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짖는 개도 무는 수가 있다

    짖는 개도 만만한 자, 약하게 보이는 자, 반격할 리 없는 자는 서슴없이 물어뜯는다.

    최성재     
        
     한국에 진돗개가 있다면, 북한에는 풍산개가 있다. 둘 다 야성이 강한 중형급 개로서 한민족을 쏙 빼 닮았다. 진돗개는 진도라는 섬에 격리되어 그곳이 천하인 줄 알고 동물의 왕으로서 수백 년간 군림했다. 주인이 말리지 않으면 눈에 띄는 대로 개든 멧돼지든, 자신보다 크든 작든 다짜고짜 일단 물어뜯어 놓고 본다. 주인이 아니면 인간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진짜 센 놈을 만나면, 이를테면 아무리 악착같이 물고 늘어져도 가죽이 그냥 한 바퀴 휙 돌아가서 도무지 치명상을 입힐 수도 없는 데다 덩치도 무지막지하게 크고 힘도 황소급인 불도그를 만나면 허망하게 죽을 수도 있다.

      풍산개는 저 유명한 삼수와 갑산 바로 아래 풍산에서 때로 늑대와 DNA를 교환하면서 수백 년간, 어쩌면 수천 년 살았다. 풍산(현재는 김형권군)은 2000미터 산이 즐비한 개마고원 일대다. 풍산개는 거기서 사냥개로 이름을 떨쳤다. 거긴 단군의 어머니 곰도 있고 칭기즈칸의 아버지 늑대도 있고 주몽의 아버지(이건 내가 지어낸 말) 호랑이도 살던 곳이다. 진돗개는 좁은 진도에서 동물의 왕으로 군림했기 때문에 위기 상황이 아니면 다른 진돗개와 협동하지 않고 혼자서도 지구 끝까지(실은 진도 끝까지) 아무리 먼 곳도 혼자서 사냥감을 따라가지만, 풍산개는 진돗개보다 5kg 정도 더 무거운 25~30kg으로 자신보다 힘이 센 자들이 득실거리는 개마고원에서 피 터지는 생존경쟁을 벌여야 했기 때문에 야성이 진돗개 못지않지만 분수를 알고서 동료 풍산개와 협동하는 걸 기본으로 하고, 일정한 거리 이상을 벗어나면 자신이 도리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아무리 탐나는 사냥감도 내버려두고 싹싹하게 되돌아온다. 풍산개는 무모하게 사냥감을 쫓는 일이 없다.

      2000년 6월 김정일은 김대중에게 풍산개 두 마리를 선물했다. 김일성 태양을 앙모하는 햇볕교 교주가 과연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도 모르게, 핵개발비로 쓰든 장거리 미사일 개발비로 쓰든, 아방궁 식비로 쓰든 3천 궁녀 팁으로 쓰든 조금도 개의치 않고, 북한 1년 예산의 두 배가 넘는 5억 달러를 기꺼이 바친 데 대한 답례였다. 유력한 노벨평화상 후보자는 황송하다며 진돗개 두 마리를 덤으로 얹어 주었다. 결국 풍산개 한 마리가 2억 5천만 달러의 가치가 있었던 셈이다. 진돗개 두 마리는 공짜!

      2년 후 서해의 풍산개가 서해의 진돗개를 단숨에 물어뜯었다. 단 한 번 도약으로 진돗개의 목덜미를 덥석 물어 대장 진돗개의 동맥을 단숨에 끊어 버렸다. 어떤 상황에서도 선제공격을 양보하지 않는 선제공격의 명수 진돗개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서해의 진돗개는 뛰어난 머리로 위기 상황임을 대번에 알아차렸지만, 항상 주인의 판단을 자신의 판단보다 중시하는 충성심 때문에 두 눈으로 번히 보면서도 선제공격을 양보했던 것이다. 서해의 진돗개 주인은 다름 아닌 햇볕교 교주였는데, 주인께옵서 엄명하길 절대 선제공격하지 말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주지시켰던 것이다. 서해의 진돗개는 선제공격을 빼앗긴 상황에서 대장이 없이 각자 발군의 순발력을 발휘하여 백두산 호랑이보다 용감하게 싸웠지만, 발을 딛고 설 진돗개의 보금자리가 깊은 바다에 가라앉는 바람에 여섯 용사가 헛되이 목숨을 잃었다. 뒤늦게 ‘진돗개 하나’가 발동되고 서해의 호랑이, 곰, 늑대가 한꺼번에 달려왔지만, 그 모두의 주인이 신중하게 대처하라고 엄명하는 바람에, 절대 서해의 풍산개를 추격하지 말라고 엄명하는 바람에, 이웃 동네의 공차기 놀이에 희희낙락 나들이 가는 바람에 발을 억세게 굴려 서해에 크게 파도가 일렁이게 하는 것으로 울분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2대 햇볕교 교주는 한 수 더 떴다. 서해의 풍산개보다 천 배 만 배 무서운 풍계리 호랑이가 마침내 포효하자, 득의만면 장차 그것은 통일 조국의 수호신이 될 거라며, 미국의 불도그는 이제 몸만 남기고 머리는 가져가라며, 공동 작전 명령권은 한국이 따로 갖겠다며, 자주의 깃발을, 386운동권의 깃발을 높이 치켜들었다. 덤으로 서해의 풍산개가 마음대로 휘젓도록 서해 일대를 뚝 떼 주겠다고 평양까지 버선발로 달려가 굳게 약조했다.

      그 사이 평양의 풍산개는 주인이 시키는 대로 태평양 건너 독수리를 향해 마음껏 짖어댔다. 그 소리가 얼마나 요란하고 그악스러운지, 듣는 자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모골이 송연해졌다. 당장이라도 태평양을 훌쩍 건너뛰어 한바탕 할 듯이 기고만장했다. 다들 알았다. 그것은 단지 겁에 질린 개가 자기도 모르게 배설물을 흘리며 쥐어짜는 겁먹은 소리임을!

      머리 좋기로 소문난 한국인만 몰랐다. 짖는 개도 만만한 자는, 약해 보이는 자는, 반격할 줄 모르는 자는 서슴없이 물어뜯는다는 것을! 동쪽을 향해서 짖으며 서쪽을 덥석 물기! 평양의 풍산개가 소프라노와 테너로 불협화음을 내지르는 사이, 서해의 풍산개는 2002년 이후에도 세 번이나 더 서해의 진돗개를 선제공격했다. 잠자리에 들려던 46용사를 쥐도 새도 모르게 바다에 가라앉히고 바다 깊숙이 ‘1번’ 흔적 하나 남기고 감쪽같이 사라지기도 했다. 그때마다 ‘진돗개 하나’는 발동되었지만, 엄포뿐이었다. 아닌 척했을 뿐 사실상 3대 햇볕교 교주는 서해의 풍산개 영역을 1mm도 침범하지 못했다. 세상에 이보다 안전한 공격 상대가 또 있을까. 짖어도 간간히 맞짖는 척했을 뿐 매번 흐지부지 넘어가고, 물어도 물어도 헛되이 다짐만 할 뿐 그때마다 가만히 양반자세를 취했다. 세상에 이보다 만만한 공격 상대가 또 있을까. 가만 안 있겠다, 원점 타격하겠다, 그저 말뿐, 바람 빠진 풍선 하나 못 날리고 녹슨 스피커 하나 고치지 않는다. 한 눈을 찡긋 감으며 개성의 개구멍으로 꼬박꼬박 상납금을 바친다.

      평양의 풍산개가 동쪽 수만 리를 향해, 혹시 소리가 안 들릴까 전파에 실어 어느 때보다 요란하게 짖어댄다. 바로 아래 남쪽을 향해서도 불바다 짖음, 각 뜨기 짖음을 사양하지 않는다. 태평양을 단숨에 날아온 독수리가 한반도 상공에 모습을 드러내자, 평양의 풍산개는 지하에 숨어 더욱 세게 짖는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햇볕 교주와 분명히 선을 긋는 새 주인이 등장했다. 그는 당당히 서해의 46영령을 찾아갔다. 서해의 진돗개가 또 전매특허인 선제공격을 양보할 것인가. 실은 이미 저들이 새로운 물어뜯기 신공을 선보였다. 그것은 한국이 세계 제일을 자랑하는 사이버 공간이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사이버 공간이다. 서해의 바다 속보다 더 은밀한 곳이다. 세계 3류급 사이버 진돗개가, 남북 두 곳에서 무슨 연유인지 동시에 영웅으로 떠오른 세계 3류급 사이버 진돗개가 핵심 거점 대부분을 지키고 있는 한국의 치명적 약점을 노리고 이미 물어뜯기에 나섰다. 이 엉터리 사이버 진돗개부터 몰아내고, 서해의 진돗개에게 야성을 돌려주어야 한다. 그러면 서해의 풍산개는 바로 장례 절차에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