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6은 동네북, 5.18은 성역

    5.16은 7천만 누구나 두드려야 하는 동네북이지만,
    5.18은 7천만 누구나 최고존엄으로 경외해야 하는 성역이다


    최성재     
      
      2012년 한국의 대중매체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숫자는 아마 5.16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노무현당 또는 김대중당의 꽃놀이패였다. 그들의 정치 감각으로는 박정희의 딸이자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대선 후보를 흠내기에 그보다 좋은 묘수는 없었다.

    “5.16이 쿠데타일까요, 혁명일까요?”


    쿠데타라고 답하면 아버지를 부인하는 패륜(悖倫)이 되고, 혁명이라고 하면 민주주의를 부인하는 반역(叛逆)이 되는 꽃놀이패였다. 그들은 덫에 걸린 암호랑이를 보는 희열을 느끼며 집요하게 이 질문을 되풀이했다.

    역사 바로 세우기와 제2의 건국으로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의 원칙과 공소시효의 만료가 김영삼당과 김대중당에 관한 한 적용되지 않게 되어, 어제의 역적이 오늘의 영웅이 되어 부정적 연좌제가 긍정적 연좌제로 깃발을 날리며 국물의 국물이라도 튄 사람들은 하다못해 대학진학이나 취업에서도 특혜를 받게 되었지만,
    부정적 연좌제는 그들에게 절대 적용되지 않지만,
    어제의 영웅은 오늘의 역적이 되어 그 자손과 지나가는 사람 1, 2, 3의 자손에게조차 부정적 연좌제가 어김없이 적용되어 자신과 아무 관련이 없는 일에 대해서, 범김대중당이 붉은 양심에 따라 잘못이라고 단정하는 일에 대해서 원죄를 덮어쓰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역사적 판단에 맡겨야지요. 두 개의 판결이 있지요, 아마.”

    골백번 곱씹고 수천 번 예행연습 끝에 그가 이렇게 한 수 늘어진 패를 두자, 즉시 비난의 화살이 적벽대전의 화살처럼 쏟아졌다. 조선과 동아마저 5.16은 헌법을 유린한 쿠데타로 확신하는 만큼, 거사 당일에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었거나 말거나, 후에 세계가 찬탄하는 한강의 기적을 낳았거나 말거나,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상대적 기준으로 보면 전 세계 개발도상국 중에서 최고 수준의 법치와 자유민주를 정착시켰거나 말거나, 18년 만에 경제와 정치뿐 아니라 사회와 문화 모든 면에서 북한을 비교 자체가 민망할 정도로 압승했거나 말거나, 그것과는 무관하게 조선과 동아마저 5.16을 군사 쿠데타임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이는 만큼, 대중매체에서 우군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여론이 실시간으로 요동쳤다. 사면초가였다.

    우군은 없지 않되, 표로 보아 어쩌면 더 많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뿔뿔이 흩어져 있거나 그들 중에도 그 수를 시간 벌기로 보고, 기회주의적 처신으로 보고 혀를 차는 이들이 숱했기 때문에, 한 수 늘어진 패는 꽃놀이패의 외통수에서 헤쳐 나오기는커녕 도리어 더 큰 위기를 불러일으켰다.

    결국 원칙의 대선주자는 부글부글 여론에 밀려 또박또박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진정성이 없다면서도 노무현당 또는 김대중당은 5.16이 군사 쿠데타임을 최대의 정적이 인정한 것으로 보았다. 독재자의 딸임을 5천만 앞에서 인정한 것으로 보았다. 그들은 설령 다른 변수로 총선에 이어 대선에서 패하더라도 후에 언제든지 승자를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는 꽃놀이패는 여전히 손에 쥔 셈이었다.

    “5.18은 민주화운동 맞지요? 12.12 신군부 쿠데타 세력에게 짓밟힌 지고지순한 민주혁명 맞지요?”

    95%의 표에 맞설 대선 후보는 없다. 5년 동안 붕대손은 멀리 광주를 향해, 또는 직접 광주를 찾아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동서화합을 누누이 강조했다. 간신히 10%의 벽을 허물었다. 그러나 89.6%는 끝내 5.16 독재와 5.18 민주의 양립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1997년을 마지막으로 유신잔당 또는 유신본당마저 대선에서 사라지면서,
    한국의 문화권력은 범김대중당으로 완전히 넘어갔다.

    386운동권의 대자보 철학은 좌우 막론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 여론주도층의 뇌리에 생각의 뿌리로 자리 잡았다. 총선이나 지방선거, 또는 대선에서 김영삼당이나 박정희당이 승리하더라도 친북좌파가 장악한 문화권력은 바위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그 바위가 바로 5.18 광주사태이다. 5.18 광주사태는 카바 신전처럼 신성불가침의 성역(聖域)으로 자리 잡았다. 그 앞에서는 누구나, 믿든 안 믿든, 거지든 나그네든 강도든, 모름지기 지나가는 자는 누구나 옷깃을 여미고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글썽이며 고해성사(告解聖事)를 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의 알파요 오메가라고 갓난아기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신앙고백을 해야 한다.

    역사로 공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진실과 거짓을 밝히는 일은 그 앞에서 있을 수 없다.
    그런 생각 자체가 신성모독(神聖冒瀆)이다. 역사로 연구하는 게 아니라 종교로 숭배해야 한다.

      “뭐, 카빈총에 죽은 사람이 80%나 된다고?”

    그건 신군부의 조작이다!

      “뭐, 북한군 특수부대가 600명이나 왔다고?”
    헛소리하는 A방송과 C방송은 즉시 무릎을 꿇어라!

    진실을 왜곡하는 자들은 독재잔당일지니, 모조리 재판에 회부하겠다!
    보라, 저들도 즉시 사과하고 저들의 모기업도 즉시 준엄하게 유언비어를 꾸짖지 않느냐!

    “성역화와 민주화는 양립할 수 없다고?”

    불자가 부처에게 욕하고, 예수교인이 예수를 욕하는 것도 민주화냐! 제 어미 아비에게 욕하는 것도 민주화냐!

    “진실은 의심의 화로와 검증의 모루를 거쳐야 더욱 단단해지지 않느냐고?”

    전두환 패거리의 외압으로 왜곡된 판결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의심은 모조리 불탔고 거짓은 남김없이 검증의 모루에서 아작(박살)났느니라!

    “왜 망월동에서 독재의 독재 북한의 노동당 간부와 함께 임의 행진곡을 불렀냐고?”

    6.15공동선언의 정신에 따라 민족대통합 차원에서 그렇게 한 것이니, 짭새(참새)의 마음으로 어이 대붕의 마음을 알까!

    “수사기록을 18만 페이지를 10년간 연구한 사람이 있다고,
    80만 페이지의 (유네스코) 기록을 20년간 연구한 사람도 있다고?”

    정답을 정해 놓고 18만 페이지든, 80만 페이지든 읽으면 무슨 소용이랴!
    네 이놈,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려라! 몽땅 잡아들이리라!
    민주동지들이여, 신고하라! 모조리 신고하라! 남김없이 신고하라! (2013. 5.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