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럴섹스(구강성교)가 원인으로 추정되는 두경부암 발병 환자가 최근 10년 사이에 급속도로 늘고 있습니다. HPV(인유두종 바이러스) 백신을 맞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최근 두경부(구강과 목 부위) 종양의 암 진행을 억제하는 신약 개발에 성공한 암 연구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신동문(62) 미국 에모리대가 교수는 25일(현지시간) 분별 있는 성생활과 HPV 백신 접종이 두경부암 예방의 철칙이라고 강조했다.

    HPV는 종류만 100여종이 넘는 바이러스로 주로 성행위로 감염된다. 자궁경부암과 두경부암을 유발하는 고위험군과 생식기와 항문 주위에 사마귀 등 피부질환을 일으키는 저위험군으로 나뉜다.

    현재 한국인 성인 여성(18~79세)의 34%가 HPV에 감염돼 있으며 특히 성개방 풍조 확산으로 첫 경험 연령이 낮아지면서 18~29세 감염률이 50%에 이를 정도로 여성 감염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미국 등 다른 나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신 교수는 "HPV로 인한 구강암 환자는 10년 전에는 매우 드물었지만 이제는 흡연, 음주와 더불어 주요 발병 원인이 됐다"며 HPV의 지구촌 확산에 큰 우려를 나타냈다.

    학계에서는 신 교수의 신약이 구강암 억제와 예방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했지만 정작 신 교수는 균형 잡힌 식습관과 건전한 성생활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백약이 무효라는 태도를 보였다.

    신 교수가 10년에 걸친 각고의 연구 끝에 개발한 약물은 암세포 증식을 일으키는 EGFR(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 억제제인 엘로티니브와 염증과 통증 유발 효소인 콕스-2(COX-2) 억제제인 셀레콕시브를 혼합한 것으로, 쥐를 대상으로 한 동물실험과 임상시험을 통해 그 효능이 입증됐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그는 세계 최고의 암 전문 병원인 텍사스주 휴스턴의 MD 앤더슨 교수와 피츠버그대 두경부암센터 소장을 거쳐 2003년 에모리대 의대에 부임했다.

    에모리대에서 암센터 부소장으로도 재직 중인 신 교수와 만나 이번 연구 성과와 암 예방 등을 화제로 인터뷰했다.

    폐암과 구강암 치료약 개발에 30여년을 보낸 그는 성형외과와 피부과 같은 '고수익·저위험' 과로 몰리는 한국의 의학도들에 대해 "돈에 얽매이지 말고 히포크라테스 정신에 충실하라"는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다음은 신 교수와의 문답.

    -- 이번 신약 개발이 암 연구와 치료 분야에 주는 의미는.

    ▲ 엄밀히 말하면 신약이 아니라 기존에 나와있는 약물을 가지고 새로운 길을 발견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 기존 치료제인 엘로티니브와 셀레콕시브를 적절하게 혼합해서 구강암 전 단계의 환자들에게 투여해 의미있는 결과물을 얻은 것이다. 구강 종양은 암 진단 전에 발견돼도 암 발병을 억제하기 힘든 난치병이다. 이번 성과가 환자들에게 새 희망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 임상시험에서 일부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했다는데.

    ▲ 7명 환자의 조직 샘플 가운데 3개에서 병소가 사라졌고 2개에선 부분적으로 효과를 보였다. 그러나 2명의 환자는 시험 도중 부작용이 나타나 중단했다. 약물의 안전성과 독성을 파악하려면 대규모 시험이 필요하다. 현재 독성이 없거나 덜한 혼합 물질도 개발하고 있다. 녹차성분 등 두세 개 천연물질을 섞어서 어떤 조합이 가장 항암효과가 큰 지 살펴보는 중이다.

    -- 구강암 환자가 최근들어 느는 이유는.

    ▲ 두경부암에서 구강과 편도선에 생기는 암들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자궁에 생기는 HPV가 발생 경로가 되고 있다. 구강암의 원인은 원래 담배와 술이 60% 이상이었지만 현재 구강암과 편도선암은 60%가량이 HPV 감염 때문으로 추정되고 있다. HPV 탓인 구강암 발병 사례는 10년 전만 해도 매우 드물었지만 이제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는 추세를 보일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 구강암 예방의 최선책이 있다면.

    ▲ 물론 금연이 제일 중요하다. 도수가 높은 술은 두경부의 DNA를 파괴해 인체에 큰 데미지(피해)를 주니까 조심해야 한다. 구강 쪽에 생기는 성병 예방도 중요하다. 다수 이성과의 성관계, 오럴섹스는 HPV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성행위를 시작하기 전에 HPV 예방 백신을 접종할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

    -- 암 예방에 좋은 음식은.

    ▲ 균형 있는 식생활이 중요하다. 트랜스 지방과 기름진 음식을 피하고 푸른색 채소와 토마토, 마늘, 녹차, 콩, 키위를 가까이하라. 특히 녹차는 하루 6잔 이상을 마시는 사람의 암 발병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6배 차이가 난다는 연구 보고서도 나올 정도로 효과가 좋다. 카페인이 암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보고서도 있다.

    -- 한국의 암 분야 수준을 평가한다면.

    ▲ 수술치료 능력은 미국과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문제는 연구다. 암 의학 분야는 치료가 아니라 연구 성과 때문에 발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후배들에게도 항상 말하지만 조국의 젊은 의학도들은 돈에 얽매이지 말고 연구에 포커스(초점)를 맞추기를 바란다. 히포크라테스 정신은 환자를 돌보는 것이지 코스메틱(미용)이 아니다.

    -- 한국은 언제쯤이면 노벨 의학상을 받을 수 있을까.

    ▲ 항상 도전을 먼저 생각하고 인류에 어떻게 하는 것이 공헌하는 것인지 고민했으면 한다. 일본이 대표적인 경우인데, 하나의 과제를 놓고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공부하면서 실수와 성공을 반복하다 보면 노벨상도 받을 것이다. 리서치(Research)라는 단어는 서치(search)를 리(re), 즉 계속하여 노력한다는 말이다. 독창적 사고 속에서 젊을 적부터 연구를 전공삼아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한국인들에게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