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고 자기 생각을 가졌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언론인이나 정치인, 지식인들이 전문을 읽지 않고 매질을 한다면 무책임한 사람들이고, 전문을 읽고도 문창극을 친일 매국노라고 한다면 그들의 문장 해득력에 문제가 있거나, 편견과 미움으로 비뚤어졌거나, 정치적 이념적 득실을 계산하는 사람들입니다. 

    문창극 논쟁은 그가 총리가 되느냐에 있지 않고, 그의 인격과 가치관이 공정하게 검증되느냐 
    하는 한국의 정치 문화, 국격의 수준에 있습니다.
    문창극 현상은 한국의 이성과 인격에 정치 제도에 큰 흠집을 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