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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변호인>이
    개봉 17일만에 7백만명을 넘으며
    천만 고지 입성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아마 이 글이 게재될 즈음에는
    <천만 고지, 눈 앞에 왔다!>라는 기사들이 난립을 할 것이다.

    누군가 내게 변호인 개봉 전에
    흥행을 묻자 주저 없이 천만을 넘길 것이라고 장담을 했었는데,
    이놈의 입이 방정인 것인지 어쩐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변호인은 순항 중이다.


    혹자는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며 변호인을 변호하고,
    혹자는 영화 자체가 이미 영화의 순수성과는 멀다고 이 영화를 비판한다.

    누가 뭐라 떠들건 그런 논쟁은
    자연스레 흥행으로 이어지고,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왕뚜껑]보다 더 맛있어 보이는
    관뚜껑 오픈 이벤트는 성공하게 된다.

    이런 패턴의 흥행코드는 이 영화뿐만이 아니었다.
    정치적 목적을 가진 영화들은 늘 이래왔고,
    그 영화들은 이런 노이즈를 통해 흥행에 성공해 왔다.

    단 한번!! 그게 통하지 않을 때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재작년 연말 대선기간 때였다.


    <26년>부터 <남영동 1985>등
    상업영화와 독립영화계 진영 모두에서
    정치선동용 영화들이 나왔지만 참패를 면치 못했다.


    왜?


    18대 대선에서 희망을 보다~!


    변호인을 보면 故 노무현을 떠올리듯이,
    필자는 이 영화를 통해 주변을 바라보면서
    2년전 대선의 추억에 빠져들었다.

    영화계 정치 선동꾼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대부분의 영화들의 흥행 키워드는 바로 [노이즈]다.

    언론플레이를 통해
    자신들과 다른 성향(보수우파)들의 코털을 건드리고 반응하면
    곧바로 그걸 가지고 대중을 다시 선동하며
    작품성과는 상관없이 흥행에 무난히 안착한다.

    <광해, 왕이 된 남자> 역시
    CJ의 천만 관객에 대한 집요한 욕심도 있었겠지만
    노무현 코스프레와 문재인 당시 후보의 관람 등을 통해
    이슈메이킹을 통한 천만 달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2007년에는 <화려한 휴가>가 있었고,
    그 역시 대선결과와는 상관없이
    그 영화는 700만명을 동원하며 대박을 쳤다.

    재작년 18대 대선도 [역시나!]였다.
    대선용 영화들이 즐비하게 나타났고,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끝까지 버텨주었으며,
    그때부터 이미 완성되지도 않은 영화 <변호인>의 이야기들이
    심심찮게 흘러 나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영화들은
    모두 흥행에 참패하고 말았다.
    모두가 영화의 수준이 형편없었다고 망한 이유를 설명했지만
    과연 그럴까?

    <화려한 휴가>는 작품성이 기가 막혀서 성공했을까?
    전남 토박이 주인공이 서울말을 쓰는 영화가?
    <26년>이나, <남영동1985>가
    <화려한 휴가>보다 작품적으로 떨어진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웃기는 얘기지만 한국에서의 흥행은 경험적으로 볼 때
    작품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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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나 이런 노골적인 목적의식을 가진 영화들은 더욱 그러하다.

    오히려 실패여부가
    너무 노골적인 정치성향의 제시였다면
    이해를 할 수 있겠다.

    그럼 왜 18대 대선용 영화들은 흥행에 참패를 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보수우파 진영에서
    그 영화들을 철저히 무시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당시에도 보수우파 진영에서는
    그런 영화들에 반응을 보이려 했다.


    하지만, 필자를 비롯해
    몇몇의 영화판 생리를 아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말 것을
    간곡히 권유하고 다녔고,
    그것이 통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반응하는 순간, 그들은 폭발한다.

    일례로 작년에 벌어진
    <천안함 프로젝트>영화 개봉사건을 떠올려 보자.
    어디서도 받아주지 않았던 영화였는데
    황당하게도 메가박스에 걸리게 됐고,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메가박스는 영화를 내리면서
    노이즈 마케팅의 불을 당겼다.


    결국 천안함 프로젝트는 좌파 진영의 단결력을 바탕으로
    온라인과 iptv의 흥행을 만들어 가며
    본전을 넘어 흥행에 나름 성공하는 쾌거를 이뤘다.
    흥행했다는 것은 많은 대중들이 그 영화를 봤다는 것이고,
    음모론은 다시 승리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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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에 이런 영화들은 관심 두지도 않고
    (cgv의 무비꼴라쥬 같은 다양성영화관 하나 없고)
    상업영화들만을 개봉하는 극장이
    왜 갑자기 작품성으로도 떨어지는 이 영화를 개봉시켰을지
    음모론 외에는 제시할 길이 없지만
    어쨌든 메가박스와의 기가 막힌 합작으로
    그들은 자신들 스스로가 노이즈를 만들어내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탁월한 기획력을 보여주었다.

    그런 그들이 상대편에서 반응을 보인다면 어떻겠는가?

    하지만, 18대 대선에서 보수진영은 애써 무시했고,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대선용 영화들의 대 실패로 끝이 나게 됐다.
    그걸 보면서 필자는 만세를 불렀고,
    이제 한국 영화판에 정치 양아치들이
    사라지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이제 보수진영에서도
    자신들의 가치를 알릴만한
    영화산업에 대한 활발한 움직임이 생성될 것이라고
    꿈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필자의 단순한 생각이었음을
    지금 흥행하는 변호인은 증명하고 있다.

     

    보수우파는 순진한 걸까, 멍청한 걸까?


     

    항상 똑 같은 패턴의 연속선이 다시 그려지고 있다.
    아니, 변호인은 조금 다른 구석은 있다.
    다른 영화들이 마케팅 기간 안에서 노이즈를 촉발시켰다면
    이 영화는 상당한 기간 동안 노이즈를 유발시키도록
    준비과정을 철저히 했다는 것이다.


    아마 18대 대선에서 그들의 실패에 대한
    정확한 원인분석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18대 대선 때부터 존재감을 과시(?)했지만
    조용히 사라진 이후,
    2013년 여름부터 오유를 비롯한 진보좌파 진영에서는
    이 영화로 집결하기 시작했다.


    저들의 공격(?)이 있을지 모르니
    최대한 노무현 코스프레는 하지 말라는
    직접적 조언까지 나돌기도 했다.
    노이즈 마케팅의 패턴이 변화함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필자는 거기까지는 거기까지는
    그러려니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정작 문제는 그 다음이다.


    우파진영 사람들이 기어이 그들이 만들어 놓은 꼼수에
    반응을 보여버린 것이다.


    그걸 보는 순간,
    누군가 내게 이 영화의 흥행을 물었을 때
    아주 쉽게 [천만!]이라고 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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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수준이 어떻든,
    영화의 목적이 어떻든
    그건 지금 우파가 할 이야기는 아니다.
    필자가 보기에
    지금 보수우파 진영에서 할 이야기는
    왜 좌파가 저런 영화를 만들어 열 받게 하느냐가 아니라,
    왜 멍청하게 자신들은 저런 좌파들의 놀음에
    철저히 이번에도 이용당하느냐고 자책해야 한다는 것이다.


    좌파는
    자신들과 반하는 영화는 절대 보지 않으며 죽여버리는데,
    우파는 자신들의 영화는 만들 생각도 없으면서
    좌파들의 영화는 보고 나서 비판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더 웃긴 건 보수우파적 영화들은
    본인들도 재미없어서 안 본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보수우파 사람들은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필자는 헷갈려 버린다.


    보고 나서 비판해야 한다는 것은
    필자도 같은 생각이지만
    그것은 경우에 따라 다르고,
    이런 노골적인 정치 영화들을 대하는 태도에선
    달라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패턴은 여전히 지속된다.
    그렇게 한 결과는 이렇다.

    처음 1~2백만은 친노세력이나
    배급사, 진보좌파 진영의 합작으로 만들어진다면
    그 다음으로 흥행에 보탬을 주는 건 우파 진영이 된다. 


    그렇게 흥행에 탄력이 붙고
    노이즈 마케팅의 청신호가 켜지면
    그들은 대대적인 홍보를 통해
    매주, 매일 엄청난 관객수를 기사화시키며
    이 영화를 안보면 왕따라는 사회 분위기를 형성하면
    영화를 잘 안보는 대중들도
    트렌드를 쫓는 기분으로 영화를 관람하게 된다.


    그 다음에 작품성이 좋으면 천만이 넘는 것이고,
    아니면 6~7백만명선에서 마무리가 된다.

    이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라고 질문을 던진다면
    과거를 돌이켜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불과 1년 2개월 전에 보수우파는
    영화판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전적이 있고,
    그 승리의 간단한 원칙은 단 하나,
    [안보고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쓸모 없는 비판할 시간에, 우파 문화의 기간산업을 만들어라!

     

    지금 필자에겐 <변호인>을 무료로 볼 수 있는
    네 장의 티켓 예매권이 있다.
    누군가 돈을 주고 만든 예매권일 것이고,
    그게 누군지는 필자도 모른다.


    그게 어떤 공짜 티켓이건간에
    필자는 아직 변호인을 안 보고 있다.
    의도적인 이슈를 가진 영화라는 판단이 서면
    안보는 영화관람 버릇이 있기도 하지만,
    영화계 정치 양아치들이
    누런 이를 실실 쪼개가며
    나를 비웃는 꼬락서니를 생각하기도 싫기 때문이다.


    누군가 그 영화를 이제라도 봐야겠다는 분이 계시면
    필자의 예매권을 5천원에 팔겠다.


    그리고, 그 돈을
    이승만 대통령이나
    박정희 대통령의 영화를 만드는 제작비로 보태는 것이 낫다.
    이 영화를 본 보수우파 사람들이 백만 명이라고 봤을 때
    그 돈만 모아도 80억이다.


    그 금액이면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영화를
    블록버스터로 만들 수 있는 돈이지만,
    점잖고 순진하신 우파 사람들은
    영화계 좌파 정치인들의 기름진 배때기에 들이부어주고 계신다.

    이러니 어느 젊고 능력 있는 영화인들이 보수우파로 오겠는가?

    필자처럼 머리에 총맞은 놈이 아니고서야 말이다.
    분명 필자는 변호인을 보지 않았다.
    그러니 변호인에 대한 영화평은 쓸 수가 없다.
    영화를 보면 가능한 영화적으로만 판단하는 것이
    내 숙명이기도 하니 말이다.


    지금 필자가 하는 얘기는 <변호인>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추억을 끄집어 내는 것이다.
    1년 2개월 전, 단 한번 승리했을 때의 그 기뻤던 날을 말이다.

     
    보수우파라 자처하시는 분들이시여!
    영화 <변호인>을 보고
    화를 내지도 말고,
    비판하지도 말라!
    그래 봤자 저들 배만 불려주는 것이고,
    흥행을 도와주는 결과밖에는 제공해주지 않는다.


    그 영화 아니어도 볼 영화는
    태평양 모래알만큼이나 널리고 널렸다.

    영화의 흥행여부는
    오롯이 관객에게 맡겨두고,
    자신들의 할 일을 하라!
    저들이 노무현을 만들었다면
    여러분은 이승만을, 박정희를 만들면 된다.


    저들이 [부정의 힘]을 얘기한다면,
    여러분은 [긍정의 결실]을 노래하면 된다.
    누군가 와서 잘 만들어주기를 바라지도 말고,
    그런 인력을 키우거나 잘 만들 수 있는 인력들이
    스스로 들어올 수 있도록
    [문화의 기간산업], [우파적 문화시장]을 만들어
    세상에 내어놓아야 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 보수진영 내에 있는
    좌파에서조차 버림받은 문화사기꾼들과,
    문화가 뭔지도 모르면서 문화인이라고 깝치는
    좌파 양아치만도 못한 존재들을 일단 걸려내야겠지만 말이다.

     



  • 변호인의 성공을 보면서
    다시 갈 길이 멀어지고 있음을 느끼는
    한 힘없는 보수우파 영화인의 한숨 섞인 푸념의 긴 글을
    주말에 난방기구도 없는 사무실에 홀로 나와 끄적거려 봤다.

    May The Force be with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