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충원 참배하면서 김대중 묘소만 찾아

  • 48시간만에 본색이 드러났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6일 최고위원들과 함께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했다. 
    김한길은 현충탑에 헌화하고 방명록에 기록한 뒤,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에 들러 헌화했다.

    그런데 불과 100m, 350m 떨어진 이승만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 묘역은 들르지 않았다.

    김한길이 민주당 대표로 선출된 것은 5월 4일이다.
    친 노무현 계파들이 최고위원에 한 명도 오르지 못하고,
    김한길 역시 친노무현계로 분류되는 이용섭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된 만큼,
    제대로 된 야당 한 번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이 없지 않았다.

    김한길은 이 일말의 기대감을 48시간만에 자기 스스로 걷어차고 말았다.

    왜 김대중 대통령 묘역만 방문했는지가 시끄러워지자,
    김한길 대표 측 관계자들이 한마디씩 해명했다.
    <동아일보>기사를 보면 이렇게 나온다.

     김 대표 측 관계자는 “일정이 많아 부득이 방문하지 못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 이후 이승만,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한 대표는 없었다”며 “민주당 대표가 민주당 출신이 아닌 대통령 묘역까지 참배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참 해명치고는 궁색하기 이를 데 없다.

    김한길 대표가 들어서면서 얼마나 바뀔지 주시하던 관찰자들에게는 역시 그 정도 밖에 안되는 인물이군…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변명이다.

    글자그대로 일정이 바빠서 그랬을 것이다.
    역대로 김대중 총재 이후, 이승만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 대표가 없었던 당의 관습이 저절로 적용됐을지도 모른다.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어준다고 해도, 이건 아니지 않는가 싶다.
    민주당이 호남지역당을 탈피하려면, 첫 단추부터가 중요하다.

    김한길의 아버지는 김철(1926~ 94) 전 통일사회당 당수(대표)이다.
    김철 당수의 아들이었던 점을 감안해서,
    1996년 김영삼도 그를 끌었고, 김대중도 그를 끌었다고 한다.
    김한길은 여기서 김대중의 부름을 선택해 정계에 입문했다.
    그에게는 김대중이 정치적인 스승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 김한길은 더 이상 동네 꼬마 정치인이 아니다.
    대한민국 제1야당의 당 대표로 당당히 일어섰다.
    민주당 하면 떠오르던 수많은 호남권 인사, 지면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운동권 인사들,
    혹은 민주화 투사들의 쟁쟁한 후보들이 다 스러지는 마당에,
    새 정치의 기대를 안고 들어서는 첫번째 대표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 마당에 김한길 스스로 "나는 김대중만의 정치적 후계자"라고 자처하고 나선 것은,
    그의 정치적인 식견을 엿보게 한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처음 비대위원장으로 뽑혔을 때, 문희상도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았다.
    문희상은 차디찬 아스팔트 바닥에 엎드려 국민에게 사죄하는 어설픈 이벤트로,
    스스로의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문희상 본인으로서는 대선패배를 사죄하고 다시 잘 해보겠다는 각오의 표시로,
    추운 날씨에 그런 이벤트를 벌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이 어느 시절인데 그런 유치한 이벤트가 국민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었을까?
    역시나 문희상 비대위 체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새정부 인사를 비롯해서 예산안 등
    사사건건 트집과 딴지걸이를 하더니 지지율 까먹는 비정상적인 대책위원회로 전락하고 말았다.



  • 김한길 역시 문희상과 비슷한 길을 가지 않을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김한길 대표가 현충원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만 방문한 이유를 추정하면 다음과 같다.

    1. 일부러 안 갔다면, 민주당은 다시 한번 호남지역당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혹은 김한길은 호남지역당을 꿈꾸는 당내 세력들에게 이용당하고 말 것이다.

    2. 습관대로 이승만 박정희 묘소는 찾지 않았으니까…무심하게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그 같은 무심함과 습관(이라기 보다는 악습)이 김한길을 갉아먹을 것이다.
       보이지 않게 깔려있는 수많은 습관은
       보고서의 단어에서, 행사의 순서에서, 민주당의 성명서에서, 국회 투표와 정책에서
       색깔을 드러낼 것이다.
       “우린 이렇게 해왔다”고 민주당 중진이나 당 내 실무자들이 박박 우길 때
       김한길은  여기에 맞서 싸울 수 있을까?

    김한길 대표는 불행히도 [현충원 방문 현장 실습 과목]에서 1번 답안이나 2번 답안을 써 냈다. 오답(誤答)이다.
    김한길은 출발부터 낙제점을 받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