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통일은 인권통일

    탈북자 100만 명 데려오면 휴전선은 절로 열릴 것이다.

    최성재     
     


  •    서독(FRG)과 동독(GDR)은 1949년에서 1990년 사이에 존재했던 역사상의 두 국가이다.
    1950년부터 1990년까지 두 국가의 인구 변화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2차대전 패전 후 생활공간(Lebensraum)이 대폭 축소되면서 게르만족은 대거 고향으로 돌아간다. 1945년부터 1950년까지 서독에 790만, 동독에 360만이 밀려온다. 각각 전체 인구의 16%, 20%나 이르렀다. (여기 인용된 인구 통계는 Rainer Münz와 Ralf E. Ulrich에 따름.) 건국 당시만 해도 이주민의 인구압은 동독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것이다. 그러나 ‘고향 앞으로’의 흥분이 가신 후, 동독에 철의 장막이 드리워지면서 더 이상 동독은 인구가 늘지 않는다.

      동독은 1950년 현재 인구가 1840만이었지만 1990년 현재 1610만으로 230만이나 줄어든다. 반면에 서독은 같은 기간 5000만에서 6370만으로 1370만이나 늘어난다. 공자와 맹자도 말했듯이 인접한 국가 사이의 인구 이동은 민초의 발 투표이다. 못된 정권일수록 민초에게 족쇄도 잘 채우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 발 투표의 도도한 물결은 막을 수가 없다.

      게르만족의 대이동은 동구 공산권과 소련 이어 러시아에서 1950년부터 1994년까지 320만이나 이어진다. 동독에서도 서독으로 대거 몰려간다. 1945년부터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는 1961년까지 380만이나 멀리 30년 앞 인권통일을 내다보고 허겁지겁 이동한다. 유물론자들은 장벽을 넘는 자는 주인을 배반한 개를 쏘는 증오심으로 사살했지만, 그 이후로도 1988년까지 60만 명이 서독으로 넘어간다. 베를린 장벽이 없었다면, 그 수치는 10배로 늘어났을 것이다. 기간을 1949년에서 1993년 통일 3년 후까지 넓히면, ‘해가 뜨는 동쪽’에서 ‘해가 지는 서쪽’으로 서방정토(西方淨土)를 찾아 580만이 죽으면 죽었지 ‘인민과 노동자가 주인인 땅’에서는 못 살겠다고 갖은 빽을 다 동원하고 갖은 용기를 다 발휘하여, ‘부르주아와 나치 잔당이 설치는 땅’으로 기를 쓰고 달아난다. 어디나 겉똑똑이와 광신자는 있게 마련인가. 82만 명은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공산 햇볕을 쪼이러 간다.

      서독에는 게르만족의 대이동 현상만이 있었던 게 아니다. 부나비처럼 로렐라이의 언덕으로 홀리듯 달려간 게 아니라, 외국인도 젖과 꿀이 흐르는 라인강으로 몰려간다. 베를린 장벽이 쌓일 무렵부터 가난의 질곡을 벗고 부(富)의 설빔을 입고 자유의 투명 망토를 두르려고 터키, 유고, 이태리, 그리스, 스페인 등에서 심지어 머나먼 한국에서도 대거 외국인이 몰려간다. 1996년에는 외국인이 750만에 이른다. 통일독일 인구의 약 10%에 달한다.

      생활공간은 대포와 장갑차와 비밀경찰과 강제수용소로 넓혀지는 게 아니라, 침략 전쟁으로 넓혀지는 게 아니라, 또는 선전선동과 폭력과 거짓으로 넓혀지는 게 아니라, 시장경제와 법치로, 선거와 합의로, 진실과 인권으로 넓혀진다는 것을 독일연방공화국(FRG)은 독일민주공화국(GDR)에게 생생히 보여 주었다.

      북한은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다. 평양 시민이 아니면 특별 허가를 받지 않는 한, 기차에서 잠시 평양역에 내리지도 못한다. 사실상 북한은 230개의 국가로 분열되어 있다. 이런 곳에서 허가 없이 외국에 간다는 것은 빠삐용이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것보다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주민등록번호를 받은 탈북자가 2만 5천을 헤아린다. 탈북 고아들이 10만 리나 걸어갔다가, 한국 대사관의 20여년 복지부동으로 붙잡혀 가기도 한다.

      김정일과 김정은만이 아니라, 강택민과 호금도와 습근평, 김영삼과 김대중과 노무현과 이명박은 도도한 탈북자의 흐름을 암거래 댐으로 가로막은 자들이다. 북한 독재자는 인간 악마니까 그렇다고 치자. 입만 떼면 민주와 인권을 부르짖는 자들이 탈북자는 왜 눈엣가시처럼 대하는가. 죽음의 고비를 넘고 넘어 코앞에 나타난 경우만 세상눈이 무서워 받아주는가.

    동아시아의 천자 노릇하는 자들이야, 여전히 공산당 1당 독재체제라서 그렇다 치자. 18년 동안 단 하나밖에 없었던 의문의 죽음을 두고도 (6.15공동선언 이후에는 의문의 죽음이 수십 건이지만 감히 조사란 말도 못 꺼낸다만), 아무리 죽은 자를 죽이고 또 죽여도 고의성의 물증이 안 나타나는 죽음을 두고도, 선거 때마다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자들이 왜 생사의 기로에 선 수십만 탈북자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데려오는 경우가 단 한 명도 없는가. 그들의 말은 아예 들으려 하지 않는가. 그들이 속엣 말을 하면 배반자나 되는 듯, 통일의 장애라도 되는 듯 목소리를 낮게 깔면서 밤길을 협박하는가. 북한인권법은 왜 기를 쓰고 방해하는가.

    서독은 정치범, 양심수만 해도 3만 4천 명이나 동독에서 돈을 주고 빼 왔다. 동방정책 아래서도 서독은 인권만큼은 절대 양보하지 않았다. 자유 없는 통일은, 인권 없는 통일은 안 하느니보다 못하다는 것을 여야가 공유했던 것이다. 편지, 전화, 친척 상호방문 등은 동독의 공산당을 압박하고 푼돈으로 삶아 무제한 허용하게 만들었다. 유물론자들이 절대 지킬 리 없는 거창한 공동선언 따위는 함께 발표한 적이 없다. 대신 베를린 장벽 이후에도 서독은 60만 명에게 새로이 생존과 인권을 보장했다. 그들의 비밀을 철저히 지켜주고, 그들이 알려준 귀하디귀한 첩보와 정보를 철저히 분류하고 거르고 종합하여 자유통일에, 인권통일에 대비하고, 그들이 조국에서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마침내 동독의 국경이 쥐구멍만큼 열리자 자유통일의 기회가 왔음을 직감하고, 18년 외무장관 디트리히 겐셔는 마르크화를 섭섭지 않게 들고 가서 특별 전세기에 그들을 전원 싣고 왔다. 그러자 이웃 나라들은 국경을 아예 열어 버렸고, 그곳으로 동독인들이 물밀 듯이 몰려갔다. 겐셔는 자유통일, 인권통일의 인류사적 쓰나미에 물꼬를 튼 것이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탈북자가 쏟아져 나간 1990년대 이래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탈북자의 인권에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누구처럼 지하벙커에 숨어서 예단 말라며 국민의 눈과 귀를 속이고 침략자와 그 우호세력에게 아첨한 게 아니라, 탈북자 18명이 라오스의 안가에서 나와 마지막 한 명까지 한국 대사관에 발을 들여놓을 때까지, 인권 대통령은, 헌법수호 수문장은, 7천만의 생명 지킴이는 지하벙커에서 노심초사 어머니의 심정으로 탈북자 수송 작전을 진두지휘했다.

      2013년 6월 27일 한중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주석 습근평을 조근조근 설득하여 한국에 탈북자를 전원 데려올 수 있게 하면, 그렇게 하여 5년 안에 100만 명의 탈북자를 한국에 데려오면, 북핵은 절로 녹아 버리고 휴전선은 절로 열릴 것이다. 중국도 일약 인권 국가로서, 또 하나의 세계 국가로서 명성을 떨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