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언론, 정치 공무원 이야기 듣고 ‘전문가 조언’ 운운서방 강대국들은 21세기형 안보정책…우리는 20세기형
  • 박근혜 당선자의 주요 공약 중 하나인 ‘국가안보실’.
    이를 두고 언론들이 ‘소설 기사’를 써대고 있다.
    이제는 고위 공무원을 지낸 사람들을 불러 ‘바램’을 쓰고 있다.

    이들의 말대로 하면?
    ‘국가안보실’은 ‘안보의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 ‘노무현 정권 NSC 사무처의 복제판’으로 전락할 것이다. 


    언론사들, 자신들 주장을 ‘여론’이라 부르며 ‘훈수’


    먼저 지금 언론보도가 품은 문제점부터 짚어봐야 한다.

    지난 11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언론의 ‘소설 기사’에 대해 비판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이 12일 인수위 브리핑에서 한 말이다.

    “정부의 업무보고를 공개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혼선과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 


    여기에 언론사들은 “지금까지 여론의 거센 비판에도 불구하고 인수위 업무보고에 대해 알리지 않았다”고 썼다.
    물론 그 ‘여론’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기도 전부터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언론들은 ‘국가안보실’에 대해서도 ‘당선인에게 바란다’ ‘국가안보실장 누가 좋을까’ 등 온갖 ‘훈수’를 내놓고 있다.

    웃기는 건 언론의 ‘주장’ 속에 ‘국가안보실’이 무슨 개념인지, 해외에 유사한 조직이 있는지 등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대신 자기네와 인맥이 있는 ‘유력인사’에 대한 칭찬만 가득하다.
    박근혜 정부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다는 속셈으로 보인다. 



  • 만약 새 정부가 이런 언론의 ‘훈수’를 따르게 된다면?
    ‘국가안보실’은 유명무실해질 것이다.

    ‘안보의 컨트롤타워’라는 개념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산재한 정보기관과 안보기관들을 일사분란하게 지휘하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NSC나 영국의 합동정보위원회(JIC), 관방장관을 중심으로 한 일본의 정보기관 협의체와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들과 환경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환경에 맞는 조직을 구성해야 한다.


    서방 강대국의 안보 컨트롤 타워: 자국 환경에 맞는 조직 구성


    ‘안보의 컨트롤 타워’ 이야기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정보기관이다.

    세상에서 정보기관의 역량이 가장 센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은 21세기 초까지 47개의 정보기관 또는 준(準)정보기관을 운영했다.

    해외담당 CIA는 기본이고, 국방부 아래에 DIA, NSA, NIMA(現NGA), NRO를, 각 군 아래에 AFIA, ONI, MCIA, INSCOM 등을 뒀다.
    NCIS, OSI 같은 군 수사기관들도 정보기관과 같은 임무를 맡아 처리했다.

    국무부는 INR을, 에너지부는 NEST를, 법무부에는 FBI와 INS, ATF, DEA가 있었다.
    연방경찰(U.S. Marshal)이나 증인보호프로그램(WPP)도 모두 법무부 담당이다.
    재무부 산하에는 백악관 경호를 맡는 SS가 정보 업무까지 맡았다.
    이민국(INS)과 국세청(IRS)도 마약거래와 돈세탁 방지와 관련한 다양한 정보업무를 수행했다.

    수많은 정보기관들이 업무영역과 예산을 늘리려 경쟁하는 가운데 9.11테러가 터졌다.
    카터 정권 시절 이란 대사관 인질구출 실패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최악의 실패였다.

  • ▲ 미 국회는 9.11테러 조사위원회를 꾸려 3년 넘게 활동한 뒤 보고서를 펴냈다. 이 보고서는 세계 각국에 팔렸다.
    ▲ 미 국회는 9.11테러 조사위원회를 꾸려 3년 넘게 활동한 뒤 보고서를 펴냈다. 이 보고서는 세계 각국에 팔렸다.



    이후 美상․하원은 조사에 착수했다.
    이들은 ‘9.11테러 보고서’를 만들었고, 미국 정부는 보고서의 조언에 따라 서로 중복되는 기능을 갖춘 정보기관들을 한 데 묶고 ‘국가안보 위협’에 대응하는 체계를 정비했다.

    이 과정을 통해 미국은 모든 정보기관을 ‘정보 공동체(Intelligence Community)’로 묶고, 총괄 관리하는 ‘국가정보담당 장관실(ODNI. Office of Director of National Intellegence)’을 만들었다. 국가 단위의 정보기관은 17개로 정리했다.

    중복되는 부서들은 국토안보부(DHS)와 이민세관단속국(ICE)처럼 합쳐졌다.
    테러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대테러센터(NCTC)’도 문을 열었다.

  • ▲ 9.11테러 이후 개편된 미국 정보기관. 아직 일사분란하지는 않다는 게 세간의 평가다.
    ▲ 9.11테러 이후 개편된 미국 정보기관. 아직 일사분란하지는 않다는 게 세간의 평가다.



    영국은 엘리자베스 1세 시대 때 ‘보안부’를 본격적으로 운영했다.
    1872년부터는 ‘군사 정보부(MID)’를 설치해 활용했다.
    20세기 들어 ‘MI’의 숫자는 8개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세계의 패권을 미국에 넘겨준 뒤에는 크게 줄었다.

    영국의 대표적인 정보기관으로는 외무장관 아래 대외정보국(SIS. 속칭 MI6), 내무장관 아래 정부통신정보본부(GCHQ), 런던경시청 스코틀랜드 특별부(Scotland Yard), 안보국(SS. 속칭 MI5), 국방부의 국방정보참모부(DIS) 등을 꼽는다.

    영국 정보기관들은 겉으로는 장관이 지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모두 영국 합동정보위원회(Joint Intelligence Committe)의 관리 하에 있다.
    위원회가 정하는 ‘국가안보 우선순위’에 따라 활동한다.

  • ▲ 영국의 통신감청 정보기관인 정부통신본부(GCHQ)의 모습.
    ▲ 영국의 통신감청 정보기관인 정부통신본부(GCHQ)의 모습.



    일본의 경우 대표적인 정보기관인 내각정보조사실이 관방장관의 지휘를 받는 것처럼 보이기에 관방장관이 정보기관을 모두 관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방위성에 육상막료감부(육군본부) 조사부 제2과 별실이, 법무부 내에는 ‘공안조사청’이 있다.
    이들을 모두 지휘하는 건 총리실이다.

    동독 정보기관 ‘슈타지’와 냉전을 펼쳤던 서독은 통일후 연방정보부(BND), 연방헌법보호청(BfV), 국방안보국(MAD) 등의 정보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일부 자료를 보면 이들 정보기관이 독일연방하원에 있는 ‘G-10 위원회’의 ‘통제’를 받고 있다는 주장이 보인다.
    하지만 ‘G-10 위원회’는 정보기관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가’를 살피고 감독하는 데 국한돼 있다.
    독일 정보기관을 총괄 지휘하는 건 총리실이다.

  • ▲ 독일의 대표적 정보기관인 '연방정보부(BND)' 입구의 표지석.
    ▲ 독일의 대표적 정보기관인 '연방정보부(BND)' 입구의 표지석.



    프랑스의 ‘국가안보 컨트롤 체계’는 상당히 복잡한 편이다.
    대통령 직속의 기관 외에도 총리실을 보좌하는 각 위원회와 기관들이 있다.

    프랑스는 국내안보를 담당하는 국토감시국(DST)과 해외안보를 맡는 해외안전총국(DSGE)을 운영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국방부에도 대외보안방첩국, 국방보안국 등을 갖고 있다.

    ‘국가안보’ 관련 위원회도 많다.
    대통령 직속으로 3개의 국방관련 위원회가 있고, 총리를 보좌하는 ‘내각 정보위원회’ ‘국토작전방어위원회’ ‘국방과학위원회’ 등이 있다.

  • ▲ 프랑스의 국방의사결정 조직도. 우리에 비해 복잡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모두 필요에 따라 만든 것이다.
    ▲ 프랑스의 국방의사결정 조직도. 우리에 비해 복잡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모두 필요에 따라 만든 것이다.



    몇몇 나라의 사례에 불과하지만 서방 국가들은 거의 대부분 자기나라의 환경에 맞는 ‘안보 컨트롤 타워’를 만들어 놓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어떤 ‘안보 컨트롤 타워’가 필요할까.

    그 전에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자칭 전문가 그룹’에 국가안보 맡기면 안 된다


    강대국에서 ‘국가안보’라고 하면 ‘국민보호와 국익수호를 위한 모든 일’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강대국들은 현재 또는 과거에 식민지를 관리하거나 세계전쟁을 겪으면서 자국의 이익을 보호했던 경험이 있다.
    지금은 자국 산업의 이익, 재외국민보호, 자원 확보, 이민자 관리 등도 ‘국가안보’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

    미국은 질병, 문화, 인종 문제, 환경 등 수십 년 뒤에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요소가 무엇인지를 연구하는데 매년 수천억 원을 쏟아 부을 정도로 ‘미래안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 ▲ 국정원의 신고 포스터. 우리나라에서 국가안보라고 하면 뭘 의미하는지 보여준다.
    ▲ 국정원의 신고 포스터. 우리나라에서 국가안보라고 하면 뭘 의미하는지 보여준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국가안보’라고 하면 국방, 정권수호, 공산주의 세력 척결이 전부다.
    종북진영은 ‘국가안보’를 ‘통일’이라고 우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우리나라 관료나 정치인, 학계의 ‘국가안보관’은 20세기에 머물러 있다.
    이들이 말하는 ‘국가안보’는 대북정책, 미․일․중․러와의 관계라는 ‘틀’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특히 주변국과의 관계에 대해 설명할 때면 모두가 ‘대화’ 아니면 ‘군사력 강화’만 말한다.
    중국이나 일본의 실질적 위협에 어떻게 단계별로 대응해야 한다는 설명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자칭 전문가 그룹’이 ‘국가안보실’을 만들고 운영하는데 끼어들 경우 ‘안보 컨트롤 타워’는 없을 것이다. 대신 노무현 정권의 ‘NSC 사무처’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국가안보실’의 사전 과제: 새 조직 만들기 아닌, 가용자원 활용하기


    국가안보 문제에 있어 우리나라에는 중요한 ‘가용자원’이 있다.
    바로 국민들이다.

    국방부에는 수만 명의 직업군인들이 있지만, 자신들이 어떤 업무를 하는지에 대해 잘 모른다.
    외교통상부에는 수천 명의 직업 외교관들이 130여 개 공관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우리 국민은 세계 220개 나라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 ▲ 2012년 6월 강원도 영월에서 검거된 탈레반 간부.[사진:JTBC 보도화면 캡쳐]
    ▲ 2012년 6월 강원도 영월에서 검거된 탈레반 간부.[사진:JTBC 보도화면 캡쳐]



    수천 명의 국정원 요원들과 기무사 요원들이 현장에서 열심히 활동하지만, 수만 명으로 추정되는 ‘대남 간첩’과 매년 수만 명이 들어오고 나가는 ‘스파이’를 모두 추적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런데 이런 ‘현장 소식’이 안보정책 결정자들의 귀에는 거의 들어가지 않는게 현실이다.
    안보정책 결정자들이 자문을 구하는, ‘자칭 전문가 그룹’ 또한 현장을 뛰어다니지 않고 설문조사나 ‘고위층’ 또는 ‘기자’에게 얻은 ‘소식’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고 재단한다.

    여기서 ‘국가안보 컨트롤 타워’의 핵심과제를 찾을 수 있다.

    ‘국가안보실’이 ‘현장 중심’의 사고만 갖출 수 있어도 안보위협평가, 대응책 마련, 대응지침 매뉴얼화, 적재적소 인력배치, 국가안보기관의 중복기능 조정, 신속한 대응책 마련, 위기 사전예방 등이 가능해 진다.

    ‘국가안보실’ 이야기를 하면서 뜬금없이 ‘언론의 불평불만’을 끄집어 낸 것도 실은 이것 때문이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해야만 ‘국가안보실’을 어떤 개념으로 만들고, 누구를 앉히고 어떤 기능을 맡길 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