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 전쟁, 남북베트남과 동서독과 남북한

    베트남의 적화통일도, 독일의 자유통일도
    미디어 전쟁에서 승리한 쪽이 차지한 전리품에 지나지 않는다.

    최성재     
        
     베트남전에서 미군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은 5만 명이었다. 미군 전사자는 5만 8천 명이었다. 그럼 월맹(북베트남)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은 몇 명일까? 무려 40만 명! 미군에 의한 희생자보다 8배나 많았다. 적화통일된 후 베트남이 월맹군 전사자가 110만이라고 발표했지만, 거기에는 자신들이 학살한 민간인까지 포함하고 30% 정도 과장한 것이어서 실지로는 44만 명으로 추정된다. 월남군은 20만 명 희생되었다.

    왜 이런 사실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까?
    미디어 전쟁에서 월맹이 미국과 월남을 모두 일방적으로 이겨 버렸기 때문이다.
    미국은 언론 자유가 있었지만, 월맹은 언론 자유가 전혀 없었다. 언론 자유는 평화의 꽃이지만, 전쟁의 독버섯인데, 미국은 전쟁 상황에서 전방에서든 후방에서든 언론 자유를 만개시켰기 때문에, 인도지나에서 총으로 싸우는 것보다 아메리카에서 펜으로 싸우는 것이 훨씬 힘들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공산 베트남은 정의의 전쟁(bellum iustum)을 벌이지만, 미국은 불의의 전쟁(bellum iniustum)을 자행한다는 논리가 미국에도 광범위하게 퍼져서 월맹과 베트콩은 천사로 미국과 월남과 따이한은 악마로 매도되었던 것이다.

      적군은 많이 죽일수록 정의롭고 민간인은 적게 죽일수록 정의롭다. 그것이 정의의 전쟁이다.
    미국이 바로 그러했다. 적군 전사자가 연합군과 합한 아군 전사자보다 두 배나 되었지만, 민간인 희생자는 적군에 의한 것에 비하면 8분의 1밖에 안 되었다. 그럼에도 적군이 학살한 민간인은 100분의 1, 1000분의 1도 보도되지 않았고 미군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은 막 등장한 TV로 너무도 생생하게 끔찍하게 남김없이 보도되었다.

    사람인 이상 그걸 보고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인 폰다만이 아니라 인권의 수호신으로 떠오른 마르틴 루터 킹도 평화를 역설하며 미군보다 8배나 인권유린을 많이 한 공산 베트남을 열렬히 지지했다. 설령 그렇더라도 겉 다르고 속 다른 적군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을 공정하게 8배 방영했다면, 3억 민주 시민의 양심은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1949년 중국을 통일한 모택동과 주은래는 2개 소총 대대밖에 없던 공산 베트남의 호지명에게 꿈에도 소원을 들어 주었다. 의기는 장하되 호미와 부엌칼과 나무막대기밖에 없던 공산 베트남에게 6개 사단이 중무장할 수 있는 현대무기를 하사(下賜)한 것이다. 1884년 청불전쟁에서 패배함으로써 프랑스에게 월남에 대한 종주권을 잃었던 중화족의 복수였다고도 할 수 있다. 1954년의 디엔 비엔 푸(尊邊府) 전투는 그렇게 하여 어렵지 않게 공산 베트남의 승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
    사람만 안 갔을 뿐 외세를 먼저 끌어들인 쪽은 자유월남이 아니라 공산 베트남이었던 것이다.

    소련도 가만있지 않았다. 현대전은 무기 전쟁인데, 기관단총 한 정이면 소총 100정도 이길 수 있는데, 중공과 소련은 뒤에 숨어서 무기와 식량을 아낌없이 지원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마치 민주베트남(공산 베트남)이 민족반역자(베트남 공화국)와 외세(미국과 그 우방)를 상대로 인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민간인 학살은 한 명도 않고 자주평화통일을 위해 눈물겹게 정의의 전쟁을 벌이는 것처럼 행군 중인 군인이 구호를 붙이듯 한 목소리로 선전선동했고 이 논리는 그대로 월남과 미국에 파고들었다.

    1967년 존슨 미대통령은 호지명에게 비둘기 한 마리를 날려 보냈다.

    ... I am prepared to order a cessation of bombing against your country and the stopping of further augmentation of US forces in South Vietnam as soon as I am assured that infiltration into South Vietnam by land and sea has stopped. ... (육해 양면에 걸쳐 남베트남으로 침투하는 것이 중지되었음을 확인하는 대로, 나는 귀국에 대한 폭격과 미군의 남베트남 추가 증강을 중지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호지명 아저씨는 미스터 존슨의 양심을 콕콕 찔렀다.

    ... In South Vietnam, a half-million American soldiers and soldiers from the satellite countries have resorted to the most inhumane arms and the most barbarous method of warfare such as napalm, chemicals, and poison gases in order to massacre our fellow countrymen, destroy the crops, and wipe out the villages. In North Vietnam, thousands of American planes have rained down hundreds of thousands of tons of bombs, destroying cities, pagodas, hospitals, and schools. ...(남베트남에서 50만 미군 병사와 그 위성국의 병사들이 가장 비인간적인 무기와 가장 야만적인 전쟁 수단에, 네이팜과 화학무기와 독가스에 기대고 있습니다. 우리 동족을 학살하고 곡식을 절단 내고 촌락을 유린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북베트남에선 수천 대의 미국 전투기가 수십만 톤의 폭탄을 비 오듯 퍼부어 도시와 탑과 병원과 학교를 파괴합니다.)

     논리 싸움에서 존슨이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다. 소련과 중국이 무서워, 침략자 소리 듣는 게 무서워, 미국은 북위 17도 이북으로는 단 한 명의 병사도 올려 보내지 못하는 패배주의적 상황에서, 원점 타격은 감히 상상도 못하는 상황에서,
    초강대국 대통령 존슨은 약소국 북베트남을 향해 점잖게 침략 대신 침투라고 에둘러 표현하며 평화를 구걸했지만, 17도 이남으로 제집처럼 쳐들어와 남베트남 전국에 전후방이 따로 없는 전선을 구축한 북베트남을 향해 씨알도 먹히지 않을 평화를 구걸했지만,

    중소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이는 단 며칠도 버티지 못한다는 북베트남의 꼭두각시 역할도 감히 꺼내지 못했지만, 북베트남의 무지막지하고 뻔뻔한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꺼내지 못했지만, 오두막 이웃집 아저씨 호지명은 시종일관 당당하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자세로 제국주의 침략자의 잔학무도한 반인륜적 행위를 조목조목 나열하며 전쟁의 모든 책임을 미국에 돌려 미군 철수가 곧 인도지나의 평화라고 질타하며 인류의 양심에 호소하고 있다.

      서독은 그렇지 않았다. 남베트남이나 미국과는 정반대였다.

    동토의 땅 동독이 별의별 짓을 다해도 아무 소용없게 만들었다.
    가족 상봉쇼를 벌이는 게 아니라 매년 수백만의 동서독 사람들이 서로의 집을 방문하게 하고,
    방문자 누구에게나 100마르크를 쥐어 주며 꿈같은 쇼핑을 즐기게 하고,
    안내원 없이 자유 관광하게 하고,
    동독의 인권유린에 대해서는 한 발짝도 양보하지 않고
    공산독재에 맞서 싸운 정치범과 양심수와 그 가족은 아낌없이 돈을 퍼 주고 최대한 서독으로 받아들이고, 서독의 라디오와 TV를 동독 주민이 마음껏 보게 만들었다.

    그렇게 되자 동독이 고정간첩 2만 명을 보내 서독의 모든 집회와 시위를 조종하게 만들고 국내 언론은 최대한 통제하여 괴벨스를 능가하는 선전선동을 일삼아도 서독 사람들은 속지 않았고, 동독 사람들은 더욱 속지 않았다.
    서독은 동독을 상대로 미디어 전쟁에서 일방적인 승리를 거뒀던 것이다.

     자, 이제 한반도로 넘어온다. 어디랑 비슷한가.
    미국과 비슷한가, 서독과 비슷한가. 베트남과 비슷한가, 독일과 비슷한가.

    악마 히틀러도 명함을 못 꺼낼 김씨왕조의 인권유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못 꺼내고,

    악마의 악마가 대를 이어 자행하는 잔학무도한 인권유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못 꺼내고
    남의 일인 양 수십 년째 유엔에 맡겨두고,

    미디어 전쟁이 전쟁인 줄도 모르고 일방적으로 수세에 몰려 진실의 풍선 하나 못 날리고,
    친북좌파야 막는 게 이상할 게 없지만 고마워하며 앞장서야 할 경찰과 군대가, 불법 시위는 1년이 지나도록 손도 못 대는 주제에
    돈 없고 힘없고 조직 없는 이 시대의 어린 양 의인(義人)에겐 늑대처럼 호랑이처럼 으르렁거리며 진실의 풍선 하나 못 날리게 가로막고,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진실에 목마르고 정의에 굶주린 북한 주민이 한국의 라디오와 TV를 듣거나 보다가 들키면 정원 20만 명의 강제수용소에 개처럼 바로 끌려가는 것에 대해서 한 마디도 못 꺼내고,

    민간인 학살 전문가 집단이 미사일 몇 방 쏘면, 1년 예산을 허공에 날리며 자해공갈단이 게거품을 물면 벌벌 떨며 100번이면 110번 속는 무조건적인 대화나 구걸하고,

    김일성 1세 파라오와 김일성 2세 파라오의 피라미드가 아니라 자유대한의 청와대를 향하여 눈을 흘기고 가슴을 두드리며 평화를 외치고,

    종주먹대며 백악관을 향하여 전쟁의 먹구름을 몰고 오지 말라며 발광실신하고,

    3대 공산독재 폭력단이 핵실험하면 핵개발비를 바친 자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못하고
    속으로 민족의 핵이라고 뿌듯해 하며 오히려 핵개발비를 몰래 바친 자의 월남식 평화정책을 소리 높여 외치고,

    관광비든 임금이든 주면 주는 족족 95% 이상 원천징수당하는 것에 대해선 한 마디도 못하고
    제발 평화의 구름다리, 화해의 무지개로 오르는 계단을 가로막지 말고 부디 젊은 장군님이시여, 노여움을 풀고 하루 빨리 개성으로 올라가는 길을 열어달라고 애걸복걸하고,

    애꿎은 한국 정부를 도리어 일방적으로 질타하고,

    평화유지비(독재유지비)로 올려 보낸 누계 100억 달러로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하고 어뢰를 개발하여 바다의 휴전선을 마음대로 침략하고 책임을 일방적으로 전가하면 거기에 대해서 만세 삼창으로 호응하고, 주석님 만세, 장군님 만세, 청년 장군님 만세, 소리 없는 만세삼창으로 호응하고, 거침없는 반국가적 행동과 평양방송의 논리로 호응하고,

    편지 한 통 오가지 못하고 전화 한 통 오가지 못하고 사람 한 명 오가지 못하는 15년 속임수를 평화라고 개혁개방의 교두보라고 자주평화통일의 역사적 발걸음이라고, 한미연합사만 해체하고 주한미군만 철수하면, 그 날로 자주평화통일의 길이 활짝 열릴 거라고 남북이 합하여 세계적 강대국을 건설할 결정적 계기가 될 거라고,

    월맹은 적화통일이 되기 전 민간인을 40만이나 학살하고 단 한 명도 안 죽인 듯이 시치미를 뗐지만, 김씨왕조는 6.25는 차치하고라도 그렇게 좋아하는 평화의 시기에 지상낙원이라는 땅에서 몽둥이로 때려 죽여도 한두 시간이면 죽일 수 있건만 짧으면 열흘 길면 석 달 열흘 잔인하게 고문해서, 굶겨서, 굶겨서, 굶겨서, 300만이나 학살한 집단이다. 이런 자들에겐 만경대까지 다투어 찾아가 면죄부를 갖다 바치고, 100년에 한 명 죽을까 말까 하는 확률에 대해서는 머리가 하늘에 닿도록 수백만이 길길이 뛰며 100일 동안 나라를 무법천지로 만든다.

     과연 이런 나라가 월남전 당시의 미국보다 낫고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많던 월남보다 나은가. 미디어 전쟁에서 인구 5천만 이상 대국 중 세계 7대 부자나라에 속한 대한민국이 이처럼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다. 결과가 뻔히 보이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