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명진의 ‘슬픔만은 아니겠죠’

    이현표 /뉴데일리 논설위원(전주미한국대사관 문화홍보원장)



  • [노래]란 가사에 가락을 붙인 음악의 형식을 의미한다.

    우리말,
    흙을 [갈다]에서 [가래],
    [막다]에서 [마개]라는 낱말이 나왔듯이,
    [노래]는 [놀다]라는 동사에,
    접미사 [애]가 붙어서 나온 단어라고 한다.

    독일의 음악교육학자 프리드리히 클라우스마이어(Friedrich Klausmeier)는
    “인간이 악기를 다루는 것은 일종의 놀이이며, 이를 통해 본능적인 욕구에서 벗어나, 운동을 자극하고 에너지를 분출한다.”고 지적했다.

    흥미 있는 사실은 그는 기악(器樂)을 놀이로 본 반면,
    우리 민족은 오래전부터 성악(聲樂),
    바로 노래를 놀이로 보았다는 점이 특이하다.

    우리 민족이 놀이로서의 노래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지금과 같이 노래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때는 없었지 않았나싶다.

    케이블 TV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지상파 방송의 시청률을 능가하고,
    대한민국 최장수 TV프로가 바로 KBS <전국노래자랑>이다.
    그뿐인가? ‘K-POP’이 동양을 평정하더니,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전 세계인을 열광시키지 않았는가? 

  • 오늘날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우리 대중가요의 생명력이 길고 짧음을 떠나,
    불과 20년 전만해도,
    서양의 팝이 우리 젊은이들의 전유물이었던 것과 비교해보면,
    오늘의 현상은 매우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가운데,
    KBS-2TV는 2011년부터 우리 가요계의 명곡들을 재해석해 관객 투표로 경합을 하는,
    독특한 프로를 방영하고 있다.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가 그것이다.

    초창기에는 아이돌 위주로 출연했지만, 이제는 젊은 실력파 가수들 위주로 진행된다.

    2013년 4월 6일 방영된 <불후의 명곡>에는,
    문명진이라는 무영 가수가 등장해 <슬픔만은 아니겠죠>라는 노래를 불러 화제를 모았다.
    비록 문명진의 <슬픔만은 아니겠죠>는 이날 경합에서 패했지만,
    인터넷 동영상을 통해서 네티즌들의 좋은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우선 유튜브에 게시된 동영상을 감상해보기로 하자.
    http://www.youtube.com/watch?v=93SX0vRN9TE

  • <슬픔만은 아니겠죠>는 2인조 포크 그룹 <해바라기>가,
    1988년 발매한 제4집 음반(서라벌 레코드)의 타이틀곡이다.

    <해바라기>는 원래 1976년 결성된 4인조 혼성 그룹(이정선, 이주호, 한영애, 김영미)이다.
    그런데 1981년,
    이주호는 솔로로 데뷔했다가,
    1982년 2인조 그룹 <해바라기>를 다시 결성했다.

    <슬픔만은 아니겠죠>가 포함된 <해바라기>의 4집 음반은,
    음질도 훌륭하고 곡들도 완성도가 높았지만 그리 성공하지 못했다.
    이유는 이 곡이 발매될 때는 이선희의 <나 항상 그대를>이라는 곡이 인기 절정에 있었고,
    서울올림픽에 즈음해서,
    정수라의 <환희>와 코리아나의 <손에 손 잡고> 등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슬픔만은 아니겠죠>가,
    문명진이라는 가수에 의해서 재해석돼,
    25년 후에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각광을 받게 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는 우리 음악의 대중화를 위해서 한 번 쯤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우선 <해바라기>의 <슬픔만은 아니겠죠>는,
    앞서 언급한 대로 <나 항상 그대를>, <환희>, <손에 손 잡고> 등
    당시 우수한 곡이 줄줄이 나왔기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외적인 요인이외에,
    내적인 면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 한시(漢詩)나 논설문 등에서 글을 전개하는 방식의 하나로,
    기승전결(起承轉結)이라는 형식이 있다.
    기(起)는 글을 시작하는 부분,
    승(承)은 [기]를 이어받아 전개하는 부분,
    전(轉)은 [승]의 내용을 부연하거나 전환하는 부분,
    결(結)은 글 전체를 맺는 부분을 말한다.

    이런 기승전결의 구조는 음악에도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잠시 얘기를 돌려보기로 하자.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평가받는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수년 전에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 “세상일에는 기승전결이 있습니다.
    기승결(起承結)이 아닙니다.

    과학은 기승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학이나 문화, 종교는 기승전(起承轉)이 있어야 결(結)이 나옵니다.
    반드시 그 프로세스 가운데 전환이 있어야 합니다.

    원인이 있고 바로 결과가 나오면 믿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믿음의 행로에는,
    반드시 전(轉), 즉 전환이 있습니다.

    자기 뜻대로 안 되지만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결국 [결]로 갑니다.
    이 믿음을 갖고 신앙생활 하는 것이지요.”



    이어령 전 장관은 신앙생활의 기승전결을 말했지만,
    대중에게 감동을 주는 노래를 작곡하거나 해석하는 데에도,
    기승전결의 구조는 필요하다.

    <해바라기>의 <슬픔만은 아니겠죠>는 기승결(起承結)의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런데 문명진은 이날 공연에서,
    <해바라기>의 [기승결]의 구조를 [기승전결]로 편곡해 부르는 놀라운 변화를 시도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문명진은 연극이나 소설에서 사태가 최정점에 도달하게 하는,
    클라이맥스 기법도 도입했다.

    문명진이 부른 <슬픔만은 아니겠죠>의 가사에 기승전결을 색깔로 표시하면 아래와 같다.
    기(起: 검정색), 승(承: 파랑색), 전(轉: 빨강색), 결(結: 초록색)이 그것이다.

    그리고 문명진은 5분 21초의 동영상에서,
    3분 43초부터 3분 53초까지 10초간 클라이맥스를 노래했다.
    즉, 전(轉)의 마지막 부분인 [것]이라는 단어를,
    6초간 혼신의 힘을 다해 뽑은 다음에 4초간 여백을 준 것이다.

    슬픔만은 아니겠죠
    우리 살아가다 어두울 수 있는 건
    자신 때문이겠죠

    혼자 살아갈 수 있다면
    이별 뒤에 떠오르는
    많은 추억을 사랑하기 때문이겠죠

    밤하늘 달을 보며
    밤하늘 별을 보며

    깊은 어둠에 젖어들 때면 떠오르는
    사랑할 수 있었던 우리 앞에 그 모든 것

    잊어버린 채 세월이 가면
    슬픔이겠죠

    라라라~

    밤하늘 달을 보며
    밤하늘 별을 보며

    깊은 어둠에 젖어들 때면 떠오르는
    사랑할 수 있었던 우리들의 그 모든 것

    잊어버린 채 세월이가면
    슬픔이겠죠

    잊어버린 채 세월이 가면
    슬픔이겠죠


    문명진을 흔히 리듬 앤 블루스(R&B)의 교본(敎本)이요,
    가창력이 대단한 가수로 평가한다.

    그러나 문명진의 <슬픔만은 아니겠죠>에서 주목할 점은,
    앞서 설명한 탁월한 곡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문명진의 <슬픔만은 아니겠죠>에는 또 주목할 점이 있다.

    해바라기는 원곡을 기타로 반주했는데,
    문명진은 오직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했다는 사실이다.
    이날 피아노 반주자는 남자였지만,
    마치 문명진의 사랑하는 애인이자 아내와 같았다.
    그의 반주는 촛불아래서 애인이자 남편과 사랑의 황홀함을 나누는 것처럼 연주했다.

    이를 염두에 두고 동영상을 다시 한 번 감상해보기로 하자.
    http://www.youtube.com/watch?v=93SX0vRN9TE


  • 문명진의 <슬픔만은 아니겠죠>는 이런 점에서,
    감동적인 곡을 대중에게 선사하고자 하는 많은 음악인들에게 좋은 참고가 되지 않을까한다.

    참고로 문명진이 이후에 선보인,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과 들국화의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이날 문명진은 이 곡으로 청중평가단의 투표에 의해 우승을 차지했음)에서는,
    <슬픔만은 아니겠죠>와 같은 해석을 접할 수 없어서 아쉽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