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명 정치인도 ‘북한공작원’을 신고하지 않았다

  • [아무도 나를 신고하지 않았다] 책 제목이 충격적이다.
    제주도에서 서울까지 전국을 돌아다닌 북한 공작원 김동식씨가 만난 사람들은 누구도 그를 당국에 신고하지 않더라는 이야기다. 19세에 대남공작원으로 선발되어 15년간 남한침투, 포섭공작, 비밀지령 수행, 총격전 끝에 잡히기까지 솔직하고 담담하게 풀어낸 자전적 리얼 다큐!
    “나는 북한에서 한순간도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아 본 적이 없다. 그 15년은 목숨을 내놓은 사자(死者)의 삶이었고 칠성판을 들에 진 산송장 같은 죽음의 세월이었다.”
    한국의 5공시절 ‘주사파 운동권’이 등장했던 1982년 시작된 대남공작의 과거사는 그대로 입체적 증언이 되어, 북한 전략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한국정치상황의 격변과 맞물려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유명인사들과의 접촉공작의 현장을 보여주며 진실을 밝히는 역사적 증언으로 충격을 더 한다.
    그는 1990년 5월 제주도 서귀포 해안에 잡입, 당시 중앙무대서 활동하던 거물 여성간첩 이선실(본명 이선화, 북한 권력서열19위)을 접선해 월북시켰으며 운동권 인사들을 포섭한 공적으로 그해 10월24일 북한에서 20대 젊은이로선 드물게 ‘공화국 영웅’ 칭호 및 1급훈장을 받았다. 이선실은 ‘이선화’라는 가명으로 [한겨레] 신문에 기고도 하고 [민중당 창당 발기인]으로 활약했다. 그녀는 일찍이 제주도 4.3폭동의 주역인 김달삼의 지도를 받았으며 태백산 빨치산에 들어가 남한 각지의 게릴라 활동에도 참여한 70대 원로간첩이었다.
    5년후 저자는 다시 제주도 해안으로 침투하여 10명의 한국 인사들을 포섭하는 공작을 벌였다.
    [유명 정치인과 핫 라인을 구축하라]는 김정일의 명령을 받고 내려와서 ‘민주화 투쟁’으로 이름 날린 정치인들을 만났지만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엔 가벼운 대화를 나누다가 ‘북에서 온 연락대표’라고 신분을 밝혀도 거부감을 나타내지 않고 오히려 불편한 점은 없느냐면서 호의를 베풀었다”는 증언, 386세대를 포섭하여 ‘동부 지하당’을 구축하기 위해 활동했던 일, 당시 운동권단체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와 ‘전대협동우회’ 사무실이나 월간 ‘말’지 편집실을 출입하면서 남한의 지하조직과 암약했던 증언들이 놀랍고 생생하다.
    특히 이 책은 저자가 대남공작원으로 양성되는 북한교육 실태를 한눈에 보여준다.
    ‘남조선 사람이 되어라’ ‘서울 말을 배워라’ ‘교수 뺨치는 학식을 익혀라’등 간첩교육과, 천리  무장행군등 어떤 위기에서도 살아남는 툭수훈련, 김정일정치군사대학에서 1년간 ‘적구화 교육’ 즉 ‘한국화 교육’의 실상들, 남한 해수용장에서 납치해간 고등학생출신 강사 이야기도 나온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처럼, 시장이나 백화점에서 흥정하는 법, 관광지 교통 이용법, 고스톱도 칠 줄 알아야 한다, 한국 노래 100곡 배우기’등등을 마친 후에야 담당지도원으로부터 “이제 공작원이 되었군”이란 합격판정을 받기에 이른다.
    임수경의 에피소드도 소개한다. 88년 서울올림픽에 대항하여 평양에서 개최한 ‘세계 청년학생 축전’에 불법입북하여 참석한 임수경은 대회장 입장할 때 김일성-김정일 앞에서 멈추더니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하여 군중들이 기립박수를 쳤다고 한다.
    저자는 충남 부여의 사찰 정각사에 은신중인 ‘봉화 1호’ 자운 스님을 만나러 갔다가 경찰대와 총격전 끝에 다리에 관통상을 입고 체포된다.
    “다시 태어난 인간, 평범한 인간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달은 이제 ‘덤으로 사는 인생’을 봉사하면서 살고 있다”는 저자는 남한서 결혼하여 아들 2명을 낳았다.
    “단언컨대 한국의 군사독재가 아무리 심했던들 말한마디 때문에 처형되는 북한과는 비교하지 말라. 박정희 욕했다고 사형받은 사람이 있는가.” 저자가 책을 쓴 이유다.

    저자: 김동식

    1962년 황해도 용연 출생. 1985년 김정일 정치군사대학 졸업.
    1981~1995년 북한노동당 대외연락부 대남공작원 활동
    1999년 국군기무사령부 분석관. 2008년 국가안보연구소 연구위원.
    2013년 북한대학원대학교 졸업, 북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