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15편 찍고 싶다", "설국열차는 나의 초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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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봉준호  ⓒ 정상윤 기자
    ▲ 봉준호 ⓒ 정상윤 기자

     

    "남들과 다른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구가 있다."

       - 봉준호


    <설국열차>(감독 봉준호)가 드디어 운행을 시작했다.

    봉준호 감독의 4년만의 복귀작,
    할리우드 스타들의 총출동,
    400억이 넘는 제작비 등으로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설국열차>

    무엇보다도,
    [그의 이름 석자 만으로]
    많은 관객들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설국열차>는 영화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이전 작품과 차별성을 두고 싶어 하는
    그의 의지가 잘 반영된 작품이다.
    <빙하기>, <기차>라는 독특한 소재로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더 이상의 경쟁작이 없어,
    이젠 자신의 전작이 유일한 경쟁작이 되어버린 봉준호 감독.
    하지만 “이제 초기작 중 한편을 찍었을 뿐”이라며 
    한 없이 자기를 낮추는 감독.

    과거보다 현재가, 
    현재보다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봉준호 감독과 
    <설국열차> 개봉을 앞두고
    솔직 담백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 ▲ 봉준호  ⓒ 정상윤 기자
    ▲ 봉준호 ⓒ 정상윤 기자

     

     

    -시사회 이후 나온 리뷰나 평가들은 많이 찾아보았나?

    좋다는 것만 찾아보았다. (웃음)


     

    -인상적인 평가가 있었다면?

    평들 모두 재미있었다.
    트위터에 “시사회 보고 지하철 타고 집에 가는 길인데,
    나도 모르게 앞의 칸으로 가고 있었다”는 글을 봤다.
    어제 왔던 기자의 친구가 쓴 글이라 하더라.
    기관사를 만나러 가는 건지(웃음)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다양한 이미지를 작품에 참고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엔 어떤 이미지가 영감을 주었는지?

    이번 영화는 원작 만화가 있다.
    한 번은 세트디자인 때문에
    미술감독이 공간에 관련된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오히려 공간이 아니라 어떤 아줌마에 관심이 갔다.
    사진의 중심에 서 있던 아줌마였는데
    그 인물에 관심이 가서 <틸타 스윈튼>에게 보여줬더니 좋아했다.
    그게 <메이슨>의 모델이 되었다.
    또 사진집 <children in the labor>을 참고했다.
    이외에도 기차만 찍는 사진작가들이 있다고 들어서
    그 작가들의 작품집도 참고 했다.

     

  • ▲ 봉준호  ⓒ 정상윤 기자
    ▲ 봉준호 ⓒ 정상윤 기자

     

     

    -감독님이 생각하는 기차의 모델이 있다면?

    우리는 여객선, <퀸 엘리자베스호> 같은 것을 떠올렸다.
    그런 여객선은 떠다니는 호텔 같은 느낌이었다.
    <괴물> 프로모션차 호주에 갔을 때
    시드니에 정박해 있던 거대한 선박을 본 적이 있었는데
    압도적인 위용에 놀랐던 적이 있다.
    이것(기차)은 여객선의 느낌을 잘게 썰어서
    일직선으로 펴면 어떻게 될까를 고민한 것이었다.
    표면적으로 <윌포드>가 노아의 방주를 만든 것이긴 하지만
    외관은 날렵한 여객선 같은 느낌이었다.
    세 명의 컨셉츄얼 아티스트가 있었는데, 여러 모델을 그렸다.
    그들은 방금 얘기한 하얗고 날렵한...
    그런 쪽으로 디자인을 몰아가서 제작하게 됐다.
    엔진 내부도 디자인 드로잉을 여러 가지로 했다.


     

    -기존 작품에 비해 달라졌다.
    플롯은 단선적인데 비해 주제는 노골적이다.
    텍스트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 변화가 생겼다.
    심경, 생각의 변화가 있었나?

    원작 만화를 발견했고,
    주어진 소재나 스토리와 정면 대결하면서
    매번 상황에 맞게 만들어 나간다.
    정해진 작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인물이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건데,
    기차가 일직선이고 앞으로 치고 나가다 보니... (그렇게 볼 수도 있다.)
    <커티스>의 관점, 그것만 보면 단선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 생각한다.
    <남궁민수>가 생각하는 비전, 그 레이어가 있으니까.
    그것이 크로스 되는 지점에서 오묘한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남궁민수>의 캐릭터가 약하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는가?

    한 템포 밖에서 보면 커티스의 스토리가 메인 플롯이고
    <남궁민수>는 계속 (기차)밖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남궁민수>의 personality(성격)가 드러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단순히 약쟁이 같기도 하고.
    어떤 인물이 정확하게 묘사가 된 것은 <커티스>와 <길리엄>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남궁민수>의 서브플롯을 논하기 이전에
    <남궁민수> 그 자체가 서브플롯이라 생각한다.
    <남궁민수>가 (기차)바깥에 대한 이야기의 맥을 조금씩 짚어 오다가
    마침내 자기 비전을 <커티스>와 앉아서 드러낼 때
    그게 메인 플롯과 서브플롯의 교차점이라고 생각한다.
    뭐, 기능적이라면 기능적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시나리오에서 <남궁민수>와 관련된
    디테일과 개인사에 관련된 가지를 좀 더 뻗어 나가 본 적도 있었다.
    특히 frozen7이 나오는데, 제일 앞에 있는 여자를 이야기 할 때,
    남궁민수의 아내이자, 요나의 엄마라고 생각하고 찍었다.
    그것을 더 파고들면 <남궁민수>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가지의 가지를 더 친 느낌이라...(마음에 들지 않았다.)
    또 (등장)인물이 많다. 그 밸런스를 송강호와 상의 했던 것 같다.
    나는 그게(현재의 밸런스가) 
    이 영화의 전체적인 배치나 흐름에 맞지 않나 생각한다.
    또 <남궁민수>도 별도의 시간을 할애해서
    미드의 한 회차 분량처럼 하나의 챕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남궁민수>란 캐릭터에 대해 관객이 신경 쓰지 않게 만들고 싶었다.
    그러다 결정적인 시점이 왔을 때
    더 큰 비전을 제시하는 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의 결말과 관련된 부분은 <남궁민수>가 책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커티스>는 개인적인 구원을 얻긴 했지만
    오히려 허무한 여정을 한 것일 뿐이다.

     

  • ▲ 봉준호  ⓒ 정상윤 기자
    ▲ 봉준호 ⓒ 정상윤 기자

     

     

    -전작과 차이점을 보인다.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점에서 쾌감이 있지 않았나?

    늘 영화를 할 때마다
    새로운 주제, 인물, 사건을 맞닥뜨리니까
    그게 영화를 하는 맛이다. 물론 이번에는 그 차이가 크다.
    우선, 영어 대사로 된 영화고, 외국 배우들이 나오고, 설정들도 독특하지 않나.
    이런 걸 언제 또 해보겠나 생각했다.
    앞의 작품들과 차이가 클 수밖에 없는 영화다. 또 그러려고 했고.
    프랑스 원작만화에 영어 대사에 sf영화고 설정도 독특하다.


     

    -만약에 감독님이 17년 후 이 기차를 탄다면
    어느 칸에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세트에서 일을 하며 여러 가지를 생각해 봤다.
    세트 정도만 되도 만화책이나 DVD를 갖고 타게 된다면
    내리지 않고 한 6개월은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수영도 하고 수족관도 보고 사케랑 회도 먹고 식물 칸에서 낮잠도 자고.
    하지만 꼬리칸에서는 이틀밖에 못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꼬리칸도 빈티지한 카페처럼 생각하고
    악취만 없다면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웃음)
    부자들 세트를 보며 “야 얘네들은 살만 하겠다” 생각했다.
    안 가본 칸이 있다면 오래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모든 칸을 다 가보게 되면 우울증이 올 것 같다.
    꼬리칸에 있던 사람들이 버틸 수 있던 이유가
    바로 그게 아닐까 생각해 본 적도 있다.
    앞을 향해 가겠다는 열망이 여전히 있기 때문에
    꼬리칸 사람들은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문을 열 때마다 새로운 칸들이 나오고.
    <커티스>는 제일 앞 칸까지 갔을 때 내적으로 무너진다.
    더 이상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윌포드>는 그 틈을 파고들어 악마 같은 귓속말을 한다.
    그때 처음으로 커티스는 뒤를 돌아보게 된다.
    또 <커티스>가 처음 왔을 때
    <윌포드>는 당신이 인류 최초로 전 구간을 거친 사람이라고 말한다.
    <윌포드>는 꼬리칸 쪽을 못 가봤고.
    그때부터 이미 <커티스>에게는
    [우울한 붕괴의 그림자]가 다가온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디든 안 가본 칸이 있어야 정신적으로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야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소문도 만들어 낼 수 있고.


     

    -메인 캐릭터는 벗어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인데
    감독님의 욕망이 발현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영화든 인생이든 벗어나고 싶은 것은 없나?

    영화에 앞으로 나가고 싶은 사람도 있지만
    <윌포드>나 프로틴 블록 만드는 사람처럼 머물러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학교 나가기 싫었고
    군대 있을 때는 군대에서 나가고 싶었고, 잘 모르겠다.
    이제 영화계를 떠나고 싶은 건가?(웃음)
    그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 아닌가?
    동시에 주어진 환경이나 시스템에 얌전하게 적응하며 살고 싶은 마음도 있지 않은가.
    난 두 가지 캐릭터 모두 있다.
    예전의 선배 감독이 말한 거 같은데,
    영화는 항상 새로운 과제와 인물에 맞닥뜨리게 된다.
    매번 새로운 주제나 스토리와 대결해야 하기 때문에
    그게 좋은 점이면서도 힘들고 버거울 때도 있다.
    나도 두 가지 욕망이 다 있고, 영화 속 인물도 그럴 것이다. 
    벗어나고 싶은 것은 잘 모르겠다.
    내 작품들이 각각 달랐던 것 같지만
    어떤 영화랑 비슷할까 찾다 보면 별로 비슷한 것은 없었다고 본다.
    옆집 강아지 죽이는 영화를 누가 찍겠나?(웃음)
    첫 단추부터 이상하게 끼운 것 같다.
    범인이 안 잡히고 끝나는 스릴러 영화.
    동네에서 괴물이 나오고, 플롯도 이상하고,
    가족 중에 한 명을 괴물이 데리고 가는 거 아닌가. 괴물에 의한 유괴영화다.
    이것도 이상했던 것 같고,
    즉, 남들과 다른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구는 있다. 

     

  • ▲ 봉준호  ⓒ 정상윤 기자
    ▲ 봉준호 ⓒ 정상윤 기자

     

     

    -(의미 없는)헛소동에 끌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떻게 보면 커티스의 전진이 의미 없는 헛소동 같다.
    커티스의 [혁명]이라는 게 <윌포드>의 계획에 다 있었던 것은 아닌가?

    진짜 혁명내지는 탈출이 무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남궁민수>가 위대하다는 것만은 아니다.
    커티스가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결국 허무한 좌절에 부딪칠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 같다.
    결국 가장 큰 비전을 갖고 있던 인물은 <남궁민수>라고 본다.  


     

    -쇼트(shot) 구성에 있어 어떤 부분에 신경 쓰는가?

    쓸데없는 것은 안 하려 한다.
    어느 상황을 최소한의 쇼트로 묘사하려 한다.
    쇼트를 덕지덕지 쪼개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내 5편의 영화 중 가장 쇼트가 많았던 영화가 이번 영화다.
    1500커트 정도? 내 영화들이 1000개 이내의 쇼트로 이뤄져 있다.
    괴물도 8백 몇 십 컷이었다.
    일반 영화들의 쇼트 수보다 적은 편이다.
    그 말인즉슨, 쇼트 내에서 카메라 이동이나
    배우들의 움직임이나 리듬의 흐름이 많다는 얘기다.
    많이 쪼개거나 전형적인 샷 리버스 샷을 잘 쓰지 않는 편인데
    이번에는 기차라는 공간이 특수해서 신경이 쓰였다.
    공간에 의해 스토리 보드가 지배를 많이 받는데 기차는 아주 특수한 공간이다.
    기차라는 게 사실 제약이 많은 공간이다.
    칸을 바꿔 전진을 하고 배우가 많다보니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 거지
    카메라의 앵글을 놓고 봤을 때는 계속 같은 구조의 공간을 반복하는 것뿐이다.
    그게 스토리보드를 만들 때 실질적인 공포로 다가오는 부분이었다.
    그것을 배우들의 다양함이라던가, 아트 디렉팅의 변화라던가, 색채의 변화라던가
    그런 온갖 장치들을 동원해서 극복하고자 했다.
    사실은 어려운 면이 있다.
    <김지운> 감독이 [경고]를 했던 적이 있다.
    <놈놈놈> 촬영 당시 기차 신이 있었다고 들었다.
    15분 20분짜리 시퀀스인데 그때 애를 많이 먹었다고 들었다.
    앵글도 다양하게 하기가 힘들고.



    -공간의 느낌이 잘 산 부분은?

    기차에서 해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려 했다.
    기차에서 쫓고 쫓기건, 서로 싸우건 간에 모든 것을 다해보자고 생각했다.
    기차가 곡선주로를 달릴 때, 다른 칸에 있는 두 사람은 마주 볼 수 있지 않은가.
    두 사람이 다른칸에서 총을 겨누는 식의 웨스턴 같은 느낌도 만들어 보고 싶었다.
    또 횃불 신이 기억에 남는다.
    제일 처음 발상을 했던 계기는 커티스가 한 칸 한 칸 앞으로 전진해 나가는데
    무언가를 꼬리칸에 놓고 왔다면 어떻게 할까? 
    릴레이 하듯이 하면 어떨까? 하다가 아이디어가 나오게 됐다.
    올림픽 성화 봉송신을 찍어보자 해서 찍게 됐다.
    기차 안의 모든 불이 꺼지고 터널 안을 달리면
    얼마나 답답한 무시무시한 암흑일까 생각했다.
    그 생각도 재미있었는데 그 상태에서 횃불만 달리면 더 좋을 것 같았다.
    찍을 때도 고생내지 흥분을 했지만
    기차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아이디어를 총동원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 ▲ 봉준호  ⓒ 정상윤 기자
    ▲ 봉준호 ⓒ 정상윤 기자

     

     

    -<김지운> 감독에 의하면 블록버스터를 찍는 감독들은
    나름의 쾌감과 절망이 있다고 하던데?
    쾌감과 절망이 교차하는 순간은 언제였는지?

    횃불 신을 찍을 때 쾌감이 있었고,
    몸은 힘들었는데 이상한 충동감이 있었다.
    조명을 하나도 안 썼다.
    모두 횃불로 조명을 대신했다.
    인물들 얼굴에 닿는 빛도 횃불이었다.
    예를 들어 커티스를 가까이서 찍을 때
    인물에 주는 조명도 카메라 옆에 있던 횃불이었다.
    열이 확확 느껴졌다.
    기차 세트에 그런 횃불이 여러 개였다. CG도 안 썼다.
    횃불이 수십 개가 타고 있다고 생각해봐라. 연기도 올라오고.
    원시적인 분위기였다.
    컷하고 횃불을 다 끄면 일시적인 암흑상태가 되고
    그때 무시무시한 [흥분감]이 있었다.
    또 실제 오스트리아 산악지대에서 찍은 적이 있었는데
    실제 눈을 밟으면서 찍을 때 묘한 느낌이었다.
    요나가 마지막에 기차 밖으로 나가는 그 신이
    바로 그곳에서 촬영한 장면이다.
    설원에서 처음 찍어본 건데. 기분이 묘했던 것 같다.
    절망은... 하루하루가 절망이었다.
    "야, 이거 어떻게 찍지?" 계속 이런 생각을 했다.(웃음)


     

    -2012년 인터뷰를 보니
    영화 그만두면 뭐할까 이런 생각을 유달리 많이 했다고 하던데
    왜 그랬는지?

    나이가 45세가 돼서 그런 건가?(웃음)
    그러긴 너무 이른데. 임권택 감독님도 계시고.
    이런 말 한 거 알면 혼날 거 같다.(웃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체코에서 나 딴 거 해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영화에 내가 삐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웃음)
    나만 영화 좋아하고, 영화는 날 안 좋아하고. 영화학도들이 자주하는 투정인데.(웃음)
    (여담이지만)체코에서는 요리를 많이 했다. 숙소에서 요리를 직접 해 먹었다.
    장도 직접 봐서, 고기랑 소시지 사서 해 먹었는데
    나중엔 거기에 집착하게 되더라.
    촬영장에서 오늘 뭐, 뭐 장봐서 들어가야 하지 이런 생각하게 되고.
    생전 처음 겪어보는 이상한 정신적 현상들이 있었다.
    외국에서 10개월을 살아서 그런 건지.
    객지 생활을 오래해서 그런 건지.
    홍경표 감독에게 돼지 편육을 대접하기도 했다.


     

    -그만 둔다면 뭘 하고 싶나?

    만화가가 되고 싶다.
    어릴 때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 ▲ 봉준호  ⓒ 정상윤 기자
    ▲ 봉준호 ⓒ 정상윤 기자

     

     

    -고등학생떄 어떤 학생이었나?

    변태적인 학생이었다.(웃음)
    물론 큰 사고를 치지는 않았다.
    바퀴벌레를 키운 적이 있었다.
    살던 곳이 바퀴벌레가 많기로 악명이 높은 곳이었다.
    거의 10년을 살았는데, 바퀴벌레가 너무 많이 나왔다.
    너무 싫었다. 바퀴벌레가 나오면 잡는 게 싫어서
    항상 유리병을 덮어서 기어오르면 뚜껑을 덮었다.
    그것을 모아 변기에 버리곤 했다. 
    그것들을 보면서 이렇게 흉악한 피조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20대에는 KP라는 조직을 만들어 놀았다고 하던데?

    아니 어디서 그런 정보를...(웃음)
    추악한 과거를 뒷조사 하셨는지... 부끄럽다.(웃음)
    KP가 무슨 약자인지 아는가?
    깽판의 약자다.(웃음) 지금 생각하면 너무 창피한데...
    사회학과 동기들과 술 먹고 남의 차에 올라가서 노래하고 하여튼 깽판을 쳤다.
    그땐 왜 그랬는지 정말 창피하다.
    예를 들면 이런 걸 한 적이 있었다.
    젊어서 힘은 넘치고 할 짓은 없어서 그랬을 거다.
    대학 원서 접수할 때, 마감시간이 되면 학부모랑 학생들이 원서봉투 들고 뛰고,
    셔터 내리고 그러지 않는가.
    거기 괜히 가서
    아저씨에게 "원서 접수해야한다"고 사정하고 극적인 순간들을 연출하고 그랬다.
    이미 대학을 다니고 있으면서 친구들과 재수생인 척 하면서
    “문 열어달라”고 “대학가고 싶다”고 하면서 난동을 부렸던 것이다.
    그러면  MBC나 KBS 같은 방송국에서 우리를 카메라로 찍고 있고,
    우리들은 뒤에서 "와 리얼하다" 이러고 있고.
    이런 식으로 놀았다. 아... 부끄럽다. (웃음)


     

    -본인은 성공한 사람이라 생각하는가?  

    평생 15편을 찍는 것이 목표다.
    설국열차까지가 나의 초기작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아직 성공을 논하기엔 이르다고 생각한다.


     

  • ▲ 봉준호  ⓒ 정상윤 기자
    ▲ 봉준호 ⓒ 정상윤 기자

     

     

    -문신이 인상 깊다. 언제 한 것인가?

    <마더> 때 한 것이다.
    홍경표 촬영 감독의 추천으로 한 것이다.
    <마더>에 나무가 나온다.
    <김혜자>가 <원빈>을 면회하고 버스타고 나올 때 나무를 보는 장면이 있다.
    그 나무를 전남 장흥 근처에서 발견했다.
    나무가 참 예쁘다. 서 있는 위치도 묘하고.
    기념으로 그 나무를 모델로 (문신을) 했다.


     

    -다른 영화의 장르를 할 생각은 없는지?

    뮤지컬을 제외한 모든 장르를 해보고 싶다.
    멀쩡히 이야기하다 노래하는 것이 뭔가 보기 어색하다.
    레 미제라블은 차라리 노래하니 괜찮은데
    아닌 척 하다 갑자기 노래하고 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좀 그렇다.(웃음)

     

     

    [ 사진= 정상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