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핵(北核) 보다 무서운
    미주(美州) 한인 기독교계의 ‘평화협정’ 선동
    !

    미주 한인사회, 평양의 앞마당 되나


    최 응 표 /뉴데일리 고문(뉴욕에서)


  • 고대사(古代史)는 학문적 차원에서,
    현대사(現代史)는 국가 안보(安保)적 차원에서 공부한다는 말이
    왜 이처럼 가슴에 와 닿는 것일까.
    그만큼 우리의 현실이 절박하다는 것과 절박한 위기상황을 극복하는 데는,
    바른 역사인식과 해석이 중요하다는 뜻이 아닐까.

    “금후의 50년을 전망하려거든, 과거 50년을 뒤돌라 보는 것이 좋다”고 한 <폴 케네디> 교수의 말을 이제야 이해할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그처럼 엄청난 민족적 시련을 겪고도 과거를 돌아볼 줄 모르는
    국민의 멘탈 붕괴에 있다.
    “민족의 敍事詩(서사시)를 기억하지 못하는 민족은 언젠가는 반드시 망한다”고 했는데 말이다.

    지금 우리에게 북핵(北核) 보다 더 무서운 것은
    미국 내 한인 기독인들이 펼치는 [평화협정] 함정에 빠져드는 [반전(反戰), 평화(平和) 무드]다. 미주 한인사회가 평양의 앞마당이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나.
    머지 않아 그런 날이 현실로 다가 올 수도 있다는 전제하에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미주 한인 사회에 번지고 있는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라는 저들의 베트남 식 공산통일 전략,
    결코 가볍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공산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은 [평화주의]라는 달콤한 유혹으로
    상대국의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방력을 약화시켜 왔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지금 북한과 국내 종북세력,
    그리고 해외 북한동조세력(예수의 정의를 파는 일부 기독교 인사들)의 합작품으로 보이는
    미국 내의 [평화협정] 체결선동은
    <리델 하트>의 간접접근 전략을 본뜬 히틀러 식(김정일이 히틀러를 좋아한 이유) 후방침투,
    교란, 우회돌파라는 고도의 전술전략의 일환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래서 김정일의 대남 적화전략이 히틀러의 [혁명전쟁]과 90%이상 닮았다고들 한다.

    미국내 한인 기독인들의 정치활동은 반(反) 기독교적이고,
    예수의 정신에도 배치되는 북한 식 공산혁명수단의 일환일 뿐이다.
    악(惡)의 세력을 돕기 위해 예수의 정신(精神)과 예수의 정의(正義)를 파는 행위는
    흑인 신학자 <제임스 콘> 교수가 말하는 예수의 본질적 활동인 [노예로부터의 인간해방] 활동에 대못을 박는 행위다.

    <제임스 콘> 교수(뉴욕 유니온 신학교)는
    “예수의 정신은 인간이 노예가 되어 짓밟히고 있는 곳에 있고, 고난을 당하고 있는 인간과 함께 고난을 당하고 계신다. 그 곳에 예수의 정신이 있다.”고 했다.

    악의 권력으로부터 짓밟히고 고통 받는 [인간노예 현장],
    다시 말해 예수정신이 있는 정의의 현장에 있어야 할 미주 한인사회의 기독인들이
    왜 남의 생명을 짓밟고 고통을 주며 인간을 노예화하는 악의 세력(반 기독교세력)편에 서 있는가?

    <제임스 콘> 교수의 말대로 예수의 전 생애가 인간을 노예화하는 힘과의 싸움의 연속이었다면, 지금 미주 한인 기독인들이 벌이고 있는 [평화협정] 체결 선동은
    악마가 저질러 놓은 일을 파멸시키려고 우리에게 오신 예수의 정신과 정의에 대한 배신행위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콘 교수의 말대로 [눌린 자의 하나님]이다.
    미주 한인 기독인들이 진정으로 예수의 정신을 실천하려면,
    먼저 인간에게 노예의 멍에를 씌워 자기 생활수단으로 삼는 악의 세력과 싸워야 한다.
    다시 말해 예언자적 위치에서 북한의 악의 세력과 싸워야 한다는 말이다.
    악의 편에 서서 눌린 자에게 돌을 던지는 행위는 진정한 기독인들이 취할 행동이 아니다.

    왜 예언자들이 성난 목소리를 냈고, 왜 예수가 분노했나?
    인간 해방을 위해서 성난 목소리를 냈고, 분노한 것 아닌가.

    일본 신학자 <田川建三>(다가와 겐조)의 표현을 빌리면,
    예수는,
    사회의 부조리와 인간의 노예화에 대해,
    사회지도층과 종교지도자의 위선에 대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의 해방에 대해,
    성난 목소리를 내고 분노한 것이다.
    미주 한인 기독인들의 [평화협정] 체결 선동 행위는,
    그래서 반(反) 기독교적, 반(反) 국가적 반역 행위라는 것이다.

    저들의 행위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월남 패망의 비극을 가져온 <파리평화협정>의 망령을 다시 불러오는 것 같아
    불길한 예감마저 든다.
    역사적으로 [평화협정]이나 [유화정책]으로 평화를 유지한 나라를 보았는가.
    평화는 지킬 힘이 있을 때 지켜지는 것이지 구걸해서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1938년 9월의 <뮌헨 협정>과 1973년 1월의 <파리평화협정>은
    아직도 우리에게 슬프고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를 얻을 수 있다면,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주고서라도 [유화정책]을 유지해야 한다며
    히틀러와 무솔리니 같은 세기의 독재자들과 [뮌헨 협정]을 체결한 영국은,
    협정 체결 1년 후 세계 역사상 최대의 희생을 가져온 2차 세계대전에 휩싸여
    [지지 않는 태양]이 빛을 잃는 비극을 맛보았다.

    <키신저>가,
    “월남의 공산화를 막지 못한 것은 미국 내의 소위 평화운동 때문이었다”고 후회한
    [파리평화협정]은 어떤가.
    한반도 적화통일을 위한 <6.15선언>으로 김대중이 노벨 평화상을 받은 것처럼,
    [파리평화협정]으로 키신저는 노벨평화상이라는 최고의 영예를 얻었지만,
    월남은 [평화협정] 체결 2년 만에 역사의 무대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평화협정]은 [망국협정]이란 말이 왜 나왔겠는가.

    경제력-군사력이 월맹보다 월등히 강했던 월남,
    그 엄청난 미국의 힘을 등에 업고도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한 거지국가 월맹에 패한 이유가 무엇일까?
    패망 당시의 월남과 오늘의 한국사정을 신중하게 살피면 답이 나올 것이다.

    분열과 총체적 부패,
    월남정부 안방까지 침투한 간첩과 극렬한 데모,
    언론계-교육계-종교계-법조계-사회단체에 침투한 월맹 동조세력(우리의 종북세력)의 평화무드 선동과 거짓 선전 등,
    지금 한국이 처한 현실과 어쩌면 그리 닮은 꼴인지 등골이 오싹해진다.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이처럼 매혹적인 슬로건이 어디 있나.
    하지만 독성이 강한 독버섯일수록 화려하게 피는 법.
    넋 놓고 있다 덥석 먹으면 파멸이다.

    국내외에 조성되고 있는 [평화무드]가 왜 북핵(北核) 보다 더 무서운가?
    화려하고 매력적인 [독버섯](평화협정)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수의 정신과 정의를 파는,
    가짜 기독교인들(나는 악의 세력 편에 선 기독교인을 가짜로 본다)의 독버섯은,
    더욱 화려하고 정직해 보여 더욱 위험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진정으로 기독교 정신을 구현하려거든 악의 편에 서서 독버섯을 키우지 말고
    그 독버섯 제거작업에 앞장서야 한다.
    악을 제거하고 선을 행하는 것, 그것이 참 기독교 정신 아닌가.

    수천 개의 핵무기를 가진 구소련이 왜 망했나?

    2차 대전 이후 핵보유국은 많아졌지만, 그 것을 사용한 나라는 없다.
    망하면서도 핵무기를 사용하지 못한 구소련의 속사정을 살피면,
    북한의 핵이 전시용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북한, 절대 핵을 사용하지 못한다.
    하기야 죽으려면 무슨 짓인들 못 하겠냐만, 세계의 힘이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북핵 보다 [평화체제] 선동이 더 무섭다는 것이다.

    <뮌헨 협정>과 <파리평화협정>에서 배워야 한다.
    현대사는 국가안보 차원에서 배운다고 하는 것은 우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미군만 없다면 3일이면 남한을 접수할 수 있다”는 김정일의 장담을 새겨들어야 한다.
    [평화협정]의 기본 목표는 한미동맹 파기와 미군철수에 있고,
    최종 목표는 한반도 적화통일에 있다.

    <키신저>가 후회한 것처럼 미국에서 벌어진 반전-평화운동은,
    마침내 <파리평화협정>과 월남에서의 미군철수,
    그리고 미국의회의 월남 원조 금지 의결을 가져왔다.
    월남은 결국 미국 내의 반전-평화 무드의 물결에 휩싸여 망했다.
    이것이 [평화체제] 선동이 북핵 보다 무서운 이유다.

    그것이 또한 미주 한인사회가 평양의 앞마당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주 한인사회가 평양의 앞마당이 된다는 것은, 곧 대한민국의 운명과 직결되는 문제다.

    아마도 미주 한인 기독인들이,
    워싱턴을 기점으로 미주 주요도시에서 [평화체제] 무드를 조성하려는 저의도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북한과 국내 종북세력, 그리고 해외 북한 동조 세력의 반역행위를 저지하기 위해선,
    국내외의 대한민국 세력의 협력과 정부의 적절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

    미주 내에 번지는 [평화체제] 무드의 확산, 결코 가볍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월남전 기간에 번졌던 미국 국민들의 반전-평화운동을 백 번, 천 번 되새겨보며
    그 속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평화협정]은 [망국협정],
    월남 패망의 교훈에서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