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核에는 核으로

    노태우 정부가 철수시켰던 전술 핵무기를 재도입하면 북핵은 무용지물이 된다.

    최성재     
     
       북핵 문제를 제일 먼저 터뜨린 것은 북한의 협박이나 미국의 경고가 아니다.
    그것은 프랑스의 상업위성 스포트(SPOT)였다(1988). 미국은 군사 위성자료를 갖고 있었지만 비밀에 부치고 있었는데, 프랑스가 공개해 버렸던 것이다.

    북한이 영변에서 저지른 수상한 짓을 감추기 위해 나무 심는 것이 스포트의 사진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들통이 나자 북한은 그것은 어디까지나 평화적 목적이라며 싹싹하게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아들였다. 친북좌파도 그게 평화적 목적일 수밖에 없다고 응원했다.

    한편 노태우 정부는 북방외교로 자신감을 갖고 북한이 이제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가는 것은 역사적 필연이라고 믿고 한걸음 더 나아가 미국을 설득하여 한국에 배치된 전술 핵무기를 철수하게 만들었다.
    1991년의 한반도비핵화선언과 한국의 핵무기부재(不在)선언은 그렇게 해서 나왔다.

    그 후 운동권의 핵무기 철수 발악과 민족공멸 주장은 쏙 들어갔다.
    대신 북한의 연막작전에 적극 동조했다.

    핵무기도 일종의 게임이다. 서로 적대적인 초강대국 A와 B가 있고 역시 서로 적대적인 약소국 C와 D가 있다고 하자. A가 핵을 개발하면 B도 핵을 개발한다. A와 B는 초강대국이므로 누구도 말릴 수 없다. 그러나 약소국 C와 D는 각각 A와 B의 핵우산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핵무기를 개발할 필요도 능력도 없다.

    세월이 흘러 C가 만만찮은 실력을 쌓으면서 A와 C의 관계가 약간 소원해진다.
    그 사이 B와 D는 틀어진다. D는 그렇다고 A나 C와 친해진 것도 아니다. 사면초가다.
    D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위장전술을 쓰면서 핵무기를 개발할 것이다.

    이때 C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다. 자신도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A에게 부탁해서 핵무기 배치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C는 D에게 질 수밖에 없다.

      C와 D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나라가 서독과 동독, 한국과 북한이다.
    서독은 게임에서 이겼다. 소련이 서유럽과 서독을 겨냥하여 핵무기를 증강하자 핵의 균형이 무너졌다.

    서독은 핵무기를 개발할 능력은 충분했지만 전범국가였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 우방인 미국과 프랑스와 영국으로부터 먼저 버림받을 게 뻔했으므로 ‘핵에는 핵’의 논리에 따르되 미국에게 부탁하여 핵무기를 자국에 배치했다. 미국으로서도 이익이었다. 서유럽과 서독도 지키고 소련도 견제하게 되었던 것이다.

    핵 균형이 다시 이뤄지자, 그 다음은 경제력으로 결정 났다.
    공산 국가는 노예 국가다. 노예는 최소한의 시키는 일만 한다.
    반면에 시장경제 국가는 주인 국가다. 주인은 최대한의 일을 찾아서 한다.
    시간이 갈수록 노예 국가와 주인 국가 간의 경제력은 벌어질 수밖에 없다.

    서독은 마침내 마르크화로 소련도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게임은 서독의 완승이었다. 브란덴부르크에서 환희의 송가가 울려 퍼졌다.

      한국은 1991년부터 지는 게임에 들어갔다.
    소련과 중국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인 것으로 노태우 정부는 게임이 끝났다고 섣불리 판단하고
    샴페인을 잔뜩 샀다. 소련과 중국은 어디까지나 경제적인 측면에서 우리 편이 된 것이지 군사외교적인 측면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간과했다.

    최후의 한 수는 항상 준비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스스로 포기하고 악마에게 선의를 보이면 악마가 개과천선할 것이라는 거룩한 생각을 갖고
    에이스도 조커도 없다며 패를 다 보여 주었다.


    이른바 시인도 부인도 않는 NCND 정책을 포기했다.
    그 다음부터는 일방적인 핵 게임이 되었다.
    장기에서 차와 포를 먼저 들어내고 몇 수 물려 준 셈이었으니까!
    공격 수단이 전혀 없는데다 수비마저 핵심 수문장인 장기판의 포가 빠진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미국도 별 수 없었다. 게다가 뒤에는 중국과 소련이 버티고 서 있었고 자중지란의 한국에서는 북핵은 용납하되 남핵(南核)은 절대 용납하지 못하는 반역적 민족주의자들이 대세를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선의에 기댄다?
    북한을 낙랑과 고구려 고토로 생각하는 중국의 선의에 기댄다?
    평화에 호소한다? 민족의 양심에 호소한다?
    그것은 게임의 규칙에는 아예 들어 있지 않다.
    상수는커녕 아주 작은 변수조차 되지 못한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핵에는 핵’이다.

    이스라엘이 이라크와 시리아의 핵시설을 파괴했듯이 함경도의 핵시설을 외과 수술하는 것도 괜찮지만 평화의 탈을 쓰고 핵 개발비를 갖다 바친 김대중 정부로부터 시작하여 서해에서 그렇게 얻어터지고도 북한으로 잠자리비행기 한 대 띄우지 못하는 한국이 그럴 가능성은 전무하다.

    박정희 정부처럼 자체적으로 핵개발하는 것도 ‘핵에는 핵’의 논리다.
    게임의 규칙으로 볼 때 이것이 제일 좋을지 모른다. 그러나 C인 한국 주변에는 해방 당시와 달리 주변에 강대국 B만 있는 게 아니다. 그보다 더 큰 X, 그리고 그 못지않은 Y가 있다. 더군다나 X, Y는 2000년 동안 한반도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미국의 전술 핵무기를 한국에 재배치하면 미국은 북핵을 무용지물로 만들 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견제할 수 있다.
    머잖아 도둑같이 찾아올 통일한국을 지키는 버팀목을 마련할 수 있다.

    게다가 북핵은 게임의 규칙 상 일본 핵무장이란 전혀 뜻밖의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는데,
    주한 미군이 핵무기를 관리하게 되면 이것마저 무산시킬 수 있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이다. G2를 상대로 2012년 도합 687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달성한 경제 강국이다. 세계 최대 무역흑자국 중국을 상대로 535억 달러, 세계 최대 부국 미국을 상대로 152억 달러 무역흑자를 달성한 경제 강국이다.
    스포츠와 문화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는 강국이다. 스포츠에서 북한은 한국에게 이기려고 출혈경쟁하지만, 한국은 노는 듯 즐기면서 해도 북한을 까마득히 앞선다.
    문화에서 북한은 한류로 돌풍을 일으키는 한국에 숫제 명함도 못 내민다. 빽빽 소리만 지른다.

    북한보다는 못하지만 한국은 군사력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한국은 혼이 없다. 얼이 빠졌다.
    서울올림픽 환호 후에 남북 김일성교도들에게 자신도 모르게 한국은 뇌를 점령당했다.

    뇌에 침입한 바이러스에 조종되듯이 김씨공산왕조에게는 유리하고 자유대한에는 불리한 일만 골라서 한다.
    조선-동아마저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에선 스스로 무슨 일을 하는지도,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서독의 빌리 브란트와 헬무트 콜을 능가할 영웅으로 비상할 수도 있고
    고종과 순종처럼 망국의 국가 지도자로 추락하여 영원히 부끄럽게 기억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